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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Jul 04. 2021

우리가 놓치는 취미의 가치

핀란드에 교환학생을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함께 하는 AIESEC 봉사 동아리에서 헬싱키로 세미나를 갔었다. 세미나를 무려 2박 3일 동안 진행했고, 거기엔 아는 사람이 하나 없이 전 핀란드에서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유일하게 몇 번 본 적이 있던 것이 아내였다. 나는 어색한 침묵을 너무도 싫어하는 k-청년이다. 그래서 그냥 쉬는 시간이 될 때마다 아내에게 말을 걸었었다. 


사실 뭐 대단히 궁금해서 질문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어색한 침묵이 싫어서였다. 그냥 한국에서 처럼 'small talk'을 하려는 시도였다.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하고 말을 걸었었는데, 거의 모든 답변에 정말 완벽한 단답으로만 대답을 했다. 


Q: 헬싱키에는 어떻게 왔어? 
A: 비행기 타고 왔어.
Q: 언제 왔어?
A :어제. 

대부분의 대화가 말하자면 이런 형식이었다. 이렇게 여러 번 대화를 시도했다가 모든 대화가 단답으로 끝나버렸다. 이 정도면 내가 무언가를 묻는 것이 거의 실례가 아닐까 싶어서 이후 거의 질문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기억해 내면서 아내에게 


나는 네가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 

라고 말했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것이 핀란드의 문화의 일종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런저런 small talk을 하는 한국의 문화와는 달리 핀란드에서는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거의 전혀 나누지 않는다. 


아래 핀란드 사람들의 클리셰를 담은 만화로 인기를 얻었던 Finnish Nightmares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핀란드 사람에게는 personal space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렇기에 처음 보는 사람과 굳이 억지로 자신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핀란드 사람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자신의 삶이 private 한 문제라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래서 핀란드에서 굉장히 중요한 가치가 바로 취미다. 


보통 핀란드에서는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나곤 한다. 일을 하는 사람들과는 일 이야기를 하고, 그 외에 다른 인간관계를 만들 때는 보통은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이와 관련되어 재미있는 경험이 있었는데, 핀란드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친구가 내게 


너는 취미가 뭐야?

라고 물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 당시에 나는 마땅히 취미라고 말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쉴 때는 친구들과 만나서 술 먹고 어딘가 놀러 가는 것이 내 삶이었다. 취미라면 뭔가 특별히 종이를 접는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이미지가 강했기에 특별히 생각나는 취미가 없었고, 그래서 


나는 딱히 취미가 없는 것 같아.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굉장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핀란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서 여겨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취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정말 중요하고, 꽤 많은 사람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 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지곤 한다. 


요즘 사회가 참으로 팍팍해지면서 더더욱 주위를 둘러보면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신이 진정으로 즐기는 것을 하고, 그렇기에 기다려지는 일들이 생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요즘의 나는 헬스를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예전에는 건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 운동을 했다면, 요즘은 헬스 하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다. 확실히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니 하루가 훨씬 더 활력 있고, 건강하다. 직접 만나진 않지만 함께 헬스를 하는 친구들과 카톡으로 운동을 한 것에 대한 대화도 나누니 유대감도 많이 느껴진다. 그리고 건강을 바탕으로 내 본업에도 더 집중할 수 있고, 오히려 효율도 좋아지는 것 같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상황일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찾고, 열심히 취미생활을 하는 것, 이렇게 힘든 생활을 이겨나가기 위해 오히려 더욱 중요한 마음의 태도인 것 같다. 



https://brunch.co.kr/@enerdoheezer/310

"검은머리 왜국인" 작가님과 함께 국제연애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매거진에는 매주 일요일에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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