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도 다시 한번 핀란드가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타이틀을 따냈다. 무려 5년 연속 왕좌를 석권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체 150여 개개 국가 중 현재 62위로 중위권 정도다. 대한민국의 경제적인 발전 정도를 생각하면 많이 아쉬운 순위다. 심지어 그 순위와 점수 역시 점점 더 떨어지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최근 미디어와 정치권 모두의 가장 큰 관심사를 받고 있는 그 유명한 90년대생으로서 주위를 둘러보자면 위의 순위와 점수의 하향세가 놀랍지 않다. 다른 세대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주위의 내 친구들을 보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제법 많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상한 점은 취업을 한 친구나 취업을 하지 않은 친구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힘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A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대학을 나왔고, 학점도 무난하며, 그러나 특별히 대학생 때 엄청나게 흥미로운 대외활동이나 스토리를 만들지는 못했다. 대학을 수료한 지 벌써 몇 년째이지만, 매년 수십 개의 회사에 원서를 지원하고 떨어지고를 반복 중이다. 쌓이는 불합격 메일에 자신감은 떨어지고, 일을 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사람으로서의 가치까지 떨어진다고 느낀다. 취업기간이 길어지니 매너리즘에 빠지고, 어떤 것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조차 막막하다. 취업한 친구들을 만나면 공감이 안 되고 할 말이 없고 질투가 나서 불편하다. 그렇다고 취업하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자니 서로서로 불행 배틀만 나누어 오히려 힘만 빠진다. 사람도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더 안으로 안으로만 부정적인 생각이 쌓인다. 사회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B는 취업에 성공했다. A처럼 오랜 기간 너무도 힘들게 취업을 준비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취업에 성공했다. 당연히 부모님에게 축하도 받고,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도 한 몸에 샀다. 멋진 정장을 입고 목에는 사원증을 주렁주렁 걸고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회사 근처를 노닐면 나도 이제 어엿한 어른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를 제시간에 가려면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기나긴 교통체증을 이겨내고 일을 아침 8시에 시작한다. 일이 어렵지만 일은 언젠간 익숙해질 것이라고 믿으며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보낸다. 점심을 먹고 식곤증을 이겨내고 2,3,4,5 드디어 5시다. 길고도 긴 근무시간이 끝났다. 분명히 집에 갈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도 집에 가지 않는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대리님과 팀장님 모두 아직도 전혀 집에 갈 생각이 없다. 그렇게 다른 팀원들의 눈치를 보다 보니 어느새 8시 가까이 돼버렸다. 그렇게 또다시 오랜 시간 교통체증을 이겨내고 집에 오니 벌써 10시 근처다. 씻고 자야 한다. 주말에도 심지어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 종종 있다. 그렇게 원하던 취업을 했지만, 내 삶은 없다. 아직 내가 회사에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고, 회사 생활 외에는 내 가치를 만들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 내가 원했던 것이 이런 삶이었는지 의문이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을 때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모방이다. 핀란드에서는 어떤 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핀란드 직원들은 퇴근을 빠르게 한다. 빠르다는 말도 사실 정확하지 않다. 제시간에 하는 것이다. 또한 아주 긴 휴가를 간다. 두 달 가까이 휴가를 간다. 휴가를 가기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을 정도로, 핀란드에서 휴가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고 그 부족한 일자리를 대학생들이 Summer job으로 채운다. 5월부터 8월까지 보통 대학생들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자신의 생활비를 벌고, 대학을 다니는 내내 여름에 쌓아온 경험을 통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바로 하더라도 실무에 바로 적용될 수 있다. 직원들은 긴 여름 신나게 휴가를 즐길 수 있어서 좋고, 대학생들은 미리미리 실무를 경험할 수 있다. 꿩도 먹고 알도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석이조다.
휴가도 길고, 근무 시간 자체도 하루의 일부만 되어 있기 때문에 핀란드에서는 자신의 삶과 직업이 비교적 쉽게 분리된다. 일 자체가 삶이고, 삶의 모든 것이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놀기만 하면 언제 일을 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러 연구결과는 행복한 직원들이 많은 곳일 수록 그 직장의 성과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포춘지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개 미국 기업 중 주식 시장에 상장된 50개 기업의 1998년 이후의 성과를 분석했다. 직원이 행복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선정 이후에 더 높은 성과를 내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분석결과 시장 포트폴리오에 비해 이들 50개 기업의 자산수익률, 시장가치-장부가치 비율이 더 많이 좋아진 것으로 나왔다. 주식 시장에서 인정한 성과도 훨씬 더 좋게 나왔다.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50개를 시가총액 비중대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보니 2000년 말까지 82%의 투자수익률이 나왔다. 같은 기간 동안 종합주가지수도 37% 올랐다. 직원들이 행복할 때 조직 성과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이다. -HR insight
나아가 직원으로서는 정해진 시간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면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직업은 내가 만들고 싶은 요리에서 필요한 하나의 재료에 불과하다. 나머지 재료와 향신료들은 내 삶의 다른 부분에서 찾는다.
한국에서는 특히 한 사람의 정체성을 딱 하나로 정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직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가치는 절대 하나의 요소로만 설명될 수 없다.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 중 직업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물론 직업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요즘 주변의 청년들을 보면 직업을 자신의 삶과 너무 일치시켜 필요하지 않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직업이 나의 전부이니, 직업이 없는 혹은 직업에서 멋진 일을 하지 않는 나는 쓸모없는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은 나를 정의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너무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건강하지 않다.
나라는 사람의 요리에 들어갈 재료로서 직업이라는 재료 외에도 다른 수많은 재료를 넣고, 더 맛있고 특별한 나만의 요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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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왜국인" 작가님과 함께 국제연애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매거진에는 매주 일요일에 글이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