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란 걸 해보자
면접을 볼 때마다 매번 들었던 질문이 있다.
'저희 회사에 입사하게 되시면 뭘 하고 싶으세요?'
나의 대답은 늘 같았다.
'제대로 된 론칭을 하고 싶습니다. 사용자가 사용하지 않는 디자인은 죽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수많은 사내 프로젝트가 드롭되는걸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사이드 프로젝트도 물거품이 되어갔다. 야심 차게 준비하고, 여차저차해서 어쨌든 론칭까지 하게 된 내 프로젝트는 고작 2개밖에 안된다. 심지어 그 두 개 중에 하나는 사이즈가 너무나도 작디작아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무튼 지금까지 초기 기획부터 개발, 배포, 유지보수까지 한 사이클을 모두 거친 프로젝트는 1건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내 CRM 프로젝트를 론칭하게 되었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한 건 아니지만 도중에 급하게 투입이 되었고, 리디자인을 맡게 되었고, 사이즈도 큰 프로젝트였다. 결과적으로 나의 디자인이 어느 정도는 인정받은 케이스였다.
론칭을 하고 보니 새삼 세상에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그들도 수없이 상사와 싸우고 동료들과 갈등을 겪으며 그 제품을 세상에 내보냈겠지. 그랬거나 저랬거나 세상에 나왔으니까 아주 좋았다. 버그가 발생하고 동작이 미흡해도 CS팀에서 그 서비스를 사용하게 되었으니까 만족스럽다.
배포를 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도 꾸준 기능이 추가되고 디버깅과 버그 수정, 디자인 개선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운영서버를 오픈한 날이었다.
누구보다 나는 감격스러웠다. 개발팀장님은 ISTP라 사회성이 조금 부족한 탓인지 이런 감격스러운 날을 그냥 지나치셨다. 극단적으로 E인 나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함께 동고동락을 한 동료들과 자축하고 싶었다. 급하게, 하지만 비밀스럽게 메신저를 돌려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 자리에서 나는 급히 회고란 걸 해보자고 제안했다.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할거 아닌가.
다들 회고에 대해 낯설어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동료가 많았다. 나도 회고는 처음이었다. 배포를 한 소감을 한 마디씩 해달라고 했더니 다들 흔쾌히 한 마디씩 해주었다. 1년 전에 비해 많이 성장했다고...이런 서비스를 배포한 건 처음이라며 나처럼 뿌듯해 한 동료도 있었다. '다음 프로젝트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자존감 넘치는 동료의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속으로 물개 박수를 쳐주었다. 어떤 동료는 전 직장에서 회고하는 도중 다른 동료가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 후 주변 동료들이 그 동료를 대하는 태도와 눈빛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회고 때는 울어야 하는구먼, 이란 생각이 들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내 제품에 대한 애정은 마음껏 표현해도 괜찮다.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한 힘을 실어주며 어제 한 삽질로 그나마 좀 나은 삽질을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 더욱 힘 있는 삽질을 하게 해 준다. 회고는 꼭 해야 하는 작업이다. 낯부끄러운 삽질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고 그 성찰 속에서 다신 그러지 말아야 지란 다짐을 할 수 있게 한다. 이게 성장이다. 회고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료애를 키워주고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방법론에 대해선 좋은 아티클들이 많으니 꼭 읽어보자. 특히 팀의 리더를 맡고 있다면 이 회고 시간을 꼭 가져보도록 하자. 생각보다 좋은 시간이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서비스 디자인은 누군가가 그것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MIT의 디자이너 브렌다 로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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