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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피리 May 08. 2022

나의 엄마

나의 엄마는 60의 나이와 함께 암 선고를 받았다. 흔히들 암 중에서는 그래도 흔한 암이라고 위로해주는 갑상선암이었지만 기도 옆, 위치가 좋지 않아 절대 마음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조직검사 결과를 먼저 듣고 일주일을 울었다.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평온함이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무서웠다. 암이 무서운 게 아니라 무너질 엄마의 모습이 무서웠다.


일주일이 지나 엄마에게 결과를 전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그러지 않고서야 전화기 너머로 들릴 엄마의 반응을 버텨낼 요량이 없었다. 나는 늦은 오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무작정 그 글을 줄줄 읽었다.




엄마의 반응은 담담했다. 그저 차분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엄마가 많이 두려울 거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엄마는 지나가다 본, 넘어진 꽃무릇 하나에도 마음이 아파 돌부리를 받쳐 세워주는 여리고 따스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엄마는 이번 역시 잘 이겨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강한 여성으로, 그동안 내 주변에서 엄마만큼 어떠한 시련을 성별의 딱지를 떼고 멋지게 이겨내는 사람은 없었다. 가정이 찢어지던 순간에도, 우리를 어떻게든 먹여 살려야 했던 순간에도,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아 무너져 내리던 순간에도 엄마는 늘 도망가지 않고 부딪혔다. 끝까지 버티고 이겨냈다. 그러한 시간들이 모두 모여 이번 역시 엄마가 강하게 이겨낼 거라는 안도감을 만들어주었다.


모든 일은 척척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유명한 교수님의 취소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고, 빠르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으며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 내가 상주 보호자로 곁에 있어줄 수도 있었다. 3시간의 수술 또한 완벽하게 잘 끝났다. 무뚝뚝했던 의사 선생님마저도 빨리 와서 정말 다행이라며 미세 침범이 시작되려는 시점, 깨끗하게 잘 떼어냈다고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문장이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 나는 아직도 내가 느낀 감정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고비고비마다 엄마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주었고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 덕에 두려움이 믿음으로 바뀌었고, 고통의 순간들이 감사의 연속인 시간들로 변했다. 나의 신앙과 하나님께 감사했고, 엄마가 살아온 선한 삶에 감사했다.


어떻게 갔는지 모를 몇 달이 지나 어버이날이 찾아왔다. 멋지게 이겨내고 일상으로 복귀한 엄마에게 존경의 마음과 함께 편지를 남겨보려 한다.




엄마. 힘겨운 와중에도 내 손을 잡고 열심히 운동을 해주었던 엄마를 기억해요. 아기처럼 푹 자다가도 일어나 씻고 청소하고 밥을 먹고, 엄마와 함께 보낸 평범한 일상들이 내게는 선물과 같았습니다.


엄마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또 언제였던가요.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에게 고난의 시간이었던 그 순간이 내게는 13살 이후 엄마와 가장 오래 보낸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평범한 일상이 너무 찬란하고 소중해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눈물이 나네요.


엄마 사실 그동안 딸은 공허함과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던 식이장애, 외로움으로 삶을 갉아먹고 있었어요. 하지만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들로 그 지긋지긋한 존재들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내게 있어 엄마란 그런 존재,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에요. 삶을 살아가게 하고, 또 그런 삶을 치유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요.


딸은 엄마로부터 지혜를 배웠고 어려움을 부딪혀 이겨내는 용기를 배웠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 포용 사랑 따스함을 한없이 내 안에 품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 엄마로부터 기인한 것이니까요.


엄마는 멋진 사람인 걸 이제는 인정해주세요. 딸은 앞으로도 계속 엄마를 보며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던 딸이 삶을 부여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엄마입니다.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들 중 엄마를 나의 엄마로 연결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저 살아있어 주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주세요.


-22.05.08 어버이날 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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