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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피리 Jul 08. 2023

가스라이팅에 대하여

천천히 곪아가다


택시를 타고 외근 나가는 길, 동료들과의 회사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던 70대 기사님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혹시 가스라이팅이 무슨 뜻이에요?"


요즘 일하다 보면 손님들이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각양각색으로 쓰는데, 그때마다 불을 붙이는 단어를 왜들 그렇게 쓰나 궁금했다고 하셨다. 마침 오늘도 부정적인 이야기와 함께 등장해 버린 그 단어를 어떻게 정의해드려야 할까. 잠깐의 침묵의 시간 동안, 생채기 내고 지나간 여러 일화들을 생각해 보고 말씀드렸다.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상대의 생각을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종하는 걸 의미해요" 그러나 정리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그럼 왜 그걸 굳이 '가스라이팅'이라고 표현하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다음의 유래를 찾아보게 되었다.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출발한 이 단어.

한 남자가 아내를 억압하고 정신적인 학대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자는 윗집의 보석을 훔치기 위해 가스등을 켜야 했고, 이렇게 하면 당시에는 가스를 나눠 쓰던 다른 집의 불이 어두워져서 들킬 위험이 컸다. 그래서 남자는 일부러 집안의 물건을 숨기고 부인이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몰아가기도 했고,  보석을 찾기 위해 가스등을 켤 때마다 아래층에 있던 아내가 집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며 그녀를 정신병자로까지 몰아세웠다. 결국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며 판단력이 흐려졌고,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연극내용에 기반해 가스라이팅을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다.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이것은 꽤나 어렵고 심각한 행동 같지만 현실의 연인관계, 가정, 직장, 학교 등 다양한 관계에서 쉽게 일어나곤 한다.


기사님께 유래와 정의를 다시 설명드리면서, 만연하게 쓴 이 단어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한 적이 없을까? 내게 있어 가장 최악의 가스라이팅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이 뭉글뭉글 떠올랐다. 기사님 덕분에 갖게 된 성찰의 시간이었다.


내게 진하게 남은 가스라이팅 경험


지나간 짧은 연애에서 나는 지독한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네가 나를 건드렸어" "네가 먼저 사과해" "너는 부정적이야" "너는 사과하는 방법을 몰라" "너같이 자존심 센 사람은 없어" 혹은 "'너'가 먼저 변해야 해"와 "네가 하면 나도 할게" 같은 류의 문장과 표현들이 전화와 카톡으로 날아다녔다. 특히 그는 자주 사소한 이유로 기분 나빠했고, 이유를 몰라 물어보는 나에게 "이유를 모르는 게 문제야, 물어보는 게 문제야, 직접 유추해"와 같은 대답을 하며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상대의 쏟아지는 질책에 진짜 나에게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렸다. 사랑, 자존감, 애착관계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사랑엔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르므로 사유가 어떻든 상대가 속상하다면 내가 바뀌고 맞추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싸웠고, 싸움의 시간은 약 2시간이 넘게 지속되었다. 잘 정리해서 마무리하고 싶어 했던 나의 대답은 '너는 왜 들어주지 않아?''라는 말로 입막음되었고, 주로 나는 듣는 입장, 그는 말하는 입장이 되어 긴 싸움이 이어졌다. 그는 지독하게도 오래도록 얘기했고, 일주일에 2번 이상은 그렇게 오랜 시간 감정소모를 하며 싸워야 했다.


싸울 때 그가 내민 조건은 먼저 화가 난 자신의 감정이 풀어질 때까지 나의 생각과 입장은 절대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상대가 원하는 방법이라 맞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이 행동을 '당연한 것' '진짜 사과의 방법'이라 여겼다. 침묵의 시간 동안 이어지는 그의 질책으로, 내가 겨우 할 수 있었던 고통의 앓는 소리조차 그는 버거워했다. "또 그러네", "보통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 등의 말들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상대에게 그런 말을 계속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무력해진다. 내가 정말 그런가 스스로에 대해 의심하며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고, 나를 바꾸면 해결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좀 더 쉬운 방법을 택하게 된다. 상대는 "나는 절대 이 부분은 변할 수 없어" "네가 잘못됐으니 네가 바꿔"라고 한결같이 대답했으므로, 나는 너무나도 단단한 벽 앞에서 포기하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약 두 달의 연애 끝에 헤어졌다. 오전 오후를 불문하고 화가 나면 끊임없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는 그의 패턴에 나는 어느 날 지쳐버렸다. 결국 너무나도 사소한 사유로 또다시 화가 난 그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또 다른  질책이 이어졌고 "너의 사과 방식은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방식과 같아"라는 너무나도 자극적인 예시에 두 손 두 발 다 들며 그만하자고 말했다. 마지막에도 그는 나를 정의했는데, 내가 얼마나 부정적이고 자존심이 센 사람인지를 강조하며 늘 미안하다고 먼저 말했던 나의 말들을 공기 속에 흩뿌려버렸다.


나는 그저 어떤 질책과 비난도 하지 않고 그냥 '최선을 다했어, 그만하자'라고 말했다. 우리 대화의 끝은 내가 쓴 '최선'이라는 단어를 비아냥거린 그의 문장이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것


평소에 나는 상대에게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이 옳다 - 저자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라는 책의 영향이 컸다. 이 행동이 얼마나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고 교묘하게 상처 주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는 사람을 만났고 꽤나 오래 버텼다. 왜 그런 말을 듣는 나 스스로는 아껴주고 보호해주지 못했던 걸까? 아프지만 배우고 싶었고, 다정함의 탈을 쓴 상대 앞에 늘 나라는 사람 자체를 후순위로 두었나보다.


즐겨보는 영상에서 정신과 의사 김총기 원장은 말했다.

• 싸움은 늘 상처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상처를 입힐지 예상할 수 없기에 '이성적인 언어'로 표현해야 갈등을 풀 수 있다.

•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은 상대를 분석해 주거나 바꾸거나 규정짓는 것이 아니다

• 말을 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지만 나의 상태를 계속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대가 어떤지 말해주는 것은 좋지 않다.


가스라이팅은 3가지 사항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동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연인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직장 상사로부터 나도 모르게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인지해야 한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계속해서 충조평판을 하지 않겠다는 내 관념을 지켜나가는 것, 상대의 가스라이팅을 버티지 않는 것, 그것은 성향 차이가 아니라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더불어 오늘의 문장처럼 의도 없이 가해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뱉은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는 사라지고, 상대에게는 남아 아픈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로지 그 마음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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