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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피리 Jan 05. 2022

여성의 삶

얼마 전 종영한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은 내게 처음으로 궁녀들의 시선을 보여주며 신선함을 주었다. 그러나 그 신선함은 찰나였을 뿐, 작품을 관통하는 궁궐 속 여인들의 슬픈 목소리는 그들의 삶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하며 긴 여운을 남겼다.


그동안 사극에서 다루었던 여성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왕의 여자로서 화려함을 입고 우아하게 앉아있거나, 승은을 입은 궁녀가 그저 행복해하는 모습을 만인이 부러워하는 정도였다. 여인들끼리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모략과 희생이 이어졌지만 그것은 궁궐 여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일뿐 그저 그 지위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화로워 보이도록 그려졌다.


반복된 장면으로 완성된 그들을 향한 시선을 떠올려보았다. 형형색색의 장신구가 반짝거렸고 아름다운 한복 속 두 손은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단정하고 정갈한 미소는 흠없이 깨끗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으로 이 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어쩌면 그 깊은 슬픔과 처절한 외로움을 가리려, 그렇게나 반짝거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궁녀는 한 번 승은을 입고 품계를 받지 못하면, 조롱만 당하고 남은 인생을 홀로 외로이 갇혀 지내야 했다. 왕실의 여인들은 대부분 스스로 원해서 왕실로 시집온 것이 아니며 왕의 여인이 되면 일평생 궁궐 밖을 나갈 수 없었다. 그들은 왕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주체적으로 사는 삶을 포기해야 했고 처절하게 외로워했다. 드라마에서 정순왕후는 유배당한 오빠가 죽었으나 상복도 입지 못하고 구중궁궐에 갇혀 조문조차 가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그녀는 오늘의 문장을 읊조린 후 다음의 대사와 함께 공허한 마음을 드러냈다.


누가 우리를 이곳에 가두었을까요.
아홉 개의 담장을 두어 가두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했을까요.

“궁궐은 참으로 화려한 감옥이지요”


왕의 여인이 되는 것 그리고 왕의 승은을 입는 것. 여성으로서 왕의 찰나의 사랑을 받는 것만큼 더한 행복이 없고 사랑받지 못해도 권력을 쥐었으니 충분한 것이라 받아들여졌던 지난날. 그 정도면 여성으로서 성공한 것 아니냐며 당연하게 평가받던 오랜 시간. 세월이 흘러 등장한 이 드라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내었고, 궁궐 속 여성을 향한 새로운 시선과 울림을 만들어주며 떠났다. 화려하고 다양했던 궁인들의 삶 속, 처절한 외로움은 아직도 계속 남아 근처를 둥둥 떠다니는 듯하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다. 수백 년이 흘렀기에 지금 이 시대 여성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아직도 그때와 비슷한 점이 많다. 사회가 가둔 담장 속을 빠져나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당연한 것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도 아직은 용기가 필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이것만큼은 미처 따라가지 못해 속상한 마음이 크다.

 

분명 많은 여성들은 갇혀있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자라는 동안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검열을 지나 자기 주관성을 잃어버리기 쉬웠고, 외적인 기준과 내적인 기준을 세상에 맞추도록 참 많이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공중파에서 방영만 하지 않을 뿐, 아직도 성행하는 미스코리아 대회만 보아도 여성을 향한 시선을 체감할 수 있다. 매년 중장년 남성 심사위원들의 평가로 진행되는데, 지덕체를 갖춘 여성을 뽑는다는 명분 아래 야한 수영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게 한다. 논란이 되자 바꾼 건 고작 야한 한복 코르셋이었고, 코로나로 힘든 와중에도 불굴의 의지로 진행되더니 걸그룹 같은 어여쁜 모습을 취하게 했다. 평가 대상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 여전히 심사는 중장년의 남성들이 한다.


당연히 확대해본 사회는 더 심각하다. 인테이크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내 2-40대 여성의 약 90%가 본인이 현재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불법 유통을 통해서라도 식욕 억제제를 손에 넣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은 ‘프로아나’라 불리는 10대 여성 청소년이다. 저체중 비율은 남성의 2배로 여성은 계속 말라가는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의 비만율은 현재 50%에 육박한다. 더불어 여성의 91%는 자신의 외모에 불만족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는데, 여성을 향한 획일화된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마음이 다양한 수치로 나타나며 ‘그 시선은 틀렸다’고 소리치는 듯하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에서도 바뀌지 않은 여성의 위치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해방 직후 독립의 기쁨을 나눌 때, 성매매 계층은 독신 노동자의 성욕 해소를 위해 계속 공창에 남아주어야 했다. 정조 외에는 팔 것이 없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었는데 이것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성매매가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면 꼭 튀어나오는 논리가 ‘여성들을 위한 것’ 또는 ‘여성들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걸까. 성매매 현장 여성의 대부분이 10대에 성매매로 유입된다는 사실과, 그곳에는 포주 및 업자의 협박과 납치, 폭력과 감금이 당연한 일상이자 규율처럼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국회의원이, 재판관이, 교수들이 공식자리에서 ‘남성은 성욕을 안 참는 것이 아니라 못 참는 것’이라고 말한다. 야동을 막아서 성폭행을 일삼는다는 막말은 n번방 사건과 함께 튀어나왔고, 한국 남성 절반은 성매매 경험이 있다는 것이 성매매 리포트로 밝혀졌다. 더불어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2배 증가한 범죄는 성범죄이고, 피해자 성별의 95%는 여성이다.


아직도 지금의 사회의 모습이 ‘여성을 위한 것’, ‘여성이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자들은 이 사실을 정말로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체

하는 걸까.




하루는 예전 팀장님이 여성범죄에 대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를 빤히 보며 “너 혹시 메갈이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스물다섯의 나와 스물셋의 사무직원은 그 말을 듣고 멍해져서는 대화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너무 억울하다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자꾸만 소명했는데, 뭐가 그렇게 도대체 뭐가 그렇게도 억울해서 범죄 이야기에 울분이 터져 남성의 역차별을 운운했을까. 메갈이니 페미니스트니 그런 단어들에 격분하지 않고 진짜 현실, 방관하고 있던 근본 현실을 봐주었으면 참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오래전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궁궐 여인의 처절한 외로움에서 시작하여 여성의 삶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분명 많은 것이 변했고 좋아지고 있지만 그 근간에 있는 심각한 현실이 여성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여성을 가두었는가. 시선이 우리를 가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여성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당하고 담대하게 목소리를 내는 여성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사회와 남성의 시선을 신경 쓰며 속으로 곪아가고,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멈추자. 귀한 존재인 나를 사랑하자. 그리고 위험에 처한 여성들을 돕자. 여성은 틀을 깰 용기가 있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한마디로 매력 넘치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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