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요물이다.
마음이 너무 아플 때는 그냥 관 속에 누운 시체 마냥 꼼짝 않고 누워만 있고 싶다.
잠들면서 내일 아침에도 깨어나지 않고 영영 잠 속에만 빠져있는 축복을 누렸으면 싶다.
살다 보면 손가락 한마디 까닥할 힘도 없을 만큼 에너지가 바닥을 보이며 고갈되는 순간이 있다.
피 흘리며 사냥꾼에 쫓기는 짐승이 바위 뒤 어딘가에 몸을 숨기며 전열을 가다듬듯 나 역시 지하 암반층 보다 더 깊숙한 심연 속에 숨어들어 속수무책으로 터져 버린 심장을 움켜쥐며 지혈하기 바쁜 신세가 되어 버린다.
지나온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 그토록 아팠던 일화 뒤엔 늘 '사람'이 있었다. 시시비비를 가리면 무슨 일이든 일방적인 경우는 없으니 나 또한 상대의 날 선 반응에 일조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테다. 하지만 정말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상대의 입장을 헤아일 아량 따윈 없다. 그저 내 상처. 내 아픔. 내 고통에만 잠겨 상대를 향한 분노를 곱씹는다. 고통의 끝은 질식이므로 이때의 분노는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므로 정당하다 하겠다.(분노하는 나 자신을 검열해 미워하고 자책하면 안 된다.)
최근에도 나는 살아남기 위해 분노했다.
내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상대방은 자신들의 입장만 항변하며 내가 수긍하기를 바랐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위력적이고 폭력적이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내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며 온 우주에 부유하는 티끌만 한 에너지라도 끌어 모아 팔다리를 움직이려 애썼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말 시체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니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 대상 역시 '사람'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또 사람으로 치유한다.
그 중심에는 늘 '언어'가 있었다. 사람의 '언어'는 요물 중에 요물임이 틀림없다.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묘약이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일순간에 차가운 관 속으로 내동댕이 쳐지게 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나쁜 요물의 언어는 비수였고, 때론 독이 묻는 화살이다. 차가운 눈빛과 방어적인 표정은 뾰족한 말과 한 몸이 되어 나를 후벼 판다. 충분히 공격 의도가 실린 언어이기도 했고, 때로는 끓어오르는 자신의 분을 풀기 위해 그들 안에 가득 쌓인 쓰레기의 분출이기도 했으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멩이기도 했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주요 수단이자 내 속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의도치 않게 말의 무기로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이 있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듯 내 입장에서도 나름 이유는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내 안에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잔재들이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굴절시켜 사안을 있는 그대로 딱 그만큼만 해석해 표현하기보다 내 감정이 묻어 나온 측면이 분명히 있었더랬다. 사실 이 점을 깨닫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내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시선을 달리할 수 있었다.
상대를 원망하느라 나를 소진하거나, 비난의 의도에 적중해 나 자신의 문제로 귀결시켜 괴로워했던 그간의 악순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아픈 말을 쏟아낸 상대가 지금 어떠한 상황과 처지에 놓여 있나 헤아려보는 마음은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자기 돌봄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다. 삶이 휘갈겨 놓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운 삶의 지침과 방향을 수정 없이 밀고 나가고 싶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인생은 쓰러져도 다시 털고 일어나 나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거란다. 정말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