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어린 사과가 어려운 사람들

by 써니현

어린 시절 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폭력의 기억이 세포 깊숙이 새겨져 무거운 그림자를 거느리며 살아간다. 그 그림자는 예리한 송곳을 지녀 방향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해치거나 때로는 타인을 아프게 한다. 성장한 후에도 폭력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커진 몸집에 가려졌을 뿐 존재 깊숙한 곳에서 예기치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툭툭 말을 걸어온다.


특히 어린 시절 폭력은 트라우마가 상당한데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음에도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폭력을 당했다는 그릇된 자책과 뒤섞이면 내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의 가치를 훼손한 채 성장한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천천히, 그러나 뿌리깊이 스며들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함에도 늘 자신의 쓸모 있음을 애써 증명해야 하는 고된 삶의 쳇바퀴에 올라타게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는 내가 겪은 폭력의 경험이 남긴 과정이자 결과이다.


어린 시절 첫 폭력의 기억은 엄마의 여동생 즉 이모에게 서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6~7세로 추정된다. 당시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이모에게 우리 자매 셋을 맡겨놓고 한 달 정도 다른 지역으로 일하러 갔었다. 그때 우리를 잠시 돌봐주던 이모에게 몸을 웅크린 채 바닥을 뒹굴며 매를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후 20대 초반 성인이 되어서도 몇 차례 이모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경험했다. 아빠가 살아계신 평범한 가정이었다면 감히 겪지 않았을 일들이 내게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내가 3살 즈음 사별해 혼자가 된 엄마는 돈벌이에 바빴고 쉬는 날은 비참하고 막막한 현실을 유흥으로 도피하려 더 바빴다. 유흥이 집에서 이루어지면 우리 집은 술 취한 낯선 어른들의 술판이었고, 밖에서 이루어지면 언제 귀가할지 모를 엄마의 생존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어쩌면 엄마는 짐으로 남겨진 어린 딸들을 키워야 할 책임과 모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엄마는 벼랑 끝에 설 때면 어린 딸들이 불안에 떨며 매달리는 모습에서 살아내야 할 이유를 찾았던 것 같다.


여하튼 엄마의 부재는 고스란히 내 옷차림으로, 청결하지 못한 개인위생으로, 불안한 표정으로, 배고픔으로 드러났다. 어린 시절 추워진 날씨에도 짧은 바지를 입고 다녀 친구 엄마로부터 걱정을 들었던 일, 칫솔질을 하지 못해 동생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일,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텅 빈 집이 무서워 혼자 울었던 일, 밥을 제 때 먹지 못해 늘 배가 고팠던 기억이 폭력의 기억과 함께 뒤엉켜 있다.


나는 고향이란 단어가 싫다.

고향이 누군가에겐 그리움과 애틋함의 상징이겠지만 내게는 떠올리기 조차 싫은 악몽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팔십을 바라보는 노년의 엄마는 지나온 삶을 반성할 기력도, 상처 많은 딸들에게 사과할 아량도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그저 당신의 삶이 얼마나 가여웠는지 딸들이 알아주기만 바랄 뿐이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딸들은 엄마를 향한 변덕스러운 양가감정을 오가며 가족이란 이름으로 천륜이란 명분으로 인내를 앞세워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다 최근 나와 1살 터울인 언니가 엄마와 절연을 선언했다. 언니는 나와 1살 차이임에도 맏이라는 이유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대신 살림을 도맡았으며 폭력적 환경의 최전방에서 홀로 외롭게 지탱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벗어나겠다며 집을 떠났다.


폭력적 환경에서 우리 자매들이 선택한 생존 본능은 각기 다르지만 뚜렷했다.

언니는 공격성과 분노를 무기 삼아 똑같은 폭력으로 맞대응했으며 둘째인 나는 스스로 채찍질하며 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으며, 셋째인 동생은 회피라는 방어기제로 자신의 힘든 삶을 모른척하며 살아왔다.


나는 언니의 선택을 존중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마주함이 고통스럽다면 안 보고 사는 것도 대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에 엄마와 언니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지난 실수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관계가 개선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고요한 평안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22화아프냐? 내가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