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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n 12. 2024

1월 21일, 23일, 30일 씩씩이  방광암 투병기

2024년 1월 21일, 고통과 시련도 사랑해야 할 삶

지인께서 매일 아침 빠다킹신부님 묵상글을 보내주시는데 오늘 글은 정말 큰 위로가 된다.

예기치 않은 인생의 질곡진 사건들로 휘청일 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경험이 종종 있다.


30대 중반 즈음, 한참 힘들어 지하암반수 인근 깊은 심연의 차디찬 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하게 된 친구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로 겨우 마음을 추슬러 일어설 수 있었다.


뒤도 옆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

ㅡ 어느 날 친구가 건넨  위로


친구가 건넨 저 말이 당시 고립무원 상태에 빠져있던 내게 하늘에서 내려준 절대 끊어질 수 없는, 두꺼운 동아줄 같았다.


이번에 씩씩이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고통 속에 있을 때는 수의사샘의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씩씩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게 어디예요. 언제 떠날까 생각하지 마시고 하루하루 잘 보내세요.

동물병원 원장님 말씀


정말 그랬다.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씩씩이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었다.


빠다킹 신부님의 묵상 글 중 고통과 시련의 삶도 하느님께서 주신 이유가 있으니 회피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은 요즘 씩씩이의 투병 과정을 함께하며 언제 닥칠지 모를 두려운 이별을 앞두고 고통의 의미조차 찾지 못한다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아슬한 내 마음을 붙잡을 힘을 준다.


인생에 오로지 기쁨만 있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지루할까. 아마도 감사한 마음을 내기보다는 지루한 삶에 한탄하며 매사 시큰둥해질 것이다.


고통과 시련을 겪어낸 후 더 단단하고 성숙해질 제 모습을 기대하며ᆢ


힘내자. 엄마도 씩씩이도!!!!



2024년 1월 23일, 계속되는 씩씩이의 병마의 고통(안구적출 재수술)


씩씩이가 1월 15일(월)에 오른쪽 안구 적출수술을 한 후 19일(금)부터 염증이 생겼는지 봉합 부위가 빨갛고 진물이 보였다.  바로 병원에 방문해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고 수의사샘은 안구적출 후 눈물샘에서 눈물이 나와 진물이 차는 일이 종종 있다며 좀 지켜보자 하셨다.


하지만 염증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부종이 더 심해져서 21일(일)에 다시 병원에 가서 봉합부위를 풀고 염증과 농을 제거하는 수술을 다시 받았다.


이제는 씩씩이의 상태에 더 이상 놀랄 일도 없다며 담담해지자 하는데도, 이런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길 때면 내 심장은 쿵 내려앉은 채 요동치며 머리는 하얘진다. 이제는 씩씩이가 아픈 것에 면역이 생길 만도 한데 사랑하는 녀석의 고통 앞에서는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면역은 해당사항이 없나 보다.


씩씩이의 노년이 이렇게 병고로 고통받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워낙 잘 먹고, 잔병치레 없이 매일 산책 다니며 건강하게 생활하던 녀석이었다.


다행히 재수술 후 3일 차인 오늘은 눈에 추가 염증 소견 없이 편안히 잘 보내고 있다.

수술 후 항생제를 처방해 주셨지만 씩씩이 입으로 강제 약물 투여는 자신이 없어 아예 물통 속 물에 하루치 약을 모두 녹였고 물속에 항생제가 든 걸 모르는지 다행히 씩씩이도 잘 마셔주고 있다.


씩씩이는 몇 달 전부터 사료는 일절 먹지 않고 있다.

대신 기호성 좋은 간식과 죽, 고구마, 계란 노른자 등 몇 가지만 돌아가며 먹고 있다. 그래도 몸무게는 투병 전과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병원에서도 씩씩이가 기대 이상으로 좋은 컨디션으로 잘 버텨주고 있다며 놀라워하셨다.

이제는 수의사샘도 씩씩이가 오래 살길 바란다며 덕담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얼마 전 병원에 방문한 강아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강아지는 씩씩이보다 나이가 훨씬 어림에도 간에 이상이 생겨(암도 아닌데...) 급작스럽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수의사샘 말씀의 의미는 금방 떠날 줄 알았던 씩씩이는 지금까지 잘 살아 있어 놀랍고 생명은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뜻 같았다.


계속되는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이름처럼 씩씩하게 잘 버텨주고 있는 씩씩이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하다.

씩씩이의 눈빛은 여전히 삶에 대한 의지로 반짝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집 강아지 두 녀석들 모두 기적의 서사를 쓰고 있다. 새롬이 역시 심각한 다발성디스크에도 후지마비 없이 아직은 잘 걷고 있고 씩씩이도 여전히 살아있다.


기적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닌 어쩌면 우리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일하며 평범한 하루를 이어가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 같다.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여기며 항상 감사하고 싶다.


오늘도 우리 강아지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으로 매일매일 기적을 체험하는 중이다.        


2024년 1월 30일, 사랑하는 씩씩이에게

가슴 저리도록 사랑하는 씩씩 아.

죽음 언저리의 고통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있어 주어 고마워.

사료는 안 먹어도 간식이라도 잘 먹어주어 고마워.

최강 한파 속에서도 신나게 산책해 주어 고마워.

축축한 기저귀를 잘 참아주어 고마워.


매일 맞는 진통제 주사를 잘 견뎌주어 고마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어 고마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어 고마워.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엄마에게 와주어 고마워.


엄마와 씩씩이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 가득 담아 소나기 퍼붓듯 쏟아 주고 싶어.


사랑은 찰나의 시간으로도 영원까지 닿게 하는 마법이 있다고 믿어.

오직 사랑만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비록 너와의 만남이 우주적 시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한점, 한 톨의 먼지에 불과하겠지만 그 찰나의 시간으로 영원의 시간을 물들일 만큼 사랑은 고귀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


엄마의 사랑을 영원까지 간직했으면 좋겠다.


씩씩 아. 엄마가 사랑하고 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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