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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wpw Nov 12. 2019

보통의 술집

[술, 계절, 소리]

내 남자 친구가 되어줘요. 
외롭게 하지 않을게요. 

사람들의 시끄러운 왁자지껄함 사이로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들썩이는 불빛 속에서 
두 사람의 시간만이 멈춰있다. 

날 좋아해요? 
네. 

미안해요. 
왜요? 

그냥요. 
..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 될까요?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흐른다. 이윽고 두 잔 중 한 잔의 술잔이 빈다. 물기가 묻은 입술사이로,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번진다. 

당신 때문에 외로워진 이상, 이대로 지낼 수는 없어요. 내가 당신을 쓸쓸함으로 느끼는데, 어떻게 친구로 남을 수 있겠어요. 

건조한 마룻바닥을 긁는 의자의 소리에 맞춰 시계가 째깍 인다. 둘의 멈춰있던 시간 역시도. 시끌벅적한 공기 사이로 한 사람의 뒷모습이 멀어져 간다. 두 외로움은 허공을 맴돌다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빈 술잔에 채우기에는 너무 많았고, 빈 마음을 채우기에는 조금 모자랐을. 엇갈림. 나머지 술잔이 비워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테이블에는 새로운 이들이 자리한다. 너무 흔해서, 도저히 특별해지지 않는 이별. 멀어진 두 사람에게 겨울의 초입은 유난히 시리고, 이제 남은 것이라곤 고작 같은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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