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광고, 홍보, 브랜드 차이는 알아야
원장님들을 만나보면 이제는 병원마케팅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혹시 병원마케팅의 정의를 질문해보면 정확히 답해주는 분을 만나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보편적으로 병원을 알리는 방법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료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도 그 정확한 정체를 설명할 수 없는 단어가 '병원 마케팅'일 것입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병원마케팅은 OOO이다'를 종이에 적고 다음 내용을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병원마케팅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케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케팅’하면 대개 소비자에게 기업을 알리는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큰 개념입니다. 마케팅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생산자가 상품 또는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는 데 관련된 모든 체계적 경영활동'(두산백과 두피디아)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경영활동입니다. 소비자가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이 마케팅입니다. 예를 들면, 앞서 소개드린 시장 골목에 개원하신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의 경우 그 장소에 병원을 개원하기로 결정한 순간 마케팅 활동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과정부터가 마케팅입니다.
정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마케팅은 주로 '마케팅믹스'라는 단어로 설명됩니다. 대학에서 마케팅 개론을 듣게 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개념이 마케팅 믹스(Marketing Mix)입니다. 주로 4P라 고도 불리는데요. 기업이 지정한 타깃(고객)이 만족하는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그래서 팔릴만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고려할 사항들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마케팅 믹스에 병원을 대입하면 위와 같습니다. 개원을 결정하신 원장님이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고민을 나열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과정이 마케팅입니다. 좀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나는 환자들에게 어떤 의사로 보이고 싶은지, 무슨 진료를 주종목으로 하고 싶은지를 정하는 것이 4P 중 Product를 고려하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원장님이 원하는 병원을 만들어갈 장소를 정하는 것은 Place에 속합니다. 개원 전 당연히 진료수가를 정할 텐데, 보험진료를 주로 할지 비보험 진료를 주로 할지, 비보험 진료는 주변 병원에 비해 고가로 할 것인지 저가로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Price에 대한 전략 수립입니다. 여기까지 정하면 이제 우리의 병원을 환자들에게 어떻게 알릴지에 대한 전략을 세우게 되는데 이 부분이 Promotion입니다.
저는 광고를 전공하고 광고대행사에서 8년을 근무하는 동안 마케팅 믹스를 활용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업무가 광고이니 광고주가 전달해주는 이미 정해진 제품 또는 서비스, 정해진 가격, 정해진 유통경로를 고려하여 소비자가 사고 싶게 그리고 써보고 싶게 만드는 메시지만 만들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2009년 강남역 치과에 입사한 후 처음으로 제가 한 일은 낡은 학부 교과서를 꺼내어 그중 마케팅믹스의 다양한 적용사례를 확인하고 우리 병원의 전략을 다시 수립하는 일이었습니다. 강남역이라는 지역을 고려하여 반경 5km 내에 있는 치과를 인터넷에서 검색했습니다. 홈페이지 내용을 확인하고 특징을 파악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강남대로의 모든 병원에 환자 인척 방문도 해보았습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저를 노려보던 어느 치과의 고단수 실장님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겁지만 그때는 절실했었습니다. 신논현역과 강남역 사이 어느 벤치에 앉아 하루 종일 지나가는 유동인구를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강남역에 우글거리는데 이중 0.1%만 우리 병원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들이 어떤 경로로 무슨 이유로 강남역에 왔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환자라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치과를 내원하게 될지를 분석하였습니다. 강남역 1번 출구~12번 출구를 발로 돌아다니며 동선을 유추하고 그 동선에서 보이는 치과들의 간판을 확인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에 버스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9호선을 타고 신논현역에 내리면 어떤 느낌이고 실제 발로 걸어오면 우리 치과 도착까지 어떤 장면이 펼쳐지는지 확인하고 경로에서 잘 보이는 치과는 다시 별도로도 분석해보았습니다. 이것이 마케팅 믹스의 Place분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좀 귀찮을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마케팅 믹스를 분석하고 저는 한탄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세상에 이 재미있는 일을 두고 내가 고작 광고라는 작은 분야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대학 때 광고전공 교수님께서 했던 한마디가 생각났습니다. "너희가 하는 광고는 마케팅 믹스의 4가지 구성 요소 중 프로모션이라는 한 분야이고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이란다. 실은 별개 아니지." 1996년 이 이야기를 듣고 뜻을 깨닫는 데까지 14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스스로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마케팅은 상식적 사고가 가능하다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창조적 활동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바라는 무엇인가를 현실화시키는 지구 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들 중 하나입니다. 이 재미있고 즐거운 업무는 되도록 대행을 맡기지 말고 병원의 대표자가 직접 진행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필자는 미국에서 학부과정으로 광고를 전공했습니다. 19살 첫 광고 수업 당시 드디어 내가 광고인이 되는 첫발을 내딛는다고 생각하며 부푼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갔는데요. 교수님의 첫마디가 내 뜨거운 가슴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지금 너희가 멋진 광고인이 되는 미래를 꿈꾸고 있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너희는 그저 장사꾼(Salesmam)이 되기 위해 여기 와있는 거란다. 머리 좀 쓴다고 해서 너희의 근간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지. 그러니 지금부터 은퇴하는 그날까지 너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팔기 위한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20년 현업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광고 캠페인 AE출신 교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의 기를 한껏 죽인 후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광고는 마케팅의 일부입니다. 광고는 마케팅 업무 중 소비자에게 최종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일 뿐입니다.
광고는 우리가 가진 서비스를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도 일단 소비자가 그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광고의 한자어 뜻을 찾아보면 넓게(廣) 알리다(告)라고 나옵니다. 넓게 알리기 위해 병원 앞에 서서 소리를 지를 수는 없습니다. 넓게 알리려면 매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넓게 알려주는 매체는 공짜인 경우가 드뭅니다. (혹시 개원초 공짜 광고를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으면 의심부터 해보기 바랍니다.) 광고는 결국 소비자가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설득할 목적으로 만든 메시지를 유료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을 뜻합니다.
TV, 신문, 라디오, 잡지에 광고를 싣는 것을 4대 매체 광고라고 하며 ATL(Above the Line)이라 부릅니다. 4대 매체는 분명 넓게 알리는 데는 가장 효율적 방법이라 할 수 있지만 병원마케팅의 경우 적합하지는 않습니다. 왜냐? 너무 비싸니까요. 도달하는 고객이 광범위할수록 매체비는 증가합니다. 환자 1000명을 유입시키기 위해 5000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TV광고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BTL(Below the Line)이라는 대안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옥외광고나 온라인 매체가 이에 속합니다. 도달하는 범위가 좁아지는 대신 매체비도 낮아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병원마케팅이 활발해진 계기도 이러한 BTL 매체의 성장과 맥을 함께합니다. 온라인 마케팅 채널이 다양해지며, 저예산으로 원하는 소수의 타깃에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 병원과 같은 소규모 기업이 광고를 하기에 적합해진 것입니다.
광고와 홍보를 혼동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광고와 홍보는 분명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면 보도를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리는 방식입니다. 기사에 자연스럽게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녹여 알리는 방법입니다. 홍보는 영어로 Public Relations라 합니다. 말 그대로 어떤 집단과의 관계를 꾸준히 만들어가기 위해 언론을 활용하는 행동이라 정의됩니다. 병원의 경우 TV 뉴스 출연, 온라인 보도자료 배포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홍보업무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사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인 것 같습니다.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광고보다 훨씬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입니다. 단지 소비자와의 소통 방식이 분명 다르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광고를 하는 사람과 홍보를 하는 사람의 성향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현장에서 자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향후에 대행업체를 선정하실 때 광고와 홍보 담당자는 그 특성이 다를 수 있음을 감안했으면 합니다.
필자의 석사논문 주제는 브랜드였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근무하던 회사가 미국의 WPP(미국 유명 광고회사)에 매각되는 계기로 미국 광고회사의 체계적인 브랜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근데 누군가 브랜드가 무엇이냐 물어보면 답을 하는 것이 망설여집니다. 마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 답을 찾는 것처럼 브랜드라는 단어의 정의 또한 항상 모호하고 난해하게 느껴집니다.
다행히 저는 최근 브랜드에 대한 너무도 명쾌한 답을 발견하였습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이야기였는데요. "사람들이 자꾸 저한테 브랜드래요. 전 브랜드가 뭔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저는 그냥 오프라예요. 평생 오프라로서 오프라 답게 살았더니 어느 날부턴가 제가 사랑받는 브랜드라고 주변에서 이야기하더군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명쾌한 정의입니다. 문장을 자세히 곱씹어보시기 바랍니다. 브랜드는 우리 기업이 다른 경쟁 기업과 차별화되고 사랑받게 하는 막강한 무기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오랜 경영활동의 결과로 얻어진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마케팅을 통해 대체될 수 없는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한 결과 사람들이 느끼는 특정 기업에 대한 총체적 느낌입니다. 환자가 원하는 우리만의 가치를 가진 병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노력하고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모습을 환자들이 반복적으로 지켜보면 병원도 어느 날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브랜드가 되는 것입니다.
아마 병원을 개원하고 마케팅을 조금이라도 시도한 원장님이라면 병원 브랜드의 중요성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광고나 일부 프로모션 활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이라는 큰 경영활동을 꾸준히 오랜 기간 지속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고 접근하시기 바랍니다.
자 다시 돌아가 '마케팅은 ooo이다'를 작성하신다면 이제 어떻게 적으시겠습니까? 마케팅과 광고홍보 그리고 브랜드에 대해 이제 구분이 가능한지 스스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