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고한 사람들에게
나는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깬다.
정확히는, 깨는 게 아니라 깨워진다.
아이 목소리에. 내 몸이 원하는 기상 시간은 8시 정도인데, 매일 그보다 한 시간 여 먼저 눈을 뜬다.
"요거트."
냉장고를 열어 그릇에 담아 준다.
"치지(치즈)." 치즈를 꺼낸다.
아이 먹을 걸 주고, 나도 대충 뭔가 먹고, 씻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기고…
나가자고 하면 도망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9시가 훌쩍 넘는다.
등원을 마치고 정신을 차려보면 10시 언저리다.
'오늘은 집중해야지' 생각하지만 손에는 어느새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쇼핑몰 앱을 켜고, 필요한 것 몇 개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정신을 차리면 12시가 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게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는 거다.
아침 두 시간 동안 생각과 행동을 여러 번 오가고 나면, 머리를 깊이 써야 하는 일은 잠시 뒤로 밀린다.
지금은 손이 닿는 가벼운 일부터 처리하게 된다.
주변에서 묻는다.
"집에서 일하면 시간 자유롭잖아?"
"등원시키면 작업시간 생기는데 왜 진도가 안 나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침 두 시간을 내 리듬이 아닌 아이 리듬에 맞춰 쪼개 썼다는 것,
등원하는 동안 여러 가지의 일을 동시에 계산하고 움직였다는 것,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시동이 꺼진 것을, 하나하나 설명하기가 피곤하다.
결국 그냥 "그러게 말이야"라고 말한다.
아침마다 변수가 다르고, 시간은 쫓기고,
내 리듬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는데 할 일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등원을 마치고 돌아오면 하루의 첫 목표를 겨우 넘긴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런 날이 매일 반복된다.
최근에는 이런 것들이 자꾸 겹친다.
얼마 전, 엄마 항공권을 변경하다가 기존 예약 취소를 놓쳐 수수료 2만 원을 물었다.
금액은 적은데,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다.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 따라붙었다.
카드값을 내고 보니 이번 달은 여유가 없는 게 확실했다.
쓰면 안 되는 건 아닌데, 생활비를 여기저기서 메꾸다 보니 마음이 점점 빠듯해진다.
그리고 어제, 남편이 말했다. "회사에서 앞으로 야근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응, 필요하면 해야지."
그렇게 답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생각이 돌아간다. 저녁 루틴 혼자, 아이 재우기 혼자.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문 여는 소리에 깨고, 다시 잠들기까지 또 시간이 걸릴 거고, 내일 아침은 더 힘들 거고.
정작 하고 싶은 일은 자꾸 뒤로 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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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에는 공통점이 있다.
잘 되면 아무도 모르고, 조금만 틀어지면 바로 보인다는 것.
아이가 제시간에 등원하면,
집이 깔끔히 정리되어 있으면,
예정된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면,
= 조용한 하루
하지만 하루만 늦어도,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여도, 하나만 삐끗해도 곧바로 "누가 안 했네"가 된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다.
"오늘 뭐 했어?"라는 질문에 "그냥 별거 없었어"라고 대답한다.
실제로는 수 가지를 계산하며 하루를 지냈는데,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났으니까.
출퇴근 기록에도 안 찍히고, 업무 평가에도 안 들어가고, 연봉 협상 테이블에도 올라가지 않는 일들.
하지만 이런 수고가 없으면 우리가 평범한 하루라고 부르는 그날은 유지되지 않는다.
당신에게도 비슷한 하루가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하루를 굴러가게 하는 일들. 잘해도 당연하고, 조금만 어긋나면 문제가 되는 일들.
사실은 당신이 여러 갈래의 부담을 조용히 감당했기에 '별일'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일 없는 하루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건 누군가가 이미 해둔 일의 결과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당신 주변에도, 아마 당신 자신에게도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일을 해온 누군가가 있다면, 고맙다고 말해도 좋겠다.
나는 오늘, 나한테 먼저 그렇게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