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좀 다녀오겠습니다

1일 차

by Slowlifer

아웃룩에 오토리플라이를 남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랩탑을 덮었다.


‘I’m on sick leave, please contact…’


언제 돌아오겠다는 기약 없는 오토리플라이는 처음이라 어색했다. 말 그대로 병가, 퇴사는 아니었지만 돌아오겠다는 기약은 거기에 없었다. 그렇게 오늘 나는 병가를 시작했다.


후.

기분이 묘했다.


생각보다 후련하지 않았고 사실 아직 딱히 실감 나지 않는다.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지?


병가라는 건 선택지에 없었던 일이다.

그저 ‘더는 못하겠다’라는 완전히 소진된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은 후 하루하루 버티다 머지않아 그만둬야겠구나 생각을 했을 뿐.


그렇게 내 마음이 끊임없이 신호를 줬는데도 무엇을 위해서였던지 꾸역꾸역 버티다 보니 이번엔 몸이 신호를 보냈다. 제발 그만하라고, 좀 멈추라고. 그제야 깨달았다. ‘나 아프구나 지금’


무서웠다. 내 마음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내 몸이 내 맘 같이 움직이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나에겐 아직 두 살도 되지 않은 아기가 있는데, 나는 이제 혼자 쉽게 무너지면 안 되는 너무 소중한 아기의 ‘엄마’였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프면 치료해야지. 감기에 걸려 약을 타러 가듯 연차를 내고 병원을 찾았고 심리상담을 예약했다. 그 이후 결정은 더 자연스러웠다. 좀 괜찮냐는 말에 상투적으로 괜찮다는 대답을 할 수 조차 없었다.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병가 내겠습니다”


한국나이 서른여덟이 되는 25년 1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게 주기로 했다. 처음으로 나에게 ‘멈춤’이라는 걸 선물했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르겠다.


우선은 좋은 거 먹이고, 잘 재우고, 잘 쉬게 해 줄 거다. 다시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나를 잘 다독여 줘야겠단 생각 말곤 아무 계획이 없다.


어디선가 본 글귀처럼,

나도 인생의 파도에 내 인생을 맡겨 보는 거다. 흘러가는 대로 그 흐름을 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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