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장인들의 꿈은 ‘퇴사’라지만 나는 지금 ‘퇴사’가 아닌 ‘병가’ 중이다.
10년이 넘어가는 직장생활 중 나처럼 멘탈이 아프다고 병가를 신청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병가는 아마도 팔이나 다리 하나는 부러지거나, 신체적인 병이 생겨 큰 수술 또는 입원을 할 때 쓰는 거라 여겼다.
그러던 내가 돌연 병가를 내기로 마음먹은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 지금 아픈데? 병가는 아파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때 내는 거 아닌가?’
정 힘들면 연차라도 당겨 쓰고 한 2주 쉬고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던
팀장의 권유와 달리 내 결론은 ‘3개월의 병가’였다.
2주 쉰다고 될 일이었다면 애초 내가 아프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쿵쾅대고 짧은 이메일 하나 읽어내지 못하던
나에게는 솔직히 퇴사할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겉으로 티 나지 않는 마음의 병에 걸렸다.
나는 아프다.
내가 아픈데 이걸 누구한테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나를 돌봐야 했다.
그냥 머릿속엔 ‘어떻게든 당장 멈춰야 해’라는 생각뿐이었다.
단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내가, 그 누구보다 일 욕심 많던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스스로도 여전히 놀랍다.
하지만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인수인계를 며칠 만에 끝내고 사람들과의 별다른 인사도 없이 나는 숨어버렸다.
나는 이번 이 선택을 스스로 ‘도망’이라고 정의한다.
종합심리검사에서 나는 출입문이 없는 집을 그렸다고 한다.
아마도 나는 지금 나만의 안전지대로 도망을 친 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갔나 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분명 ‘도망’ 또는 ‘회피’이다.
스스로에게 늘 가혹하리만큼 엄격했던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도망쳐도 돼’라고 나를 받아줬다.
“왜 이 정도밖에 안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버텨봐”라고 나를 다시 다그치는 대신
내가 그 누구보다 든든한 내 편이 되어 지친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다독여주기로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나약해서 힘든 게 아니라 누구라도 힘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나 자신에게 잔인했던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괜찮지 않은 걸 알면서 괜찮다며, 억지로 나를 멱살 끌고 질질 끌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계속 달렸다.
너무 피로한 세상이다.
내 선택으로 내가 멈췄는데, 세상은 자꾸만 나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일을 그만두고 쉬겠다는 말에 친한 동료가 걱정스럽게 내게 물었다.
“그래서 일 안 하면, 뭐 할 건데? “
왜 뭘 꼭 해야 할까.
그간 쉬지 않고 내가 뭘 원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로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고 그렇게 살았으면 된 것 아닌가.
지쳐있는 내게서 좋은 대답이 나갈 턱이 없었다.
“왜 뭐, 그냥 쉴 건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할 거야 “
여태 내 인생은 무수히 많은 내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여태까지도 그랬듯 내가 매 순간 옳은 선택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내 선택이 언젠간 뼈저리게 후회가 되는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여태까지 그랬듯 내 선택은 내가 책임진다.
내 인생이니까.
누가 대신 살아줄 건 아니니까.
선택도, 후회도, 책임도 다 내 몫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속으로 대답한다.
“계획 없어, 그냥 좀 쉴래요 “
내가 스스로 이제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만.
그 길이 예정보다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훗날 결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롯이 나만 생각한 내 선택이니까 그런 용기를 낸 나를 칭찬해 줄 거다.
언젠가 또 넘어졌을 때 잘 쉬어가는 법을 터득한 형명한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