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종합심리검사 (풀배터리 검사) 결과
병가를 내겠다고 말을 하고 아직 서류 처리를 하지 못했다. 병가를 내려면 최소 2차 병원 소견서가 필요한데, 정신과 특성상 심리검사 진행 없이 소견서 발행이 어렵다는 게 의사의 의견에 따라 성인 종합심리검사를 진행하였다.
몹시 지친 상태로 검사에 임했었다.
힘들어서 병원에 갔는데 힘든 걸 인정받으려면 힘든 검사릉 해내야 한다는 거다. 별 수 없었다.
지능검사를 포함한 총 5가지 검사를 3시간에 걸쳐 진행하였고, 가뜩이나 에너지가 바닥인 나에게는 그 마저 너무나 괴로운 시간이었다.
검사 후 2주가 지난 지난 토요일, 심리검사 결과를 들으러 센터에 방문했다.
임상적 추정에 의한 현재 나의 진단은 ‘적응장애’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이고 많이 억누르며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일 것이라고,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참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도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스스로는 훨씬 더 괴로운 상태일 것이라는 임상심리사의 소견에 괜히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신체에 상처를 입는 것과는 다르게 마음이 아픈 건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구 하나 너 진짜 아픈 거 맞는지 증빙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마음이 꽤나 괴로웠던 모양이다.
마음 아픈 건 내가 나약해서가 아닐까 습관적으로 다시 화살을 나에게로 돌리고선 더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질책했었던 나날들이었다.
습관적으로 스스로에게 겨누었던 화살이 이렇게 나를 강하게 찌를 때까지 나는 나를 돌봐주지 않았으면서 아직도 여전히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내 아픔을 입증해야만 한다 생각했다니 바보가 따로 없다.
심리검사 결과에는 놀라우리만큼 고스란히 현재 나의 정신 건강상태가 드러났고, 마치 누군가 내 아픔을 알아봐 주고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검사 결과를 들으며 생각했다.
여기서 멈추기로 한 건 정말이지 잘한 선택이라고.
다행히 나는 정확하게 지금 내 상태를 인지하고, ‘스트레서로부터의 격리’ 처방을 의사보다 먼저 나에게 내렸다. 조금 늦었을지언정 내가 내 마음이 많이 지쳐 더는 몰아세울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심리검사결과지를 들고 진단서 발행을 위해 병원을 갔다. 임상심리사 의견대로 의사의 진단명 또한 ‘적응장애’였고, 3개월 이상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받아 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병가 사용을 위한 서류일 뿐이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던 친구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허탈했다.
동시에 자칫하면 나도 어린 날 사업에 실패 후 재기하지 못하던 아빠처럼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스스로 몰아세우며 달려온 끝에 얻은 게 정신질환인가 라는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또 스스로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상처를 받는다고, 그렇게 표현하지 마시라고, 불편하다고. 그 한마디 하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마음이 아파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 포함 병원엔 겉 보기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대기실에 바글바글 모여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이 나약해서라고 생각해 본 적 없으면서, 나는 왜 마음이 아프다고 하면 나약해 보일까 걱정했던 걸까.
남 시선 개의치 않는다던 나는 세상 누구보다 남 시선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감정에 예민하고 나의 감정에 둔감했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이 많이 지치고 다쳐 너덜너덜 해졌다.
그간 들여다 봐준 적이 없어 당장 어떻게 내 마음을 들여다봐줘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조금만 방심하면 어김없이 내 마음속에서는 원망의 화살이 자연스레 다시 나에게로 향해있다.
아마도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나부터 살펴주는 것에, 그리고 나약한 나를 그대로 인정해 주기에.
기질이나 성격 자체가 낙천적이고 밝은 성향이기에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 있으면 회복될 것이라는 말에 기대를 삼으며.
서른여덟, 처음으로 내 마음 들여다보기에 집중해본다. 방법은 여전히 모르지만,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예정이다. 잘 먹고, 잘 자고, 많이 읽고, 많이 쓸 거다.
우선 지금은 마음이 위로가 되는 책을 많이 읽고 싶다.
당장 지쳐 사람들을 만날 에너지가 없기에 책을 통해, 에너지가 좋은 사람, 먼저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의 글귀를 찾아다니다 보면 언젠가처럼 다시 긍정기운이 채워질 거라 기대하면서.
자꾸 내 아픔을 외면하는 방법을 선택해 왔다.
정면으로 내 아픔을 마주하고, 상담 선생님의 권유대로 그런 방법도 살면서 필요하지만 나는 그 방법만 썼기에 또 다른 대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외면한 채로 그 순간을 넘어가게 되면 머지않아 또다시 같은 상황으로 내가 나를 찌를 것임을 이제는 안다.
정면으로 나를 바라볼 용기가 필요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