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멈춰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멈추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랩탑을 여는 순간 내 호흡은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았고 시도 때도 없이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올라와서 눈물이 쏟아졌다.
짧은 이메일 하나 읽을 수 없어 삼십 초면 될 일을 삼십 분을 들여다보고 앉아있는 나날들이었다.
장난 삼아 얘기했던 게 현실이 되었다.
“나 고장 났어.”
이제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 나는 고장 나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조차 잘 모르겠다. 그냥 오래전부터 깊게 쌓인 내 묵은 감정들이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터진 것 같다는 추측 외엔 나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직장상사의 행동과 무례한 표현, 그리고 숨 막히는 압박은 이직 후 벌써 4년째 봐왔으니 그러려니 넘길 줄 알아야만 한다고 또다시 나는 나를 몰아세웠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을 내세워 어떻게 하면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방법 저 방법 다 해보다 내 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그래 멈춰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언제?’
여전히 나는 이런저런 현실적인 상황을 끼워 맞추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말이지 하루하루 토할 것 같은 나날들에 몸과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수척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살고 봐야겠단 생각에 선택지에도 없던 일을 결심했고 깊게 고민 없이 저질렀다.
담당 인사팀과의 원온원 미팅.
쉬쉬하던 모든 것들을 꺼내 놓았다. 너무나 씩씩하고 밝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내가 이메일 하나 못 보낼 지경으로 멘털이 무너졌다는 말에 담당 매니저는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일단 좀 분리하자. 분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퇴사가 아닌 병가를 신청하게 되었다.
물론 그 끝은 퇴사일 것이나, 어쨌든 나는 새로운 선택지를 받아 여러 현실적인 고민을 피할 수 있었다.
병가 신청에는 절차가 있었고 병원 서류발급에도 절차가 있었다. 그 기간 동안의 시간조차 버텨 낼 힘이 없던 나는 하루하루 지옥 같은 마음으로 반나절씩 랩탑을 켜서 급한 일만 쳐내며 인수인계를 마쳤다. 그리고 일 년 치 연차를 탈탈 털어 휴가를 시작했다.
서류가 준비되었고, 회사에 제출을 했고, 회사의 검토가 있었고, 3개월의 유급 휴가를 승인받았다.
내 병명이 적힌 진단서가 첨부되어 있는 이메일에 연관 부서 사람들이 참조로 달려있는 걸 보니 새삼 실감이 났다. ‘나 이제 공식적으로 아픈 사람이네.’
기분이 이상했다.
불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카톡을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아픈 거 맞고, 아파서 병원에 간 거고, 회사 때문에 아프게 된 거니 병가를 쓴 거니 이상할 거 없어. “
최소한 남편의 확인이라도 필요했다.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이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불안함이 남아 있었으니까.
사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문제였다.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불안도가 높아졌고, 그 사람을 대하는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피해야만 내가 살 수 있었다.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니까.
회사가 빠진 내 일상은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쉬어본 적 없기에 쉬는 것 마저 열심히 할까 봐 매일매일 나 스스로에게 주의를 준다.
지금은 속도를 줄일 때라고.
천천히. 급하지 않게.
무엇보다 내 마음을 돌봐줘야 할 타이밍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