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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존밀크 Nov 18. 2024

상실의 계절을 버티는 방법




요즘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상실’이다.

흥미와 즐거움의 상실.

이 두 가지가 없는 게 뭐 대수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없는 삶은 정말 정말 정말 너무너무너무 재미없다. 저 문장이 괜히 우울장애의 주요 항목 중 하나인 게 아니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열망뿐이다.

침대에 누우면 행복하냐? 그것도 아니다.

한 달 전부터 침대에 누우면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를 하면 두통이 함께 온다니… 이런 비극이 있나.



주말 내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봤다.

1. 디그니타스에서 곱게 죽기(ㅋ)

2. 카페 가서 티라미수 먹기

3. 카페에서 책 읽기

여기에 오늘 하나가 더 추가됐다. 붕어빵 등 단팥이 든 음식 먹기.


‘하고 싶다’ 란 열망의 순간은 너무나 짧다. 흥미가 슬쩍 고개만 들어도 집채만 한 무기력이 쓰나미처럼 내 육신을 덮친다.

하지만 난 이것을 극복하고 싶다. 나도 먹고 싶은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인간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퇴근 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갔다. 시린 코끝을 호호 달래 가며 동네 카페로 갔다. 어제 그토록 먹고 싶었던 티라미수가 내 눈앞에 있다. 하지만 내 손은 키오스크에 있는 그림만 의미 없이 누르다가 결국 ‘나가기’ 버튼을 누른다.

예전의 나는 티라미수를 두 개는 거뜬히 먹을 정도의 먹성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코아 파우더의 씁쓸함만 입가에 상상될 뿐이다.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좀 더 노력해 보자. 집 앞 빵집에 가보자. 올망졸망 빵을 바라보다 보면 그 고소하고 달콤한 내음을 맡다 보면 그것들을 먹고 싶단 생각이 들 것이다.

역시나 그 어떤 빵도 날 유혹하지 못한다. 그럼 억지로라도 사야지, 여기 단팥빵 하나랑 두유 하나요.





단팥빵 하나만 사려고 했는데 소보로빵도 함께 챙겼다. 난 저 빵을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근데 이 빵집 안에서 먹고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늘의 목표는 이 빵과 두유를 저녁으로 먹으며 가방 안에 2주 동안 묵혀놓은 소설책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억지라도 내가 그토록 탐미했던 것들을 하다 보면 티끌만큼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그저 잔인하기만 한 가을이 끝나간다.

그래도 언젠간 이 계절을 버티는 게 아닌 즐길 수 있는 맘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부디 그때가 너무 먼 곳에 있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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