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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준희 May 10. 2021

태몽의 진실

해석하기 나름인 걸로



엄마 뽀송의 태몽에 따르면, 나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영예를 얻을 것이고 둘째는 재물 복이 많을 것이며 막내는 속을 조금 썩이나 결국엔 권력을 가진 채 승천하게 될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나는 맑은 시냇물에서 집어 든 제일 크고 빛나는 다이아몬드였고 둘째는 깨끗하고 빛이 나는 강아지 닮은 점박이 돼지였으며, 막내는 엄마의 가슴팍을 세게 치고 구슬을 문 채 하늘로 승천한 검푸른 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조금 달리 해석하기론, 나는 키우면서 예술한답시고 발레니 바이올린이니 여기저기 집적댄 탓에 돈이 좀 들어 다이아몬드였고, 둘째는 복스럽게 잘 먹고 적당한 운이 따라주는 편이었기에 돼지였으며, 막내는 엄마 말을 잘 안 듣고 제 고집 따라 밖에서 나름의 사회생활을 용이하게 하는 편이기에 용이었다.



사실 내가 믿는 종교를 핑계 삼자면 우리 집은 태몽이라는 것에 높은 신빙성을 주장하면 안 되는 것이나, 이는 어찌 되었든 민간신앙으로 전승되어 온 역사의 단면으로써 해석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답답한 현실로부터 도망치듯 위안받고 싶을 때 이따금씩 태몽점이라 불리는 것과 인생 전반에 걸친 점괘에 자신을 끼워 맞춰보는 주변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커져 그런 건지, 내가 어쩌다 한 번 꼴로 술 한잔 걸친 채 자조적 어조를 섞어 고민을 토로할 때면 엄마는 자꾸 사주를 들먹이며 나와 우리를 해석하려 든다. 또 나는 심리학 쪽으로 해석한 성격이나 성향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관계에 대해 재해석해보는 편인데, 그때마다 뽀송이 불쑥 생시나 띠를 들이밀 때면 어이없게 귀여워 웃음이 다 난다. 원숭이 띠와 쥐띠가 잘 맞아 내가 할아버지와 잘 맞는다는 둥, 뱀 띠와 개 띠가 안 맞아 엄마는 이모와 도통 대화가 안된다는 둥.


모태 신앙에 새벽기도니 금요 철야니, 주야장천 그렇게 말씀과 예배로 우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살면서도 대체 어디서 주워듣고 오신 사주 풀이로 우리의 인생을 점치시는 건지. 우리 엄마가 나이가 들어 그런지 자식 걱정이 많아 그런 건지 원인은 불명확하지만, 여하튼 웃픈 현실의 도피처를 찾는 어른이 같아 귀엽다.



물론 동양 철학이든 신학이든,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대해 왈가왈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든 나와 우리에게 심적으로 보탬이 되는 쪽이라면 참고의 의미쯤으로 긍정적이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나는  신앙을 지킨답시고 재미로라도 사주나 타로를 보는 타입은 아니었어서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해도, 뽀송이 그런 것에 가끔이라도 흔들리는 것은 엄마 본인에게 너무 소중한 자식들이 셋이나 있기 때문이겠거니 한다.



무언가 내가 알지 못했던 한문이 정말 내 인생의 부분들을 메우고 있을지 모르겠다만. 외려 어떤 면에선 성격차를 굳이 분석하고 들먹이면서 네가 잘했거니 내가 잘했거니 하며 피곤하게 상대방을 재단하는 것보다야, 그저 그래서 우리가 안 맞을 수도 있었던 거겠구나 하는 식으로 넘기는 편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모와 뜨문뜨문 연락하게 된 지금도 어쩌다 한 번 그리 통화를 하고 나서 내내 불편해하는 엄마와 이모의 관계를 들여다보자면 말이다.



뽀송은 종종 둘째는 돼지 해에 돼지꿈을 꿨으니 더 좋을 것이고, 막내는 용의 해에 용꿈을 꾼 것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운이 또 있겠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도리어 묻는다.

저들의 운은 그렇다 치더라고 신화 속 동물도 생물도 아닌 나는 대체 무엇인 거냐고.


얘, 너는 생물은 아녀도 젤루 단단한 천연 광물이잖아.

다이아몬드가 어디 쉽니. 얼마나 값지고 빛나니!


오늘도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방어하듯 말끝을 흐리며 목사님의 말씀 동영상을 재생하는 뽀송.



모르겠다. 분명 이런 글을 썼다는 걸 알게 되면 엄마가 노발대발할지 모를 일이니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마무리하는 편이 좋겠다. 그런 의미로 이제와 좋게 좋게 풀이하자면, 나는 꽤 오래 음악을 해왔으며 연주회나 무용 공연 덕에 무대에 설 때마다 반짝이는 드레스를 몇 벌 걸쳐봤고. 둘째는 인내심을 가지고 제 몫만큼은 독립적으로 잘 해내서 돈이 좀 굳었으며, 막내는 제 고집 세우느라 엄마 고집을 자주 꺾으나 어린 나이임에도 부모 손 벌리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리하여 각자의 태몽은 지금껏 그래 왔듯, 갖은 풍파 속 가까운 미래에서도 나름의 의미로 마음의 안정만은 더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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