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우리들'
초등학교 4학년 때, 입주를 기다리고 있던 아파트에 들어가기 전 시간이 붕 떠서 한 달쯤 이모 댁에 짐을 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둘째 그리고 갓난이처럼 조그맣던 막내와 같은 나이의 사촌 동생까지. 어떻게 그곳에서 지낼 수 있었는지 상상만으로도 깜깜하다만 엄마와 이모가 한 일주일 티격태격했던 것 빼고 나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나름 우리끼리는 잘 어우러져 지냈던 모양이다.
전시 상황 같았던 이모 댁에서의 마지막 날, 나의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그곳을 나서게 되었을까. 새 시작의 서막에서 나오는 기대감이었을지, 또 다른 걱정의 바람이 불었을지 그 당시의 나는 아마 잘 몰랐을 것이다. 전학과 관련된 내 두려움이 제일 컸을 것이기 때문에.
새 집과 새로운 동네에 대한 그 어떤 기대감에서 나오는 두근거림보다는 계주 배턴을 넘겨받기 위해 선 앞에 서있는 선수처럼 마구잡이로 두근댔던 것 같다. 여전히 변화라면 멈칫하는 난데, 그 어린 날엔 얼마나 더 했을까. 심장이 뛰는 속도라도 일정 수준으로 맞춰놔야 잠에 들 것 같아, 새 집에 당도하기도 전 두 손을 모아 나름의 기도를 했다.
‘이번에도 내 편이 되어주세요. 친구 많이 사귀는 건 바라지 않으니 끝까지 같이 다닐 친한 친구 딱 한 명만 만들어 주세요.’
전학 절차를 밟고 첫 등교를 앞둔 내게 새 집과 새 동네는 그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학교, 그리고 그 학교 주위를 오고 가는 수많은 아이들의 대화 소리뿐. 여차 저차 엄마를 따라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 앞 놀이터에 적응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시점, 등교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신은 존재했고 이번에도 적당히 내 편을 들어주는 척하셨다.
그 시절 막막하게 느껴졌던 2학기를 채워줄 친구 정은 쌍꺼풀 없는 눈에 새하얗게 빛나는 피부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2학기마다 동요 대회를 하는데 우리 조는 이번에 ‘청소 당번’이라는 곡으로 나간다며 내게 은근히 참여를 권하는 눈빛을 보냈다. 먼저 말 걸어준 정의 친절에 감동했지만 고마운 마음을 애써 속으로 숨기던 중, 정이 어디로 이사 왔냐는 말과 함께 집에 같이 가자는 말을 건넸다.
정은 내가 살게 된 아파트 단지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나무 바닥에서 공기 대회를 하다 삐져나온 가시에 손바닥을 찔려 자연스레 보건실로 인도해주던 정을 따라 매일 등, 하굣길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어느새 서로의 집에 들러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하며 더 친해진 우리를 돌아보며 그렇게 신은 정말 나의 편이 맞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이었다.
2학기 중간고사, 처음 받아보는 점수로 빨갛게 채워진 수학 시험지를 돌려받았다. 망했다. 엄마한테 죽었다. 를 연신 외쳐대는 순간 정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 역시 발갛게 상기된 볼로 시험지에 얼굴을 묻은 채 위아래로 눈을 굴리던 중이었다.
붙어다니다 보니 운명의 장난처럼 비슷한 수학 점수를 받게 된 나와 정은 어쩌다 우리 집에서 수학 과외를 받게 되었다. 과외 선생님은 정의 소개로 알게 된 여대생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여리여리 얇고 가는 목소리로 그 시절 내가 너무 가지고 싶어 했던 샤프를 쥔 채 사각사각 거리며 수학 문제를 풀이해 주셨고, 나는 그날로 당장 모닝 글로리에 들러 문제의 그 샤프를 구매했다. 차분하게 수학 문제를 푸는 선생님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뭔지 모르게 그 샤프로 사각거리면 수학 문제가 잘 풀릴 것만 같았다.
과외 선생님이 다니시던 학교의 수업시간이 갑작스레 늦어져 과외 시간도 좀 늦춰졌고 끝날 시간마다 선생님을 배웅하고 나면 종종 퇴근하는 아빠와 마주쳤다. 정은 양복에 서류가방을 들고 퇴근하는 우리 아빠와 마주칠 때면 까르르 웃으며 내 뒤에서 부끄러운 듯 인사를 했고 아빠는 늘 그랬듯 허허 호호하며 호탕한 웃음으로 인사에 화답했다. 어느 날, 과외가 끝나고 난 뒤 엄마가 간식을 챙겨주자 정이 물었다.
근데... 아빠는 언제 오셔?
정이 우리 아빠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회식 때문에 늦을 거라는 나의 말에 정이 조금 실망한 듯 보였다. 궁금함에 우리 아빠를 왜 기다리느냐고 묻자 정은 얼버무리는 듯 우물쭈물하다 대답했다.
그냥 우리 아빠랑은 조금 달라서.
회사 다니는 아빠라서 네가 부럽기도 했어.
너무 의외의 대답이었기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서로를 부러워했던 것 같다는 생각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진짜? 그러면 우리 서로를 부러워했나 봐.
나는 아빠랑 친구처럼 지내는 네가 부러웠는데.
잠깐 아빠를 바꿔 봐도 좋겠는데? 영화처럼!
동네에서 조그만 분식집을 하시던 정의 아빠는 이따금 그녀의 등하굣길을 함께해주셨고 정은 그때마다 그 앙증맞은 오토바이 뒤에 타 있었다. 아빠 등에 폭 기댄 정을 보며 나는 그녀와 아빠 사이의 부드럽고 막역한 느낌을 부러워했다. 아빠 등에 안긴 채 활짝 웃는 정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포근해 보였다. 아빠 역시 내가 데리러 오라고 하면 데리러 왔을 테지만 아빠는 운전석에, 나는 뒷자리에. 떨어져 앉은 나와 아빠의 뭔지 모를 거리감이 딱딱하고 불편했다.
섬세한 과외 선생님 덕에 수학 점수를 회복할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 선생님이 바뀌고 그룹 과외로 전환되면서 우리 집뿐만 아니라 여러 친구들의 집으로까지 차츰 옮겨가게 되었다. 때문에 서너 명의 아이들 집을 차례로 돌아보게 되었지만 어느 곳도 유달리 달라 보이는 곳은 없었다. 그들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는 그곳만의 냄새와 이야기로 가득해 외려 충만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실, 아빠가 회식하고 들어온다고 하면
일찍 잠든 척 해.
왜?
술 냄새나는데 자꾸 목마 태워준다고 하거든.
아빠 취하면 용돈 두둑이 받는 건 좋은데
술 냄새가 지독해서 별로야.
술 안 마시고 들어온 날에는 말이 별로 없어.
엄마 말로는 쑥스러워해서 그렇대.
우리 아빠는 술 못 마시는데.
술 마시면 배달하기 힘들대.
어느 날 하굣길, 학교 앞 문방구에서 슬러시를 사든 우리는 놀이터로 돌아와 하교하는 아이들과 그들을 데리러 온 부모님을 훑어봤다. 그 시절을 지나오며 우리는 어떤 것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걸까.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님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아이들은 뭔지 모를 그 뒷이야기 속에서 알게 모르게 그들만의 가치 기준을 확립했던 것 같다. 각자의 그 가치 기준이 무엇이 됐든, 우리는 여전히 포켓몬스터와 디지몬을 섭렵하며 스티커를 모으는 게 제일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