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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준희 Mar 27. 2021

어디까지 내려야 하나요

도통 감이 안 잡히는 것들

 


  이제와 감이 떨어진 건가.

  도통 어디까지 내려야 하는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



     얼마 전, 뭐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만 아마도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것 같다. 병원에 가지 않으려 미련하게 버티고 계속 골골대다 극약처방 느낌으로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웬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에 들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애초에 병원 냄새 자체를 싫어하기도 했고, 그 공간의 위압적인 면모를 꽤 오랜 기간 가까이에서 접했기에 다른 이들에 비해 유달리 그곳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아팠던 아빠 류의 일화 때문에라도 병원에 자주 들러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그 여름의 기억이 자주 났던 터라 안 그래도 싫은데 더 싫어진 탓이 컸다. 들어서기만 해도 멀쩡했던 내 몸 어딘가가 아파오는 것 같은 그 끔찍하고도 무거운 공기가 나를 잔뜩 누르는 것만 같아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그곳을 계속 꺼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병원이란, 버티고 버티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찾게 되는 정말 살기 위한 최후의 수단과 같은 것이다.

아마 좀 무거운 감기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코로나 증상까지는 아닌데 혹시나 코로나일까 두려울 만큼 심한 콧물에 잔잔한 열감 그리고 오한까지 부르는 찰나였다. 엄마 뽀송이 주사를 맞아야 빨리 낫는다며 더 심해지기 전에 얼른 가보라며 병원으로 나를 내쫓다시피 했다. 어쩌겠나, 사람답게 살려면 가야지...


                   OOO님, 주사실로 들어가세요.


     팔에 놓는 주사가 아니었다. 맙소사, 엉덩이 주사다. 기껏해야 고3 시절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았을 때 빼고는 정기적으로 병원 다닐 일이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치과 치료 외 병원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엉덩이 주사는 꽤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이라고 할 만큼 반가울 것도 아니었지만 엉덩이 주사를 생각하면 자꾸만 둘째의 일화가 생각나 이상하게 반갑게 느껴졌다. 나는 둘째의 일화를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웁. 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간호사(주사를 꺼내 들며) 엉덩이 주사 놓을게요.

                                           조금만 내려주세요.

    둘째  (고민할 새도 없이 빠른 손으로)  네!

   간호사( 화들짝 놀라며)  괘, 괜,찮아요!

                                       그렇게 까지는 안 내리셔도...!  



     본래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그날도 별 의문 없이 내렸던 건지, 어렸을 때의 기억대로 행동한 것 때문인지, 생각보다 높은 수위에 간호사 선생님이 더 화들짝 놀랐단다. 이에 당황한 둘째는 주섬주섬 바지를 올리다 제가 더 당황해 얼굴이 붉어진 채, 사과할 일이라기엔 약간 바보 같은 실수였던 그 일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뱉었다고 한다.



     나는 당황했을 둘째의 표정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이 정도면 되겠죠? 하는 시늉으로 선생님을 돌아보며 아주 조금씩 내리다 이쯤이면 되겠다 싶은 순간 빠르게 동작을 멈췄다. 그런데 웬일인지 간호사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는 듯 더 내려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고 나와 선생님은 줄다리기하듯 아주 조금씩 서로의 눈치를 보며 적당한 위치를 찾았다. 이상하게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분명 지금보다 조금 어릴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별다른 느낌도 없이 주사라는 목적에만 집중해 하란대로 척척 했었는데, 이제는 어디까지 보여야 할지 그 정도를 모르겠다. 아마도 병원을 너무 멀리한 탓일 테지.







     병원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로 문득 어디까지 나를 보여야 할지 또 어디까지 나를 까발려야 부끄러울 일이 없으면서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고, 가까워지기에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은 거리가 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것들.

어릴 때처럼 하나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에 솔직함을 쏟아버리기에 이미 여타의 시선들에 함몰되어 버린 탓일까. 혹자는 그 모든 것들의 상위에 나라는 존재가 위치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얼마간 세상과 멀어진 이유에서 일까. 내 모든 이야기들을 비롯해 연애와 우정이라는 감정, 심지어 오래 알았던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다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위해 슬쩍 간을 보게 돼버린 건지. 자꾸 스스로 검열과 검수를 반복하게 되는 이 사실이 솔직히 조금은 씁쓸하기도, 한편으로는 이보다 더 빠르고 편할 게 뭐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되레 편안하게도 느껴진다. 어느 정도가 내게 맞는 쪽인지 여전히 파악 중인 게 맞지만, 아무래도 깊이 빠져들수록 이 고민 역시 답이 나오기까지 꽤 오래 걸릴 일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다. 느닷없이 주사를 맞다가, 살아가는 것이 무엇으로 외로운 것인지 그래서 왜 슬픈 것인지 조금 알아버렸다. 어찌 되었든 일단은 되도록 아프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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