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택의 날갯짓
1. 작은 선택이 미래에 큰 영향을 준다는 영화나 말들이 많다. 최근에 친구들과 만나 대화할 때 문득 이 생각이 강하게 더 들어 적어본다.
2. 음악을 할까 하던 친구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공계에 갔고 현재는 서울대 박사과정을 밟으며 창업을 했다. 요즘 스타트업들 보면 다 기술기반 회사들이 투자받던데 부럽다. 아무튼.
3.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공무원을 하라고 했다. 강요 아닌 권유를 이겨낼 만큼, 스스로 하고 싶었던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 만화를 그려볼까, 만화학원에 다녀볼까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당시 집 분위기가 그래서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하나의 갈림길 중 하나일 거다)
수학을 못하거나 과학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과학특수반으로 개구리 배도 갈랐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건 없었다. 그나마 좋아하는 건 책 읽기랑 만화 그리기였다. 하고 싶은 게 없으니 그냥 부모 말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했고, 지원도 다 그나마 공무원 하기 좋은 과를 골랐다. (이것도 하나의 갈림길일 거다) 티는 안 내셨지만 만족했던 부모님이었다. 만약 비경영 문과생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부모님도 추천 안 하셨을 거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우리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 나도 몰랐고, 부모님도 몰랐다.
4. 수험을 준비하며 연애와 대학 선택에서 부모님의 간섭 아닌 간섭을 받았다. 부모와의 마찰도 오랜만이라 중간에 한 달 정도 공부를 손에서 놔버렸다, 꽤 비틀린 이성관도 이때쯤 생긴 거 같다. 이것도 재밌는 갈림길이다. 은퇴하신 부모님은 지금에서야 미안하다고 하지만, 뭐 그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안 했다면 두 자식 키우기 쉽지 않았을 테니 등가교환 아니겠는가. 그냥 재밌는 갈림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5. 하지만 입학 후 비경영 문과생이 정말 힘들다는 걸 알았다. 커뮤니티나 블라인드, 구글링, 브런치, 스레드 등을 통해 다른 사람 의견 찾는 건 이때부터 생긴 버릇 같다. 요즘 유튜브에서 뜨는 박사님은 이걸 '시뮬레이션 과잉'이라고 하던데.. 뭐 시뮬레이션 돌리면 결과가 뻔한 걸 어쩌겠는가.
그래서 반수를 했고, 진짜 특이한 과나 무난한 경영과를 가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7대 전문직 어쩌고를 그때 찾아보면서 집 근처에 부동산과(감정평가사 아니면 자산 축적 때 도움이 될까 해서)랑, 경영과를 붙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반대했다. 더 좋은 학교 갈 것도 아니면서 돈을 뭐 하러 버리냐는 투로 말했고, 아버지의 쌍욕도 오랜만에 들었다.
지금의 지식과 경험이라면, 경영학과 경제학을 보는 곳이 이렇게 많고, 감정평가사 연봉 vs공무원 연봉, 다니던 대학의 7급 합격자 수 vs 경영학과 취업률 이 따위 걸 가져갔겠는데,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
학교도 다니고 시험도 보고, 수능도 보고 논술도 보고 언제 그런 걸 하겠는가. 할 정신도 없거니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베개에 얼굴 묻고 엉엉 울었던 거 같다. 회피형 인간의 성격이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할 때 포기하면서 생긴다는데, 이 때도 꽤 큰 갈림길이었던 거 같다. 하지만, 뭐 그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안 했다면 두 자식 키우기 쉽지 않았을 테니 등가교환 아니겠는가. 그냥 재밌는 갈림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6. 학교, 학과, 첫 직장, 이직 등 모든 게 선택의 연속이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여기에 적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다. 약간의 남 탓이 있는 거 같은데 뭐 맞다. 다만 탓하면서 끝내기보다는, 그냥 나는 내가 뭐가 문제인지 알고, 뭐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안다는 거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스스로의 결정도 좀 하고, 순응도 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차원에서 적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