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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Jul 19. 2021

엄마와의 드라이브

친구와의 약속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나를 보곤 엄마가 차 키를 챙겼다. 엄마는 종종 시간이 될 때면 외출하는 나를 데려 다 주거나, 데리러 온다. 엄마 차를 타면 엄마는 운전석에 나는 조수석에 앉는다. 그리고 차가 주차장에서 빠져나가기도 전에 나는 자연스럽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지하주차장에 차가 엄청 많네’ 

‘우리 아파트가 오래되긴 했나 봐 나무들이 엄청 높게 자랐어’ 

‘예전에 여기 있던 갈빗집은 없어진 건가? 졸업식 때 여기서 밥 먹었는데’ 

...


엄마와의 드라이브는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시작됐다. 집에서 차로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매일 같이 나는 엄마 차를 타고 등교하고, 엄마의 퇴근시간에 맞춰 차를 타고 집에 왔다. 6년 동안 매일 엄마와 차를 타고 다녔다. 이제는 흐릿한 기억이지만 운전하는 엄마 옆에서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그날 하루 친구들과 놀았던 이야기를 쏟아내고, 새로 배운 교과서 내용을 자랑하고, 짧은 다리로 콘솔 박스를 툭툭 차며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남아있다. 


엄마와의 드라이브는 즐거웠지만, 그럼에도 나는 항상 엄마가 무심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흔한 TV 드라마에 나오는 워킹맘처럼 바쁜 일상에 치여 살던 사람이다. 학교 준비물을 제때 챙겨주지 못하고, 소풍날에는 김밥집에서 사 온 김밥을 도시락통에 넣어주는 그런 워킹맘 말이다. 학교 준비물을 잘못 가져오거나, 화려한 김밥이 가득한 친구의 도시락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무심하다고 생각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엄마의 무심함은 나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바쁜 엄마의 무심함을 핑계로 점점 거리를 두고 대화를 거부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 나와의 관계를 위해 서툰 엄마가 선택한 방법은 드라이브였다. 이제는 충분히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나이에도 엄마는 시간이 될 때마다 차로 나를 데리러 왔다. 학교로 학원으로 집으로. 운전을 하는 엄마 옆에 앉으면 나는 다시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창밖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큰소리로 엄마를 탓하고 싸우는 날이 많았고, 입을 꾹 다물고 서운함을 표시하는 날도 있었지만, 즐거운 나와 서운한 나, 억울함에 울던 나의 긴 이야기를 엄마는 모두 끝까지 들어줬다. 


나는 이제 다정한 엄마의 모습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정성스레 소풍 도시락을 싸주는 것뿐만 아니라, 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어설픈 노래에도 잘했다고 웃으며 칭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사춘기 중고등학생의 비난도 차분히 들어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다정한 엄마도 있다는 것을 안다. 긴 시간 동안 엄마는 수천 킬로를 달리면서 나에게 꾸준히 다정한 사랑을 표현해 왔다. 그동안 잘못 챙겨 온 준비물로 부끄러웠던 날은 웃고 넘길 에피소드가 되었고, 친구의 화려한 도시락을 같이 맛있게 먹었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랐다. 


여전히 나는 종종 엄마 차를 탄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종종 흘러가듯 이야기했던 말을 기억하고 나를 위한 반찬을 준비해두거나, 필요했던 물건을 택배로 보내준다. 


그리고 나는 가끔 꿈속에서 어린 시절 엄마 차를 타고 가면서 보았던 차창 밖 풍경을 마주한다. 꿈속에서 나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차 안에 앉아 창밖과 운전하는 엄마를 번갈아 보며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 내 기억 속에는 부엌에서 음식을 하거나, 함께 숙제를 해주거나, 하굣길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엄마를 보며 행복해한 기억은 없다. 대신 운전하는 엄마 옆에 앉아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던 그 매일의 시간이 나에게는 엄마와 함께한 가장 포근하고 따뜻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랑의 표현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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