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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Sep 07. 2021

관계: 곁에 있어 주다.

넷플릭스 장편 다큐멘터리 <나의문어 선생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이다.

남아프리카 바다 해초 숲을 헤엄치던 영화감독이 특별한 문어를 만난다. 낯선 인간을 경계하던 문어는 어느새 인간과 교감하며 우정이라 부를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간다. 


작품의 감독인 크레이그는 324일간 매일 맨 몸으로 바닷속을 헤엄쳤다. 문어를 만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매일 바다에 찾아와 자신 곁에 다가오는 인간에게 문어는 점차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손을 자신의 다리로 감싸고 장난을 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문어와의 만남 이후 크레이그는 문어에 대해 조사한다. 문어는 지능이 높은 편에 속한다. 크레이그를 며칠 간 관찰하고 그가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부터 포식자 상어가 나타나면 주변 조개껍질로 몸을 덮어 위장을 하거나, 먹이를 잡기 위해 지능적으로 해초숲과 바위굴을 이용하는 사냥 기술까지. 크레이그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보이는 문어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문어가 지능이 있는 동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괜히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이 '더 이상 문어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 모임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이 똑똑한 문어는 해가 뜨면 오리발을 하고 자신을 찾아 올 크레이그를 기다린다. 그에 품에 다가가 빨판을 붙이며 장난을 걸거나, 물고기 떼 사이로 헤엄쳐 정갈한 물고기 떼를 흩뜨리는 장난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어에게 감히 애교를 부린다, 사랑스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인간적인 표현력이 아쉽지만, 문어가 정말이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초숲이 넘실대고 햇빛이 쏟아지는 바닷속에서 문어와 장난을 치는 크레이그의 모습을 보며 아름답다 따뜻하가 기분 좋다는 의미를 가진 탄성을 내뱉었다. '와' 


강한 힘을 가진 커다란 빨판들, 물컹이는 머리와 흐느적거리는 몸, 붉은 듯 검은색까지 문어의 모든 특징은 징그럽거나 무서운 소재로 여겨져 왔다. 문어가 우리에게 사랑받는 순간은 안전하게 죽은 채 우리의 먹이가 되었을 때다. 보들보들하고 적당히 쫄깃한 문어숙회일 때.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를 보았다면 이제 문어는 먹이가 되기 이전까지만 사랑스러운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그 사랑스러웠던 문어가 뜨거운 물에 삶아져 다리가 총총 썰린 채 접시 위에 올라와 있는 장면에서 징그러움을 느낄 것이다. 이 작품의 여운이 마음에 남아있는 한. 그때까지는 문어숙회를 못 먹지 않을까. 


어느 날 문어는 포식자 상어의 공격을 받는다. 급하게 굴 안으로 몸을 숨겼지만, 다리 또는 손을 상어에게 뜯겼다. 상어의 습격으로 큰 부상을 입은 뒤 문어는 한동안 크레이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 시간을 보낸 뒤 부상을 이겨내고 새로 생긴 다리와 함께 다시 나타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카메라를 들고 문어 곁은 맴돌던 크레이그는 고민한다. 상어에 공격을 받는 문어를 구해줘야 할지, 상처 입은 문어가 회복할 수 있도록 먹이를 가져다주어야 할지. 오랜 시간 문어와 우정을 나눈 그에게 문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지만, 끝내 문어가 자연의 생태계 안에서 독립적인 삶을 만들어가도록 인내한다. 그저 매일 문어를 살피러 바닷속을 헤엄치고, 문어의 곁에 있을 뿐.


그리고 크레이그는 문어의 죽음까지 지켜본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문어는 알을 낳고 죽는다. 죽는다는 말보다는 죽음을 택한다는 말이 맞다. 알을 낳은 문어는 더 이상 사냥을 하거나 먹이를 찾지 않는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곡기를 끊고 말라버린 문어를 상어가 물고 떠난다. 문어를 떠나보낸 크레이그는 울먹이며 문어가 보고 싶다는 인터뷰를 남긴다.


크레이그는 문어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문어를 통해 존중하는 관계를 배웠다고 한다. 사랑할지라도, 상대의 삶에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관계. 자기가 받은 생명의 몫을 자기답게 감당하는 것. 그가 만난 문어는 바닷속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은 문어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크레이그를 통해 더욱 빛나게 되었다. 문어가 스스로 상어의 공격을 이겨내고, 회복하고, 예전의 삶을 즐기고 자신의 몫을 다하며 죽음을 선택하기 까지. 온전히 자신의 생을 다하고 떠난 문어를 그리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크레이그의 마음을 조금을 같이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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