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부귀영화 10화

우연과 우연으로 엮인 운명

[영화] 미나리 이즈 원더풀

by 랩기표 labkypy





'미나리 이즈 원더풀'


아무것도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땅을 일구던 제이콥(스티브 연 분)은 고생 끝에 낙을 맞이하지도 않았고, 순자(윤여정 분)가 차가워진 부부의 관계를 녹이지도 못했다. 하나 들어맞은 게 있다면 뱀이 나오는 계곡에 심은 미나리는 잘 자랐다는 것이다. 순자는 심장이 아파 잘 뛰지 못하는 손주와 함께 바퀴가 달린 집 주변에서 계곡을 찾아 미나리를 심었다. "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 맛있는 미나리는 아플 땐 약도 되고, 아무나 와서 먹어도 된다"며 씨를 뿌렸다. 그렇게 뿌린 씨는 영화가 끝날 때즈음에 풍성하게 자랐다. 쫓기듯 달려왔던 제이콥이 그 미나리를 따면서 "참 잘 자랐네, 할머니가 땅을 잘 보았네"하며 조금은 평온한 표정을 하며 아래로 쳐다보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그렇게 미나리는 숱한 사건 사고가 있었던 시간을 뚫고 새파랗게 잘 자랐다.



이상을 꿈꾸는 남편과 현실을 지키는 아내


농장주를 꿈꾸고 있는 남편 제이콥과 지금 할 수 있는 현실에 충실하자는 아내 모니카(한예리 분)가 있다. 심장이 아파 뛰지 못하는 아들(앨런 김 분)은 죽음이 두렵다. 그의 누나(노엘 조 분)는 이제 어린 티를 벗고 제법 성숙한 여학생 티가 난다. 남편의 이상과 아내의 현실은 충돌하며 폭발한다. 발언권이 없는 아이들은 'Don't Fight'를 적은 종이 비행기를 공중에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울화통이 터지는 상황 속에서 두 부부가 극적으로 찾은 해답은 아픈 아들을 돌봐줄 손주들의 외할머니 순자를 미국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그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그렇게 잠시만, 미나리처럼 낯설고 척박한 땅이지만 기꺼이 푸르고 생생하게 곁에 머물러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니카는 엄마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주기를 바랐고, 그 부탁에 순자는 흔쾌히 곧장 낯선 땅으로 온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를 지켜보는 내내 나는 웃음과 눈물로 뒤섞였다. 이민자로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으로서 제이콥의 눈물겨운 노력은 30대 후반의 나에게 충분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성공에 대한 열망. 숨은 잠재력의 발견. 남들과는 다르다는 믿음 같은 것들이 밤낮없이 드넓은 평지 위에 펼쳐졌다. 그런 남편을 아내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의 건강과 오늘의 안락함을 담보로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것은 자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자식들에게 '아빠가 무언가 이루어 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제이콥은 아내의 불만과 팍팍한 현실이 장밋빛 미래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틀렸지만 나중에는 맞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굳게 다문 입술과 꽉진 주먹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비틀거리던 삶이 할머니의 등장으로 제대로 설 것 같았지만, 틀렸다.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자던 아이가 "할머니 왜 침대에 피피 샀어요?"라고 했을 때 나는 자신의 실수를 할머니에게 떠 넘기려고 하는 아이의 귀여운 장난으로 여기고 '풋'하고 웃었다. 하지만 그 잠자리 실수는 진짜 할머니 것이었다. 이후 순자는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미나리 같은 새파람은 착각이었다. 할머니 순자는 늙었고, 아팠으며 치유되지 못했다. 네 가족 또한 그와 동시에 바스러질 것 같만 같았다.


그 불안 속에서 너무나 가슴 아픈 장면들이 연속해서 이어진다. 어디에도 웃음을 찾을 수 없었다. 어서 빨리 출구를 찾기 바라는 고요와 진지함이 관객이 몇 명 되지 않는 영화관 속 빈자리에 앉았다. 부부의 갈등은 심해지고, 작물은 썩어가며, 돈이 없어 단수가 되더니, 농작물 공급 계약은 갑작스레 취소된다. 이쯤 되면 그들에게 작은 빛이라도 하나 비치지 않을까 생각했을 때, 아들의 심장은 기적처럼 나아가고, 제이콥은 직접 팸플릿을 만들어 영업을 해 5시간 거리에 있는 한인마켓과 공급계약을 극적으로 체결한다. 이제 해피엔딩만이 남았을까? 틀렸다. 영화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로 관객들을 소용돌이에 몰아넣는다.



시대정신을 담아낸 영화



시대정신을 담아낸 영화는 사랑받는다. 이 영화에 대한 각종 수상과 더불어 아시아계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한국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가 화제다. 혐오와 갈등으로 고통을 앓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윤여정 배우가 극 중 대사로 읊은 것처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은 불안의 시대에 차별 없는 사회와 공감과 연대 그리고 개척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슬로건이다. 이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모든 수상과 영광은 이 메시지를 더 크고 넓게 알리기 위함인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미나리 이즈 원더풀'




©️sc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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