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발탄>
https://youtu.be/PU1fOn-F9qw?si=K2RSEK30T7l5kwra
철호는 6.25 전쟁 직후 남한으로 내려왔다. 풍족한 집안 출신에 학벌도 좋았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 어느 개인 사무실에서 회계사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 트라우마로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 두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만삭인 아내와 어린 딸까지 부양하기는 쉽지 않았다.
무거운 어깨는 축쳐졌고, 눈은 퀭했으며, 말은 힘을 잃고 바닥을 기었다. 오랫동안 치통에 시달렸지만 돈이 아까워 치료할 수 없었다. 점심은 돈을 아끼려 보리차로 대신했다. 하루의 끝은 해방촌에 있는 판잣집에 걸터 앉아 실성한 어머니의 ‘가자~!’라는 소리를 듣는 거였다. 그럼에도 박봉인 직장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했다.
동생은 전쟁에서 총상을 입고 제대를 했지만, 가난한 국가는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못했다. 일자리도 없었다.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정부는 뚜렷한 대책 없이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곪게 만들었다. 동생은 팔 다리를 잃은 상이군인들과 거리를 헤매다, 밤이 되면 대폿집에서 술에 절어 신세 한탄을 길게 뽑아낸 뒤에야 겨우 흩어졌다.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동생은 겨우 버티며 살아가는 형을 미련하다고 했다. 양심과 법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그는 비틀어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삐뚤어졌다. 그는 사랑했던 여인이 남긴 건총 한 자루를 들고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은행 강도는 충직한 군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고,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철호가 동생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된 바로 그날, 그의 아내는 둘째 아이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게 된다. 겨우 버티던 그는 결국 무너졌다. 아내의 죽음을 뒤로 한 채 정처없이 걷다가 아내 병원비에 보태라며 여동생이 미군에게 몸을 팔아 준 돈을 충치를 뽑는 데 쓴다.
두 개 다 뽑아주쇼.
그러다가 과출혈로 쓰러집니다.
괜찮소.
안 됩니다. 나가세요.
그러나 철호는 곧 다른 치과에서 자신이 지고 있는 짐을 덜어내듯, 그동안 쌓인 괴로움과 고통을 모두 한 데 털어내듯 남은 이를 뽑았다. 피를 흘리며 비틀거린 채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로 뱉어졌다. 택시를 잡아 타고 방황한다. 동생에게로… 죽은 아내에게로… 집으로 …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스스로 달래는 것에 익숙했던 철호는 그렇게 쓰러졌다.
영화 <오발탄>은 1961년에 개봉한 유현목 감독 작품이다. 이범선의 소설이 원작이다. 2024년 영화인들이 뽑은 한국영화 100선 중 기생충에 이어 4위로 뽑혔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복원한 자료를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는 전후 시대 암울한 현실을 겨우 견디며 사는 이의 고달픔을 그린다. 출구 없는 지옥같은 현실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신을 두고 신이 버린 오발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아픔을 다룬다.
전쟁은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건물과 희망이 무너진 자리에는 불안과 허무만이 가득했다. 이승만 정권의 몰락은 부패와 더불어 길잃은 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은 오발탄 개봉으로부터 약 60년이 지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났다. 그런 우리에게 영화 <오발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대마다 아픔이 있다. 이제 우리는 굶지 않지만, 불안에 떨며 자살률 1위라는 멍에를 안고 있다. 왜 그럴까.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잘살게 된 우리나라를 보며 얼마나 놀라워할까. 그럼에도 불안에 떨며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괴리감을 느낄까.
우리에게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일까. 아직도 스스로 쓸모 없는, 신이 버린 오발탄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넘처나는 이 시대의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 고통을 넘어 밝은 미래를 맞이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가 다시 마주할 새로운 아픔은 무엇일까.
오발탄이 아직도 여전히 우리에게 명작으로 남는 이유가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