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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Sep 28. 2024

별은 뜨고 지지만

[넷플릭스] 극악여왕



이 시리즈는 마치 두 개의 별이 서로의 궤도를 맴돌며 빛을 발하는 장관처럼 흥미로웠다. 1980년대, 일본이 버블 경제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 여자 프로 레슬링은 그 시대의 에너지를 담아 대중의 열광을 이끌었다. 그 중심에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하나는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빛과 같은 존재, 나가요 치구사. 또 다른 하나는 어둠 속에서 광기를 내뿜으며 모든 악을 끌어안은 덤프 마츠모토였다. 그들의 대립은 선과 악, 빛과 어둠의 투쟁이었다. 그 대립은 전 일본에 생중계될 만큼 강렬했고, 사람들은 그들 속에서 자신의 갈등을 보며 열광했다.

겉보기에는 너무나 달랐던 이 두 사람은 사실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그들은 같은 해에 프로 레슬링에 입문했고,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나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며 강해지기를 선택한 자매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의 길은 어느 순간 갈라졌고, 서로의 운명을 거울처럼 반영하며 선과 악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가요 치구사

치구사는 마치 버려진 꽃처럼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그녀는 친척집에서 외롭게 자랐고,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채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을 결심했다. 그녀가 선택한 길은 프로 레슬링, 그곳에서 그녀는 청순한 외모와 강력한 기술로 빛나는 별이 되었다. 치구사는 레슬링을 단순한 싸움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것은 무대였고,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선사하는 쇼였다. 그녀는 스포트라이트를 사랑했고, 그 빛 아래에서만 자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도 갈등은 존재했다. 동료 아스카는 프로 레슬링 본질에 집중하자고 말했지만, 치구사는 더 화려하고 찬란한 길을 택했다. 그녀는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갈망하며 예능,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수많은 부상을 입었지만, 쓰러지지 않고 끝없이 일어났다. 그 모습은 마치 수없이 꺾여도 다시 피어나는 들꽃처럼 강인했다.

덤프 마츠모토

덤프 마츠모토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가난 속에서 자랐다. 그녀는 마치 꺼질 듯한 작은 촛불처럼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고, 세상 속에서 자신을 숨기기만 했다. 그녀의 뚱뚱한 체형과 외모는 두드러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더욱 나약한 존재로 여겼다. 치구사와 함께 프로 레슬링에 입문했을 때도, 그녀는 링 밖에서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늘 치구사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 열망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 찾아왔다. 자신을 지운 치구사의 인터뷰에서 배신감을 느꼈고, 믿었던 가족조차 그녀를 외면했다. 마치 그녀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 같았다. 그때 덤프 마츠모토는 마음 깊숙이 결심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존재가 되어, 그 악을 통해 세상을 뒤흔들겠다고.

그리고 그 결심은 그녀를 완전히 바꾸었다. 며칠간 행방불명된 그녀가 다시 링 위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전의 소심하고 조용한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쇠사슬과 포크를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치구사를 공격하는 악마 같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경기는 이제 유혈 사태로 이어지는 혼돈 그 자체였다.

별은 뜨고 지지만,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사람들은 선과 악의 구도를 좋아한다. 그것은 마치 두 가지 색으로만 그려진 명확한 그림과 같다. 선과 악, 동지와 적. 그런 단순한 구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 확인하고, 그로 인해 소속감을 얻는다. 프로 레슬링은 바로 그런 인간 본능을 가장 극적으로 이용한 엔터테인먼트였다. 링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대본에 짜인 것이든 아니든, 그들의 캐릭터는 뚜렷했고,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자신을 투영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별은 뜨고 지지만,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는 것. 치구사와 덤프 마츠모토도 한때는 빛나는 별이었지만, 결국 그들도 시간이 지나 스포트라이트에서 사라졌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우리는 새로운 별을 찾고 또 다른 환상을 쫓는다.

하지만 진정한 빛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그 빛은 바로 우리 안에서 나온다. 덤프 마츠모토가 어느 날 갑작스레 은퇴를 결심했듯, 그녀는 결국 '덤프'라는 별명 뒤에 숨겨진 진짜 자신, 카오루를 찾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별을 따라가는 여정 속에서, 과연 지고 뜨는 별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영원히 지지 않는 그 별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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