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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레몬 Apr 26. 2023

01. 미나리전

밥이 먹고 싶어서

“리아야, 너 감나무집 할머니네 가게 일 좀 돕지 않을래?”     


눈부신 햇살이 창문을 뚫고 리아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이불로 몸을 칭칭 감싼채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뒹굴거리는 리아에게 옆집 아주머니가 제안을 했다. 무거운 눈두덩이를 애써 들어올린 리아가 눈을 느리게 두어번 꿈뻑였다.     


“감나무집 할머니네요?”     


“감나무집 할머니가 요즘 몸이 편찮으셔서 가게 일이 너무 힘드시대. 혹시 너가 와서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더라. 가서 일 좀 도와드릴 수 있겠니?”     


리아는 감나무집 할머니의 마른 등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감나무에서 감을 서리하다 발각되면 할머니는 인자하게 웃는 얼굴로 작은 손에 잘 익은 감 두어개를 쥐어주셨다. 양 손 가득 감을 들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에게 또 감서리를 했냐고 야단을 맞았다.      


고향에 돌아온 후 감나무집 할머니를 오랜만에 뵈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할머니의 마른 등이었다. 세월이 흘러 체구가 왜소해진 할머니는 한 눈에 리아를 알아보았다. 할머니의 감나무에는 여전히 감이 잔뜩 열렸고, 지난 가을 할머니는 잘 익은 감 한소쿠리를 리아의 집에 들고 오셨다. 감 좋아하던 것이 기억났다면서.      


“네, 알겠어요.”     


감나무집 할머니라면 그 일이 무엇이든 기꺼이 도울 의향이 있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리아가 양쪽 눈에 눈꼽을 떼고 양치를 시작했다. 뒤에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래, 뭐라도 하자.          





감나무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은 매우 작았다. 동네에 터를 잡은지 오래된 식당은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었다. 떨어진지 오랜 간판 덕에 외부에서 보면 이 곳이 식당인지 카페인지 모를 정도였다. 문 손잡이는 떨어져서 덜렁거렸고, 한 쪽 다리가 짧아 밸런스가 안맞는 식탁들은 그릇을 놓을때마다 양쪽으로 덜컹거렸다.     

“할머니, 여기 의자들이 왜 이래요?”     


설상가상으로 몇몇 의자들은 밖에서 주워온 것인지 짝이 전혀 맞지 않았다. 감나무집 할머니는 홀홀홀 하고 웃었다      


“식당은 음식 맛만 좋으면 된다. 거 좀 앉아있어봐라”     


그리고 이 한마디를 남기고 할머니는 홀연히 주방으로 사라졌다.      


“와 할머니 이게 뭐에요?”     


‘앉아서 기다려라’는 말을 남기고 주방으로 사라진 할머니는 큰 접시에 미나리전을 가득 담아 나타났다. 연기가 모락모락나는 뜨끈뜨끈한 전이었다.     


“어서 먹어라. 자, 아 해라.”     


손으로 크게 뜯어 돌돌 말아 간장에 푹 찍은 미나리 전이 리나의 입에 한가득 들어왔다. 아삭아삭한 미나리가 고소한 기름과 함께 입에서 춤을 췄다. 간장에 고춧가루와 식초를 더해 감칠맛을 주는 소스가 기름의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한입 가득 있던 미나리전이 금새 넘어갔다.     


“어이구, 잘 먹으니 보기 좋네. 많이 먹어라.”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미나리 전을 또다시 크게 뜯어서 한입에 먹기 좋게 둘둘 말아주었다. 이번엔 새콤달콤한 초장에 푹 찍은 미나리 전에 입에 한가득 들어왔다. 미나리전은 식감이 재미있다. 전으로 지져도 아삭아삭함이 죽지 않아 씹는 재미가 있었다. 신선한 자연의 맛이었다. 리아는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걸 먹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 집에 돌아왔지만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침대가 몸을 잡아 당기는 것 같았다. 왜 회사를 그만뒀지,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랬나. 아니야, 그랬으면 내가 미쳤을거야. 남들은 다 참고 하는 건데 나에겐 왜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내가 문제인걸까. 침대에 누우면 우울함과 걱정이 자신을 집어 삼키는 것 같았다. 옆집 아주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문을 했지만 그마저 달갑지 않았다. 지금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너무나 싫었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이러고 있자. 너무 힘들잖아.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었다.      


리아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무도 없는 고향의 빈집에 왜 돌아왔는지 깨달았다. 홀로 남겨지고 십년을 넘게 비워두었던 이 집에 왜 오게 되었냐면, 너무 그리웠다. 따듯하고 신선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감나무 감도 먹고 싶었고, 엄마가 텃밭에서 캔 배추로 자주 해주시던 배추전도 먹고 싶고, 시금치 된장국도 먹고 싶었다.      


“어이구, 왜 울어.”     


미나리 전을 씹다가 리아는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는 리아의 등을 쓸어주었다. 리아는 한참을 울었다. 




안녕하세요, 신레몬입니다. 오늘부터 힐링소설 '밥 한끼 어때요'를 연재합니다. 주인공인 리아는 어떻게 성장해갈까요? :-)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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