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브 Liv Aug 10. 2020

거울

1.

오랑우탄 한 마리가 동물원 한 켠에 놓여진 거울을 바라본다. 낮선 무언가에 호기심을 갖는건가? 그러나 이내 침입자다!를 외치는 듯 우우우 소리를 내며 가슴을 친다.
침입자도 자신을 똑같이 가슴을 치며 자신을 위협한다.

자신을 위협하는 침입자를 툭툭 치고 옆으로 가보려고도 하지만 이내 튕겨져나온다. 뭔가 이상하다. 오랑우탄은 곧 앞에 있는 것이 침입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생식기를 비춰보고 얼굴에 묻은 얼룩을 지워내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나는 거울을 보면 1970년 고든갤럽이 설계한 동물 거울실험이 생각난다.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었던 자의식이 동물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밝혀낸 실험.


2.

비인간인격체, 즉 인간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지만 인격을 갖춘 존재라고 볼 수 있는 동물들이 발견된 것이다. 내가 나를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인간만 가졌다던 자의식의 가설이 무너졌다.


3.

나 혼자 신경쓰기도 벅찬 세상에 다른 것까지 신경쓰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우리는 남의 고통을 서랍 안에 담아 신경에 거슬리지 않게 잘 닫아 둘 수 있다. 동물의 고통 또한 마찬가지다. 타자화된 세상에 그들은 그저 가축이고 재산이고 물건일 뿐이다.

태어난지 4개월된 송아지가 처음으로 우리밖에 나와서 가는 곳이 도살장이고, 상품성 없는 수컷 병아리들을 태어나자마자 믹서에 갈아버리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싶지도 않다.

작가의 이전글 조회수 8만을 찍었다: 떡상을 위한 기본 세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