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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 Feb 22. 2023

일상의 권태를 극복하자

그렇게 하나씩 바뀌어 간다

문득 일상이 지겨울 때가 있다. 뭘 해도 재미가 없다. 싫증이 난다. 어제는 좋았던 사람이 오늘은 무척이나 밉다. 본의 아니게 주변에 신경질을 낼 때가 많아졌다. 새로운 걸 시도하기에는 귀찮고 번거롭다. 그 이전에 흥미가 생기는 일도 없다. 그렇다 보니 도전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으니 보람을 느낄 일도 없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지겹다”던 말이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가 갈 것 같다. 나도 일상의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군대는 권태감을 느끼기에 딱 좋은 곳이다. 여간해서는 바뀌는 것이 없어서다. 이곳 군항은 -수시로 드나드는 군함을 제외하면- 일 년 전이나 오늘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매일 아침이 되면 어제 봤던 얼굴을 또 봐야 한다. 어제 입었던 옷을 또 입는다. 오늘 점심은 일주일 전에도 나왔던 듯하다. 비린내와 짠내, 신나 향과 매연 냄새에 둔해졌다. 하루 세 번 나오는 군가 메들리의 순서를 외웠다. 쳇바퀴 돌 듯하는 이곳에서 새로운 자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복은 지겨움을, 다시 지겨움의 반복은 권태감을 낳았다.


권태가 문득 나를 찾아온 것처럼, 문득 이 권태마저 지겨워졌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것이 권태인줄 알면서도,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스스로가 싫어졌다. 나는 이 무기력함을 어떻게 할 작정이다. 마음을 새로 고쳐먹었다. 극복해 버리자!


이하는 권태를 극복하는 데에 쓰는 몇 가지 방법.


첫째, 일상에 더욱 빠져들기로 했다. 일상이 지겨울 때 여행을 갈 수도, 휴가를 낼 수도 있겠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잠깐의 벗어남이 휴식을 줄 수는 있으나, 휴식과 일상 사이의 괴리감을 감당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우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당연하게도 그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다. 일상에 몰입한다는 것이 그저 꾹 참고 버틴다는 말은 아니다. "다들 똑같이 힘드니 유난 떨지 말라"는 식의 무책임한 말도 건네고 싶지 않다. 단지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고, 삶의 주변부에 있던 존재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소함에서 삶의 의미를 창출할 수도, 의외의 행복을 얻어낼 수도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지만 눈에 자세히 담아두기로 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이지만 이제껏 몰랐던 면을 발견하는 데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이미 봤던 책의 명구를 곱씹는다. 이불속에서 풍기는 섬유유연제 향기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부식으로 나온 딸기우유가 유난히 달콤하다. 익숙함 속에도 낯섦은 분명히 존재했다.


둘째, 나에게 소홀하지 않기로 했다. 일상으로의 몰입은 자연스럽게도 삶의 중심부에 있는 나를 주목하게끔 한다. 삶 이전에는 내가 있다. 내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삶 역시 무너진다. 나는 그간 정체되어 있었다. 멈춰있다는 자괴감에 괴로워했다. 자기 계발과 자기 관리에 소홀했음을 반성하며, 인생의 주권자로서 제구실을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책장에 박아놨던 맨큐의 경제학을 다시 꺼냈다. 친구와 체중 감량 내기를 시작했다. 손발톱을 바짝 깎고 수염과 눈썹을 꼼꼼히 정리했다. 부르튼 입술에 립밤을 발랐다. 자기 전에 비타민C를 꿀떡 삼켰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경험하고 있다. 육체는 건강하게, 정신은 성숙해지고 있다.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발전하는 경험은 그 자체가 행동하는 원동력이 된다. 일단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성취감은 덤이다. 노력과 보상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더 많아졌다. 목표가 생겼다. 마음이 두근두근 한다. 설레어 잠을 못 잘 때도 있다. 더 열심히, 더 값지게 살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삶의 이유를 제공하는 중이다.


셋째, 놀이를 찾는다. 놀이는 즐거움을 얻기 위한 행동이다. 고로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좋다. 공부가 즐거우면 공부를, 운동이 즐거우면 운동을 하면 된다. 으레 하는 게임도 좋다. 대신 수동적인 자극은 피한다. 즐거운 일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알고리즘의 추천이나 큐레이팅은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과하게 의존할 것은 못된다. 진정 즐거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고민해 봐야 안다. 그리고 해 봐야 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진득하게 할 수 있는 놀이를 찾아본다. 사실 꼭 그럴 필요도 없다. 일회성이어도 괜찮다. 앞서 말했듯 즐거울 수 있으면 무엇이든 좋다. 무색무취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면 족하다.


나는 노래를 듣는다. 좋은 노래, 훌륭한 아티스트를 새로 접할 때는 보물을 발견한 듯 기분이 좋다. 나만 아는 듯한 우월감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구보를 뛸 때도 있다. 처음에는 오분 뛰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5km 정도는 너끈히 뛸 수 있게 됐다. 땀을 확 흘리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래 달리면 정신적인 행복감이 든다고도 한다. 그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하던가. 이외에도 즐기는 것은 많다. 책 읽기, 커피 마시기, 무한도전 돌려 보기, 뭐가 되었든 간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들이다.


넷째, 계획적으로 생활한다. 권태감은 무기력감을 동반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꽁꽁 묶어둘 때가 많다. 때론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렇게 거창하진 않다. 가벼운 다짐도 좋다. 나 역시 ‘나는 오늘 빨래를 돌리고, 관물대를 정리할 거야’ 정도의 다짐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사소하지만 이게 그날의 목표가 된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는 수고를 한다면 손쉽게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목표를 완수하면, 그날은 계획한 것을 다 지킨 날이 된다.


너무 자기 위로식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사실 맞다. 그러나 더 큰 계획을 해내기 위해선 작은 것부터 지키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간 나는 그렇지 못했다. 계획적인 인간이지만, 계획적으로 행동하진 않았다. 큰누나는 항상 나의 우유부단함을 지적하곤 했다. 옛말에 지행합일이라고 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벼운 계획이라도 엉덩이부터 떼고 시작하자. 작은 게 반복되면 그게 루틴이 된다.


나는 이렇게 권태감을 서서히 극복하고 있다. 그런 와중 어느덧 나도 전역을 앞두고 있다. 이십 대의 첫 번째 챕터를 끝내는 느낌이다. 새로운 시작이 두렵기도 하지만 설레기도 한다. 일상에 몰입하는 것, 나에게 집중하는 것, 즐거움을 찾는 것, 계획적으로 사는 것 모두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삶이 아무리 권태스러워도 더 나은 내일을, 더 나은 삶에 미련을 가지도록 하는 기대감이 아닐까. 그렇기에 오늘도 기대한다.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삶, 더 행복할 수 있는 기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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