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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Dec 25. 2022

직장인, 유학갈 수 있을까 3화

지원동기

2022년 크리스마스다. 집 근처 카페에서 대학원 지원동기서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삼십대에 입시생이 되었다고 가끔 우는 소리를 하지만, 실은,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 좋아...!


암튼 영어 점수를 해결했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그 다음엔 가고 싶은 프로그램의 초안을 만들어 놓으면 좋다. 바로 이력서(CV)와 지원동기서(Motivation Letter) 초안인데 국가나 학교에 따라 세부 내용은 좀 다르다. 일부 대학들은 석사 지원 시에도 교수나 상사의 추천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근데 이러면 프로세스가 살짝 복잡해진다. 추천서를 부탁할 분들에게 사전에 연락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어떤 분은 이 과정을 패스하기 위해 추천서 받지 않는 프로그램만 지원했다고 한다. 다행히 핀란드 대학들은 석사 지원 시에는 추천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가을부터 슬슬 이력서와 지원동기서 작업에 들어갔다. (실제 지원은 12월~1월 사이)


그런데 본의 아니게 10월, 11월이 좀 바빴다. 가장 들어가고 싶은 프로그램에서 가산점을 받으려면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리 차근차근 진행했다면 좋았겠지만... 솔직히 온라인수업? 띄엄띄엄 생각했다. 한국 직장인에게 온라인 수업이란 무엇인가. 모니터 한 쪽에 화면 띄워놓고 다른 할 일 하면서도 할 수 있는 그런 요식행위 아닌가. 그래서 온라인 수업에 들어갈 시간과 노력을 사전에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 그렇게 똥줄타임이 시작되었다. 약 16개 코스가 있었고, 코스마다 과제가 있었고, 과제는 기본 500자~1000자 글쓰기 같은 것들이었다. 자기주도 전문(?) 국가답게 자료는 심플하고 주제는 어려웠다. 한국어로 했어도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그래, 토플 하나 끝났다고 쾌재 부르는 게 아니었는데... 예상은 했지만 이제 시작이구나.


그러나 덕분에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유학 준비생이 아니라 그냥 유학생이 되기로 한 거다. '난 아직 준비하는 단계니까' 하는 말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준비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변명을 달아온 인생인가.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영어가 부족하다느니 자료가 어렵다느니 하는 징징거리는 말들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이건 회사생활에서 배운 지혜 같기도 하다). 여기는 핀란드도 아니고 교수님 얼굴도 모르지만, 그래도 잘 배우고 싶은 학생의 마음으로 자료를 읽고 과제를 썼다. 다만 시간에 쫓겨서 후딱 써 버린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할 수 없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완성도를 높이는 스킬은 내년에 보강하기로 하자. 그래도 학생으로서의 삶을 스스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수확이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물론 지원할 때의 지원동기서는 초안 대비 많이 바뀌었다. 아는 언니 중에 영어 능력자가 있어서 첨삭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솔직히 영어보다는 내용 면에서 더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 대답하기 어려워 얼버무린 문장들을 언니는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쓰면서도 에세이보다는 칼럼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도 어김없이 수정.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자기주장서 같다는 따끔한 조언도 들었다. (꼭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고 생함...) 역시 이런 류의 글은 쓰면 쓸 수록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지옥에 빠지는구나. 이 여정을 시작할 때의 자신감과 열정은 너무 뭉뚱했던 걸까. 이제 좀 뾰족하고 진한 무언가가 필요한 거 같은데...


나 정말, 유학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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