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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동훈 Jul 27. 2020

훈련병 아들아, 항상 웃는 고수가 되라

군인 아들과 민방위 아빠의 편지


사랑한다는 상투적 말도 못하겠다.
아들이 무엇인지.
내 살점을 떼어내도 이리 아플까.
내 뼈조각을 맞추어 너를 만들었어도 이리 아플까.
내 뼈와 살로 너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그 무엇,
사랑.
그것도 넘어선
그 무엇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인 것 같다.

아들아,
너를 포항 그 땅에 내려놓고 초를 재며 너의 두려움을 체크한다. 초를 재고, 시간을 재고, 이젠 날을 샌다. 하룻밤, 이틀밤, 문득 문득 지금 무엇을 할까.

37년前, 나를 본다.
나를 보며 너의 생활을 그려본다.

난 내 아버지에게 마루에서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는 묵묵히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잘 다녀와라”
어머니는 눈물로 큰 길가까지 나와서 배웅했다.
난 지금도 아랫목에 앉아 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난 너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서둘러 이별을 고한 것도 엄마의 눈물을 고려한 것이라 하지만 실은 내가 너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너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난 하염없이 울었다. 앞서 표현한대로 ‘살이 떨어져 나가도 뼈가 부서져도’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날 너와 찍은 사진을 본다. 포항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눈가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너의 눈길을 느낀다. 두려움보다는 ‘아쉬움’일 수도 있겠다. 물론 세상에 대한 ‘미련’도 남아있었겠지.

‘해병대는 이곳에서 시작한다’

너와 내가 ‘해병대’라는 실체를 처음 보며 보았던 문구다. 빨간색 바탕이 뭔가 ‘선동적인’, ‘자극적인’ 느낌을 준다.

사실 ‘해병대’에 대한 너의 두려움보다는 아빠가 더 두려움이 클 수 있다.

오랜 세월 한국사회에서 보아왔던 해병대의 이미지는 ‘강함’이나 ‘위대함’보다는 ‘무섭고’, ‘악독하고’그런 이미지가 많다.

그래도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규율과 법이 있으며 오히려 절도와 군 다운 모습이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해병대교육대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잘 했다.

이왕 가는 것 철저히 준비된 곳에서 그리고 가장 강한 군대에서 즐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난 어릴적 너를 보며 너에게 ‘승부욕’을 가지라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기억한다.
매사 ‘이기나 지나’ 그 자체를 즐거워했던 너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축구를 하면 넌 축구 자체를 좋아했지 승부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생각한다.

이것이 경쟁 관계, 결정적 승부를 요할 때, ‘너무 느슨한 때’가 있다고 아빠는 보았다.

해병대는 너에게 때론 승부를 걸어야 할 상황에 대담하고 치열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해병대’ 그 자체를 즐겨라.

아빠는 훈련소에 막 입소했을 때, 동료 하나가 조교들에게 너무 맞아 실신한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들으니까, 조교들이 ‘인상 제일 고얀 놈’ 하나를 골라 ‘본보기’차원에서 전체가 쳐다보는 가운데 아예 반 죽이는 그런 것, 그래서 전체에 겁을 주는 그런 의식(?)이었다고 한다.

아마 지금은 그런 구타는 없겠지. 그런데 군대 생활을 하다보면, 아니, 훈련병 생활을 하다보면 차라리 몇 대 맞고 말지, 정신적으로 총체적으로 너무 힘들때가 많다.

아들아. 철저히 즐기자. 항상 웃자.
눈물을 승리의 것으로 흘려라. 넌 웃어야 한다.
너의 너그러운 얼굴과 마음에 강함만 키워라. 그리고 더 환하게 웃는 고수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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