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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동훈 Feb 16. 2023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해보세요>

'질문' 그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삶은 재미지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신은 취업준비생이고, 마지막 관문인 면접만 남아있다. 예상 질문도 꼼꼼히 체크했고, 준비완료다. 면접장에 들어선다. 인상 좋은 면접관이 질문을 시작한다.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해보세요’      


?? 면접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위의 질문은 실제 면접자들이 받았던 질문이다. 두산그룹에서 낸 문제였다는데, 공감능력과 역지사지의 자세를 엿보기 위해 출제한다고 한다. 많은 지원자들은 이런 질문 앞에 당황해 ‘바나나’, ‘은행나뭇잎’등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설명을 듣는 대상은 바나나를 본 적이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여름은 너무 뜨겁고, 겨울은 매우 춥습니다. 그런데 봄이 되면 여름과 겨울의 중간 느낌, 포근하고 따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것을 저는 노란색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이라고 한다.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 노란색을 설명하는 것이다.      

조금 삐딱한 시선에서 해당 질문을 살펴보자.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해보세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제와 조건이 필요하다. 전제와 조건을 따라갔을 때, 나오는 결과는 생각 외로 흥미롭다. 차근차근 접근해보자.      


우선, 시각장애인을 두 가지 경우로 분류해야 한다. 먼저, 비장애인이었다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하게 된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색맹, 색약 없음).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게 된 사람이라면, 그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노란색’을 접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나나를 봤다거나, 은행나뭇잎이 찬란하게 흐드러지는 가을을 경험해본 사람이다. 이런 경우라면 ‘노란색’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천적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노란색을 접했던 기억을 되살려주면 된다. 예를 들어 가을날 방문한 전주향교에서 떨어지는 은행나뭇잎을 보며 첫키스했던 경험같은 거 말이다. 당신의 설명을 들은 시각장애인은 노란색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바나나를 본적도 없고, 은행나무도 본 적 없고, 노란것이라곤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노란색을 보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후천적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했다. 다음은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노란색을 설명해야 한다.      


비장애인이 노란색 등 색을 감지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태양에서 비추는 빛이 물체에 반사된다. 반사된 빛이 눈으로 들어온다. 가시광선의 영역에서 노란색 입자를 가진 물체는 노란색으로 보인다. 눈의 광수용체가 작동해 시지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색의 개념화’가 이뤄진다.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경험으로 말미암은 ‘색의 개념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때문에 노란색을 설명하기 위해선 색의 개념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광수용체가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시신경을 통해 뇌까지 시각정보가 전해지지 않는 시각장애인에게 색의 개념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획기적인 기술의 진보가 이뤄지기 전까지 ‘색의 개념화’는 난해한 문제이다. 따라서 색의 개념화가 이뤄지지 않는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에 대해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보인다.       


다시 면접장으로 돌아가보자.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해보세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후천적 장애인이라면, 과거 노란색과 관련된 경험을 일깨워줄 것이고, 선천적 장애인이라면, 색의 개념화를 이룰 수 없기에 노란색에 대해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장애인으로서 느끼는 노란색이 어떤 느낌인지는 전달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란색은 더운 여름이 끝나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선선함과 같으며, 추운 겨울이 끝나고 더운 여름이 오기 전 봄의 포근함과 같습니다”      


위의 대답을 모범답안이 아니다. 오히려 면접관은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당신의 서류에 ‘X’라고 표시할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질문 자체에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해보세요’라는 질문을 대학교 신문사 면접 때 처음 접했다. 기자가 되어서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하는 기사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말해보라고 하는데, “시각장애인에게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색을 설명하는 것은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인 것 같다. 그런 기사는 설득력도 없을뿐더러, 읽는 장애인분들이 불쾌함을 느낄 수 있겠다”라는 식으로 답했던 것 같다.     

 

당시에 면접을 봤던 선배 중 한 분은 저 대답을 듣고 나를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답이 훌륭하고 특출나서가 아니라, 수많은 면접자 중에 처음 들어본 답이어서 “야! 얘 또라이구나”하는 심정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면접과 같은 또라이 기질을 도구 삼아 학보사 기자생활을 꽤 재밌게 했다. 선배들의 지시에 반항도 해보고,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라던 많은 것들(교육감 취재, 국회의원 인터뷰) 등등을 또라이 기질로 돌파했다.      


삶을 살아가며 주어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주어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고, 삶을 변화시킬 귀인을 만나거나 기회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질문에 답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질문’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현실은 틀에 박힌 대답을 요구하니,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각을 키워야 성공할 수 있다는는 공자님 말씀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질문 그 자체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노력은 삶을 재미있게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들리는 것을 들리는 대로 내버려두지 않으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그러면 삶이 재밌다. 


질문에 의심을 던지는 것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보지 않은 길은 처음엔 두렵거나 꺼려질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발을 딛어 본다면, 그것은 결국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경험이 되어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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