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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리 Jun 18. 2021

11. 난임부부의 미디어 활용법

누구보다 엄마가 되고 싶은, 난임 부부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

언젠간 웃으며 돌아볼 난임 이야기입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 난임을 겪고 있는 이웃의 지인 분이라면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소중한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임신 성공을 기원합니다.

임신과 육아가 정보의 싸움이라면 난임은 정보의 전쟁이다.

난임부부, 특히 시술을 직접 겪고 몸의 미세한 변화도 혼자 느끼게 되는 여성의 경우 시간이 유난히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기현상을 겪는다.

그 긴 시간을 버텨야 하고 작은 변화에 예민해지는 만큼 '팩트'와 '카더라' 상관없이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게 된다. 기존에 자주 접하던 미디어들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기도 한다. 다음은 내가 내 기준으로 정리해 본 난임 기간 동안의 미디어 활용법이다.


매스미디어 TV
"다 가진 연예인들의 육아 프로그램은 이제 안녕~"
<출처: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한 때 나는 건후의 열열한 랜선 이모였다. 나은이가 메인이고 건후는 꼬꼬마일 때부터 나 홀로 건후 사랑을 외쳤다. 본방 재방 짤방까지 귀여운 볼때기를 한번 더 보려고 열심히도 찾아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3초의 재생도 허락하지 않고 채널을 돌려버리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매스미디어의 대표라는TV에는 요즘 육아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본격 육아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것들이 아닌 프로그램, 예를 들면 음식 프로인 편스토랑과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동상이몽, 아내의 맛 등이 어느새 연예인들의 아이들이 한두 명 꼭 출연하는 '누가누가 잘 낳고 잘 키우나' 프로그램으로 슬쩍 변경됐다.


시대상황이 안 좋으면 귀여운 동물과 아이가 자주 나오게 된 다했던 대학 강의 내용을 굳이 끄집어내면 지금 같은 어려운 시기에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청률을 올려보려는 방송국놈들의 마음은 이해하겠다.


하지만 잘 꾸며진 예쁜 집에 예쁜 부인(또는 남편)까지 세상 다 가진 것만 같은 연예인들이 하나도 아닌 둘셋넷씩 쑥쑥 낳고 하하호호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다 가진 자들의 다 가진 남의 세상 (자랑)이야기'같아서 피하게 된다.


화면 뒤 나름의 고충이 있을 테고 때론 어렵게 아이를 가진 이야기도 보여주지만, 내가 굳이 말하지 않은 그들의 속마음과 속사정까지 이해하려 애써보며 TV를 볼 필요는 없기에 채널을 변경하는 것으로 내 심신안정을 우선으로 한다. 요즘 나의 최애 프로는 '한국기행, '골목기행', '바닷가 사람들' 등이 되었다.


아참, 유일하게 하나 꼭꼭 챙겨보는 육아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금쪽같은 내새끼다!

옛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시절부터 오은영 박사님을 좋아하기도 했고 단순한 육아를 떠나서 아이들의 숨겨진 순수한 마음과 부모의 행동을 보고 나도 공감하며 미리 육아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강의를 청강하듯 보고 있다.

<나만의 슈퍼스타★ 오은영 선생님 팝콘 관람 중>

사실 금쪽같은 내새끼의 결론은 항상 다 부모의 문제였다. 아이의 문제행동은 세상 제각각이지만 부모의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육아방식으로 인해 시작된 문제였다. 그 부모들도 다 처음이기에 겪어야 했던 문제들이니,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육아완전초보가 아닌 육아인턴부모에서 시작하기 위해 열심히 예습하고 있다.   


동영상 콘텐츠 채널 유튜브
"실력 있는 의사 선생님들과 기다림 없이 하루 30분 무료 상담하기"


유튜브 시대에 가장 혜택을 본 사람이 있다면 나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문제의 근본 원인에서 시작해야 하고 궁금증도 엄청 많은 나에게 난임센터에서의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는 항상 목이 말랐다. 


난임 환자 레벨 1, 초초보였던 시절 병원에 가기 전 질문할 것들을 메모장에 가득 적어갔다. 아직까지 의학계에서도 밝혀내지 못하는 난임에 왜 생기는가에서부터 시작해 오만가지 질문을 써갔지만 막상 의자에 앉으면

"어..저..임신이 왜 안될까요.."

"그러게요. 많은 이유가 있죠. 이번엔 잘될 거예요"

"네.. 잘 부탁드려요..화이팅..?" 하고 어버버 하며 나오곤 했다.


내가 이번에 받게 되는 시술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 약은 왜 먹는 것인지, 무슨 작용을 하는 것인지, 나는 누워있어야 하는 것인지 움직여야 하는 것인지 이런저런 것들이 정말 궁금했다.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약사 만나는 이마다 물어보며 조금씩 조각은 맞춰갔지만 그래도 목말랐다.


그러다 유튜브의 여러 산부인과, 난임 전문의 선생님들의 영상들을 보게 되었고 내가 궁금해한 많은 정보들이 꽤 긴 시간 동안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아마도 난임 여성들의 궁금한 점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선생님들의 길고 긴 상담과 정보들을 노트를 펴놓고 하나하나 적어가며 본다. 중간 광고도 끝까지 본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들을 수 있는 답변 하나를 이렇게 편하게 누워 들을 수 있다니 감사할 뿐이다. 이제 나는 산부인과 서당개가 되었다. 누가 어려운 명칭을 대가며 물어봐도 약과 주사의 효능부터 각종 시술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

<나는야 산부인과 서당개협회 우수회원>

*추천 : 난임전문의 이재호,  우리동네산부인과 우리동산


때로는 무속인들의 '삼신할머니에게 아이 점지받는 법' 등도 많이 있으니 의학과 미신 중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골라보면 되겠다. 난임부부에게 유튜브는 넘실대는 우물이자 목마른 사슴이 찾은 맑은 샘물이었다.


SNS
" 가장 참여하고 싶고, 가장 위험한 곳"


인공수정 후 며칠을 쉬며 지루해하던 중 처음으로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봤다. '3040 초산 인공/시험관' 제목부터 딱 나를 위한 곳이구나 생각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자신들의 경험들을 공유했다. 내가 지금 잘 되고 있는 건가 궁금했던 찰나에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경험과 몸상태 들은 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런데 인원이 많아지고 잠시만 쉬고 오면 800개 이상의 대화들이 쌓여있었다.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임신성 공과 실패 소식도 자주 접했다. 성공은 성공대로 초조했고 실패는 실패대로 초조했다. 나는 매 대화에 일희일비하다 '인공수정 실패'를 기점으로 더 이상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다. 경험을 나누고 공감대 형성의 이유로는 좋은데 아마도 나의 성격상으론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오픈 채팅의 유용성은 성향마다 다를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위험한 곳이다. 인스타그램으로 주변의 임밍아웃소식과 육아 소식을 제일 많이 접할 수가 있다. 분명 축하할 일인 건 마음으로 알지만 (그들에겐 다양한 사연이 있겠으나)해쉬태그 하나 설명한 줄에 올라오는 임신소식은 또 한 번 '나만 안되나 봐' 하는 내적 부러움이 쌓이게 한다.


또 하나, 예쁘고 잘생긴 사진을 보며 태교를 하면 좋다는 말을 들어 미리미리 팔로잉해둔 귀여운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엄마가 효소를 팔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시청하면 등장하는 중국풍의 게임 광고처럼 나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아이와 육아를 해쉬태그로 팔이피플이 되어 집을 산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아이를 이용하는 것 같아 싫은 마음인지 나는 아이가 없어 괜히 부러워 샘내는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

 

인스타그램이 다 그렇듯 올라오는 육아 모습이 전부가 아닌 것은 안다. 그 뒤에 숨겨진 육아의 고통과 힘듦이 있겠지만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하고 자랑하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인스타의 특성상 좋은 모습만 포장하여 올리는 곳이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 나도 누군가에겐 팔자 좋은 딩크로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댓글로 응원과 함께 좋은 기운을 나눠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한 줄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동영상 마지막에 의사 선생님이 끝인사로 말해주는 '이번 달엔 꼭 성공하세요'를 들으면

힘이 나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자신의 가장 슬펐을 실패 경험을 누군가를 위해 공유해주는 우리 동지들, 긴 난임 기간의 마라톤을 끝내고 성공 노하우를 자세하게 알려주는 선배님들의 응원을 들으며 오늘도 혼자가 아님을 느낍니다.

나도 언젠가 성공하면 누군가에게 꼭 좋은 기운을 나누어주어리라 결심하며 다시 한번 힘을 냅니다.

우리 모두

'이번 달엔 꼭 성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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