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 어케해?

by Jenny

3년 만에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하려고 한게 아니라 직원들 전부 출장가서 할 사람이 없어서 할수 없이 했다 ㅠㅠ 너무 오랜만이라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준비한 대로 잘 끝냈고 반응도 좋았다. 어쨌든 전시 부스 디자인 프레젠테이션하러 다닌 지 23년차니 ‘ 오늘은 뭘로 승부를 걸어야 할지?’ 정도는 확실히 알고 들어갔다. 1996년에 전시회사에 입사해 싱가폴 본사 교육을 받을 때 디자인 PT를 연습한지 꼭 22년(헐) 됐다. 오늘은 후배들을 위해 프레젠테이션할 때 꼭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얘기해 보려 한다.


96년 싱가폴 교육당시 디자인 PT중인 내모습^^

일단 RFP 즉 Request of Proposal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제안요청서라 불리는 이 자료는 회사 내부에서 심사숙고하여 꼭 필요한 사항을 정리하여 내부 심의 완료 후 외부 발주처에 보내는 자료다. 당연히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핵심이 적혀있다. 그러나 가끔 핵심을 빼고 뜬구름 잡는 RFP를 내보내는 업체도 있다. 담당자의 경험 부족이라든가 회사 내부 조직 문제로 추측할 수 있지만 중요한 자료가 빠져있다면 반드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추측하지 말고 물어야 한다. 정확한 정보가 없다면 제안서는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회사에 대해 제품에 대해 전시방향에 대해 예산에 대해 정확히 물어보고 그 Fact를 토대로 기획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디자인이 되어야 요청에 답하는제안서를 준비하게 된다.


다음은 Fact + Trend + Idea = Creative Concept 라는 절차를 거쳐 기획서의 방향을 잡는다.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가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니 팔릴 가능성이 적다. 아무리 예뻐도 기능적인 요소들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프레젠테이션에서 온갖 질문에 ‘대박살’이 나지 않는다. 크리에이티브한 콘셉트실행력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방안적절한 가격에 제시할 때 가장 디자인이 팔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보기 좋게 기획서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스킬이다. 이왕이면 눈에 잘 보이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기획서가 이해도를 높인다. 팔리는 기획서에 대한 책은 무수히 많고 나도 기획서 쓰기는 젊은 친구들의 화려한 스킬을 못 따라가니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기획서가 만들어졌다면 프레젠테이션에 승부를 걸 차례다. 잘 만든 기획서도 프레젠테이션에서 버벅 대면 끝이다. 업체를 결정할 때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믿을 만한 사람인지 말하는 태도로 신뢰가 가기도 하고 불신이 생기기도 한다. 어차피 비슷비슷한 기획서라면 사람보고 호감이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고 불신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정한 복장, 깔끔한 머리 스타일, 크고 정확하게 차분히 전달하는 말하기 등이 성공하는 프레젠테이션의 요소임은 분명해 보인다.


2011년 진행한 행사 영어나레이터 나승연씨와 함께


부수적이긴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의 순서나 심사위원의 구성에 따라 PT 스타일도 많이 달라진다. 발표 순서가 첫 번째라면 준비해 간 기획서의 서론, 본론, 결론을 제한 시간 내에 모두 같은 속도로 발표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로 밀려났다면 서론은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앞선 발표자가 이미 말한 내용일 확률이 높아 듣는 사람이 지루해하거나 나른해져 대놓고 조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업체당 30분씩 두 개 업체만 발표를 해도 한 시간이 흐르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졸리고 지루할지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목소리 톤도 중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차분하게 한결같이 발표하는 건 인간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조금 빠르게 조금 크게 조금 쉬었다 밀고 당기는 속도감이 있어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이 되지 않을까?


미국전시 전문 프리젠터 Linda 와 함께

심사위원이 남성인 경우, 여성인 경우, 나이가 많은 경우, 젊은 경우에 따라 모두 프레젠테이션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대기업 사장님을 포함한 임원진을 대상으로 한다면 너무 튀거나 방방 뛰는 어린 발표자보다는 경험이 풍부하고 목소리에 힘이 있는 발표자가, 젊은 층과 중년층 남성 위주라면 밝은 분위기의 여성 발표자가 훨씬 분위기가 좋다. 반면 젊은 여성층이나 중년 여성층이라면 남성 발표자가 나을 것 같다. 내가 여자라 그런 건지 여성그룹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때 사뭇 도전적인 분위기가 많았다. 송곳 같은 질문을 속사포처럼 퍼부어댄다. 물론 모든 경우가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S 그룹 내에서 계열사들이 함께 참가하는 전시가 있어서 각 사의 홍보 마케팅 담당 과장급 여성 열두 명 정도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전투적인 분위기였다. 열심히 발표를 마치고 질문에 답을 마치고 나오는데 옆에 있던 동료 하는 말이 “ 와우.. 무서워서 또 못 들어오겠어요”였다. 하긴 잘 나가는 그룹 계열사 중간 관리자가 모두 모이셨으니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만 모아도 벽을 뚫을 기세였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다 정도로 마무리^^


어쨌거나 준비한 내용을 잘 발표해서 일을 따내는 게 목표인 프레젠테이션이지만 간혹 모델 급 여자 프리젠터를 고용한다거나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부족해도 회사 내부에서 준비한 사람들이 발표하는 게 맞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만 실제 일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쁘고 말 잘하는 프리젠터는 대중 앞에서 회사를 대표할 때 돋보이게 할 수는 있겠지만 디자인 및 시공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전달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PT 전문가는 아니어도 담당자들이 노력하고 연습해 실력을 키우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외부행사에서 함께 일한 프리젠터중 국내에서는 나승연씨 해외는 Linda Kruse 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같은 여자로서 저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유일한 전문가였다. 여전히 그들만큼 뛰어나지 못하지만 3년 만의 PT,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고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아직 나 살아있네” 자랑하고픈 오늘이었다.

프리젠테이션, 어렵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운 과정을 즐기는자가 있다면 열심히 해서 따라가기는 쉽지않다. 즐겁게 도전하는 자만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프리젠테이션이지만 과정도 함께 즐기는게 떨어졌을 때의 좌절을 줄일 방법이 아닌가 싶다. 따냈든 떨어졌든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즐겼다면 쿨하게 다음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할 힘이 비축될것이다. 다음 준비?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