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다니는 출장이 딱히 새로울 건 없지만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아주 새로운 출장이 될 수도 있다. 젊어서부터 보통 혼자서 출장을 많이 다녀 조금은 외롭고 잠도 안 오고 몸만 고된 시간이었지만 4년전 프리랜서로 일 할 당시 프랑스 그것도 깐느에 출장을 가려니 살짝 설레긴 했다. TV에서 영화제 레드카펫 위 스타들만 보던 곳을 내가 가게 되다니.. 인터내셔널 노가다 인생에 이런 낭만적인 도시를 가볼 줄이야..
그런데 내가 프랑스에 간다니 둘째가 하는 말 “ 나도 프랑스 가보고 싶은데.. 루브르 박물관 꼭 가보고 싶은데..” “ 정말? 루브르 박물관이 그렇게 가보고 싶어?” “응.. 피라미드처럼 생긴 요기 꼭 가보고 싶어..” 하면서 책을 들고 와 손가락질을 한다. “ 요기, 요기..” 그렇다면 진짜 한번 같이 가볼까? 마침 큰 전시회가 아니라 소규모 학회기도 했고 참가업체도 연령층이 젊어서 딱히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놀 것 같은데.. 그렇게 갑작스레 당시 아홉 살 둘째를 데리고 프랑스 출장길에 동행을 하게 됐다.
우리는 깐느를 가기 전 일단 프랑스 파리에서 루브르 박물관부터 가보기로 했다. 아이와 한밤중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찾아간 속소는 다행히 시내에서 멀지 않고 작지만 아담한 프랑스식 건물 이층 방이었다. 한숨 자고 다음날 새벽부터 일어나 컵라면 한 그릇 먹고 우리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 일출을 보았다.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에서 해 뜨는 풍경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 뒤 미리 예약한 반나절 투어 가이드를 만나러 갔다. 혼자라면 가이드 없이 대충 돌아다녔겠지만 아이에게는 제대로 된 가이드를 통해 프랑스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쉐익스피어 앤 컴퍼니 책방을 거쳐 샌강을 지나 파리 노트르담 성당부터 방문했다. 상쾌한 아침, 파란 하늘 아래 성당은 정말 아름다웠다. 성당 앞 바닥엔 별이 하나 박혀 있었는데 그 별을 밞으면 다시 그곳에 오게 된다는 말에 우리는 얼른 꾹꾹 밞아 주었다. 언젠가 아들과 다시 꼭 오게 되길 빌며..
다음으로 방문한 루브르 박물관은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하루에 보는 것도 어려웠겠지만 뭐가 뭔지도 모르고 오락가락했을 걸 생각하니 가이드를 따라가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뭘 알아야 보이고 재미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덕분에 아이는 프랑스 현지 가이드 할아버지와 유학생 가이드 누나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궁금증을 풀며 아주 신나게 구경을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초상화 앞에 제일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한번 도난당했다가 다시 돌아온 초상화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아무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갈 때 단시간에 많은 걸 봐야 하는 여행 일정이라면 꼭 가이드를 따라가시길.. 잘못하면 넓고 넓은 박물관 오락가락하다 기운만 빼고 뭘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게 될 수도..
우리는 박물관을 나와 배를 채우고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시내 자전거 투어를 강행했다. 에펠탑, 개선문, 뽕네프의 다리 등 유명지를 자전거로 돌아보는 코스였는데 차가 많긴 했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데다 미세먼지도 없어 적어도 자전거 타고 먼지만 먹는 투어는 아니었다. 그렇게 종일 투어를 따라다니고 에펠탑 야경까지 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완전 넉다운이 된 사랑스러운 둘째를 안고 숙소에 돌아와 그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다음날 우리는 출장지인 깐느로 이동하기 위해 TGV를 탔다. 기치 역 주변에서 츄로스니 마카롱이니 잔뜩 군것질을 하고 기차를 탔는데 가다 말고 기차가 서 버리는게 아닌가. 한참동안 지체가 돼서 기차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건 뭐지? 세계 최고 TGV도 고장이 나네? 하필 우리가 탔을 때? 그래도 기차 밖 풍경은 정말 좋았다. 연착한 덕분에 깐느에서 주소만 들고 숙소를 찾느라 한참을 헤매 다녀 결국 밤 열두 시가 다 돼서야 우리는 숙소에 첵인을 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고단한 깐느에서의 첫날밤.. 힘들었당..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숙소 문을 여니 전날 밤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 공터에서 시끌벅적한 장이 열려 깐느 주변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듯했다. 주로 농가에서 갓 수확한 과일, 채소부터 액세서리, 옷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온갖 종류의 과일을 사 들고 들어와 성대한 아침을 먹었다. 깐느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아침 시장에서 신선한 과일을 종류별로 사다 먹었던 기억이 제일 좋았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깐느의 유명한 뤼시케 동네를 탐방했다. 골목을 따라 아기자기한 상점도 많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깐느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쁜 성당과 동상을 뒤로하고 눈 앞으로 펼쳐지는 지중해 바다는 정말 파랗고 맑은 환상적인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깐느에 온 목적이 업무인 만큼 다음날 나는 아이를 혼자 숙소에 두고 전시장에 가야 했다. 불안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얼른 끝내고 돌아가려 했지만 마무리가 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고 급한 마음에 문자를 보내 아이 안부를 물어봤다... '뭐하니? 영화 잘 보고 있니? 엄마는 조금 더 일해야 하는데'... '잘 있어요.. 걱정 마세요' 이런 답에도 불구하고 불안 초조에 안달이나 점심시간에 숙소로 달려 가 아이를 보니 그제야 안심이 됐다. “ 무섭지 않았어? 괜찮았어?” “그럼요, 근데 엄마 기다리는 시간이 무지 길게 느껴졌어요..” T T 그랬겠지.. 낯선 하늘 아래서 엄마가 없는 몇 시간이 하루 종일처럼 느껴졌겠지..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이틀 동안 잘 기다려 줘 나는 무사히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기차를 타고 깐느에서 모나코로 이동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모나코 풍경은 정말 끝내줬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카’에서 자동차 경주가 열렸던 그곳을 둘째는 단박에 알아 차렸다. 애니메이션 배경과 풍경이 정말 똑같이 잘 그려졌다. 모나코 궁전을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니스로 이동했다. 깐느, 니스, 모나코는 기차로 한시간내 이동거리에 있어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우리는 그곳에서 잊지 못할 최고의 프랑스 음식 부야베스를 먹었다. 부야베스는 우리나라 해물탕과 비슷한데 게와 랍스터를 넣고 국물을 조금 넣어 매콤하게 끓여 먹는 음식이다. 오동통한 랍스터 살을 발라 맛나게 먹고 니스 바닷가와 시내를 둘러보았다. 그냥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 같았는데 나중에 테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다. 왜 하필 그 동네를 택했을까? 우리에겐 그저 부야베스를 맛나게 먹었던 곳이 다른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의 장소가 돼 버리다니.. 참 세상은 요지경 속이라..
니스에서 다시 TGV를 타고 파리로 돌아와 첫날 보지 못했던 오르세 미술관과 퐁피두센터에 들렀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긴 해도 고흐, 고갱, 모네 등 유명한 화가의 진품들을 보며 평생 다시 보지 못할 마지막 순간인양 열심히 뚫어져라 감상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퐁피두센터의 설치예술이었는데 정말 너무 강렬해서 잊히지 않는다. 큰방 가득 미싱기가 잔뜩 들어차 있고 처음엔 미싱기가 바쁘게 돌아가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폭격 소리에 정신이 없다가 미싱 소리가 멈추고 점차 고요해지며 물방울이 또옥또옥 떨어지던 기억.. 지금도 그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둘째는 설명을 안 해줘도 작가의 의도가 어떤 거구나 알아차릴 정도로 감격해 소름
끼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결국 프랑스 여행에서 우리가 본 많은 관광지, 박물과, 미술관, 식당, 숙소…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루브르의 모나리자, 니스의 부야베스, 퐁피두센터의 미싱, 깐느의 릐시케와 시장 과일 정도다. 하지만 정말 최고의 여행이었다고 나와 둘째는 기억한다. 함께하는 동안 세상에 단 둘이 의지하며 먹고 자고 보고 나눈 기억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비록 업무 중에 불안하고 떨리는 하루 같은 반나절을 네 번이나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가길 정말 잘했다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여행 중 바쁘게 돌아다닌 수많은 시간만큼 아이 혼자만의 시간이 분명 스스로 혼자 서는 성장의 시간을 만들었을 것이라 믿어보며 평생 한 번뿐인 출장 중 육아 여행? 의 스릴을 만끽했다. “ 출장 가는데 애를 데리고 갔다고? 어이가 없다고? 그건 그래!! 근데 정말 좋았어 ㅋㅋ 근데 이건 비밀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