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아줌마 vs 대한민국 아줌마

by Jenny

1996년 처음 전시업에 입문해서 제일 좋았던 건 출장 가는 거였다. 해외전시를 기획 준비하다 보니 전 세계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물론 출장 가서 전시장 호텔만 왕복하다 기운이 빠져 쇼핑 하루 정도 다니고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을 가는 것 자체가 좋아서 흥분됐다. 하지만 그것도 일 이년 지나니 시들했다. 공항, 전시장, 호텔 왔다 갔다 시간 버리고 몸 힘들고 지쳐 버리기 일쑤니 여행과 출장은 차원이 달랐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출장이 더 큰 짐이 돼 버렸다. 아이를 24시간 봐줄 사람을 매번 찾아야 하니 생업에 바쁘신 부모님들이 봐주실 수 도 없고 일하는 아줌마를 상주시키자니 월급 타서 아줌마 다 드려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점차로 출장을 줄이고 줄여 일 년에 몇 번 꼭 가야 할 상황에만 출장을 갔다. 그러다 보니 나 대신 보내야 할 직원을 늘 찾아야 했고 회사 업무에 올인은 절대 못하는 아니 안 하는 별똥별 아줌마가 되버렸다.

그렇게 항상 예외 취급을 받으며 애들 키우며 일을 하다 보니 늘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적당히 끊고 적당히 마무리하는 게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 항상 답답했다. 물론 아줌마는 저래서 안돼 하고 뒷담화를 하는 옆팀 워커홀릭 남자 팀장에게도 찍소리 못하고 살았다. 내가 6시 땡퇴근 한 이후 남아서 일하는 팀원들에게 왜 혼자 일하냐는 둥 팀장 잘 못 만나 고생이라는 둥 개멍멍 소리를 해댔으니 나 없는 동안 우리 팀원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가 현업에 버티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시대가 변해 요즘은 나의 이런 업무 형태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다. ‘워라밸’이라고 work and life balance가 대세가 돼 버린 덕분이다. 저녁이 있는 삶, 개인의 생활, 가정생활을 존중해서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일보다 내삶이 먼저라 아직도 생각이 다른 직원들과의 괴리감이 남아 있지만 어쩔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육아의 벽에 부딪혀 퇴직하고 경력단절 여성으로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언젠가 후배 하나가 많은 출장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가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장 좋았던 곳은 프랑스, 스페인, 미국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불교국가로 유명한 미얀마라는 나라였다. 그 이유는 정말 더럽고 가난한 나라에서 만났던 미얀마 아줌마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목격해서다.


평화로운 미얀마 랑곤호수 풍경


4년전, 혼자 미얀마 전시장에서 일찌감치 일을 마무리하고 현지에서 유명한 순환열차를 타러 갔다. 걸어서 돌아다니기엔 너무 더럽고 위험해 보여서 호기심 많은 나 혼자 기차라도 타고 한 바퀴 돌면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관광객들이 주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창 밖을 보니 기찻길 따라 참 가난하고 더러운 환경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가는데 갑자기 웬 시장 판에 가차가 정차하는 순간!! 이건 마치 부산행 영화 속에 무서운 좀비가 순식간에 기차에 올라타는 그런 느낌으로 현지인들이 마구 짐을 던지더니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너무 갑작스러워 정신이 멍했다. 내 옆에 한 아주머니가 강렬하고 무서운 눈빛으로 아주 커다란 짐을 마구 끌어올려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기차역옆에 자리잡은 시장



잠시 후 기차가 출발했다. 그제야 아수라장이 된 기차간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고 내 옆에 아주머니도 동물적으로 우악스럽게 힘쓰던 좀 전의 눈빛을 접고 평화롭게 앉아 채소를 다듬기 시작했다. 시커멓게 탄 얼굴,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매, 깡마른 몸매, 투박한 손가락을 물끄러미 옆에 앉아 보고 있었지만 그 아주머니는 내 눈빛 따위에 관심조차 없었다. 무심하게 나물을 뚝뚝 다듬는 손길이 언제나 하던 일 중 제일 쉬운 일이라는 듯 느껴졌다.

얼마의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어느 역에 도착하자 다시 살기 어린 눈빛을 보이더니 창 밖으로 집채만 한 채소 더미를 마구 내던졌다. 밖에서는 누군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던 눈치다. 그리곤 빛의 속도로 기차를 내리는 아주머니. 기차가 출발하고 한참동안 아주머니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깐 동안의 폭풍 같았던 시간을 되돌려 보았다.

그 아주머니는 저쪽 큰 시장에서 채소를 떼다가 자기 동네에서 채소를 파는 분 같았다. 트럭이라도 있으면 실어 가겠지만 그쪽 동네 분들은 죄다 영세한 자판 장사꾼인것 같다. 갑자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나만 덩그러니 한가로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세상에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주변에도 물론 힘들고 어렵게 사는 분이 있겠지만 삶의 수준이 참 많이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도 저런 때가 있었겠지.. 우리 부모님도 저런 힘든 시기를 사셨겠지 하는 마음에 짠해졌다.

미얀마의 집과 거리 풍경


어쩌면 저 사람들 한테 대한민국에서 아이 둘 데리고 살기 힘드네 소리가 엄청난 사치 일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얼마 전 증평 모녀 뉴스를 보면서 자산이 얼마인가를 떠나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과 우울함 속에서는 그 누구도 위로가 될 수 없지 않았을지 마음이 아팠다. 그 처지가 십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정말 가난해서 정말 힘들어서 죽을 정도의 경제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가 발달할수록 혼자 견뎌내야 하는 외로움과 우울함이 삶을 갉아먹는 건 아닐까?

출장을 가? 말아? 호강에 겨운 소리를 하는 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극한의 밑바닥까지 가지 않고 살고 있음에 오히려 감사해야겠지… 어쨌든 내 집이 있고 내 가족이 있고 내 일이 있음에…감사하게 된다. 가끔은 잘 사는 나라 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으로 내가 잘살고 있구나 내가 좋은 나라에 살고있구나 감사할 줄 알게 된다.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살자. 감사하자. 미얀마 아줌마에게 배운 삶의 교훈이다. 진짜 아줌마 고수는 따로 있었다.


미화 백불 아래 초라한 미얀마 화폐 백짯.. 손때묻은 삶이 옅보인다


**PS : 4월 16일 미얀마 아줌마 글을 올린 이후 조회수가 십팔만이 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제가 미얀마 아주머니 삶을 제 관점에서 해석한게 다른 분 들께 불편하게 보일수도 있다는 걸 댓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아직 글쓰기 초보라 사려깊지 못한 점 이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