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해외 전시 기획 시공을 하면서 우리업 관계자들은 스스로를 인터내셔널 노가다라고 부른다. 나라와 전시장만 달라질 뿐 현장에서 하는 일은 하나다. 노 가 다. 소위 몸으로 하는일.. 공사판에서 하루 종일 감독이라는 미명하에 청소, 전기점검, 목공 마감 검수, 싸인 체크를 위해 사다리 타고 올라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한다. 아무튼 각국을 돌아 다니며 느낀 건 각 나라마다 일하는 스타일도 참 다르구나 하는 것이다. 국민성이 일하는 방식에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를 앞설 나라는 없지만 그나마 비슷한 나라는 싱가포르 정도이다. 하나 다른 건 훨씬 정확하고 꼼꼼히 일한다는 건데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말레이시아인들 이지만 국적만 싱가포르 사람이거나 감독자만 싱가포르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민국은 일반 건설현장과 달리 아직까지 전시장에는 해외 노동자가 없어서 인건비는 하늘로 치솟고 상대적으로 퀄리티는 형편없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내가 가 본 17개국 중 가장 업무가 정확하고 확실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보통 전시 매뉴얼이 기본 100장이 넘는다. 전시와 관련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디테일이 매뉴얼에 담겨있어 반드시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 매뉴얼대로만 한다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매뉴얼을 어기면 바로 제제와 시정이 요구되는 나라다. 그래서 규정만 지킨다면 실제로 일하기엔 가장 수월하다. 비용이 비싸도 비싼 값을 하기에 가격이 조금 높아도 인정해 줄 만한 정확성과 꼼꼼함을 바탕으로 고집 있게 일하는 모습이 내가 본 독일인의 모습이다. 겉모습은 투박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얘기를 나눠보면 진실하고 따뜻한 독일인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반면에 업무는 정확하지만 쓸데없이 비싸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유니언이라 불리는 각 지역 노동조합 소속 근로자만 전시장에서 일할 수 있는데 이들의 시간당 급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비싼 경우 시간당 150불~200불을 받는데 휴일이나 근로 외 시간 (Over Time)을 계산하면 상상할 수 없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유니언에 속한 근로자 보통 나이가 50~60대이고 시간당 페이를 더 받기 위해 최대한 세월아 네월아 거북이처럼 일하기 때문에 빨리빨리 좋아하는 한국사람은 속이 타 죽을 지경이다. 그러니 앞에서는 “Wonderful, beautiful, fantastic…”을 연발하고 뒤에서는 Invoice를 들이미는 미국 스타일에 치여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모든 미국인이 그런건 물론 아니다.
천천히 일하는 걸로 둘째라면 서러울 나라가 ‘인도’다. 미국과 정반대로 시간당 임금이 정말 싼 나라 인도는 모르긴 해도 하루 페이가 미국 근로자 시간당 급여보다 적을거다. 아직도 거리에 차가 미어터지는 와중에 창문을 두드리는 거지가 그렇게 많다. 길거리는 거지, 오토바이, 차로 뒤범벅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질서에 맞게 돌아가는 게 신기한 나라다. 그 넓은 전시장에 환기시설 하나 없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노동을 하고 청소를 하고 먼지는 그대로 다 입으로 마셔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라 미국보다 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나라다. 그곳에 가면 급한 성격의 한국사람은 속이 터져 도를 닦아야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말이다.
4년 전 인도 뉴델리 전시장에서 일이다. 현장 감독 중에 바닥마감재 보호를 위해 붙여 놓았던 비닐을 제거해 달라하니 열명 정도 인원이 두 시간 넘게 매달려 비닐을 벗기고 있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비닐 커버 벗기는데 십분, 청소하는데 이십 분이면 충분할 일을 그렇게 힘들여하는 이유는 애당초 불량비닐을 불량 접착제로 덮어놔서 도대체 떨어지지가 않아 힘겹게 손으로 밀어가며 떼느라 그런 거였다. 참 뭐라 할 말이 없는 그런 ‘시츄에이숀’이었다. 아무튼 그 사람들 나름대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는 있지만 전혀 일에 진척이 없는 그런 긴 시간을 기다리는게 정말 내겐 힘든 고행이었다.
반면에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하는 수준이 인도와 거의 비슷했지만 지금은 빛의 속도로 발전한 나라가 ‘중국’이다. 경제발전 속도만큼 일하는 속도가 빠르다. 그 이유는 보통 나라에서 3명이 할 일을 10명이 붙어서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인해전술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명 정도가 할 일을 중국에서는 50명이 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거의 도떼기 시장 같은 분위기에서 무슨 일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관리 감독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냥 멀뚱멀뚱 사람만 쳐다보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많은 인원이 일을 하긴하는데 만드는 방법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보통 국제 전시업에서는 기본도면을 건네주면 만드는 방법은 그 나라 시공 감독, 소위 ‘오야’라고 불리는 사람이 정한다. 십 미터 벽체를 십 미터 한 개 통으로 만들지 일 미터 열개로 만들지는 오야가 정하고 작업자들이 설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에선 가끔 일반적 방법이 아닌 희한한 방법으로 설치하는 광경을 보게된다. 소위 짝퉁 제조 기법? 같은 그런 방법으로 만들어낸다. 겉에서 보면 비슷한데 열어보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날림 공법이라고 나 할까? 어쩜 저렇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만들까 싶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절대로 싼 업체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는 게 상책이다.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뭐 이런 의심부터 드는 거다. 한번 당하고 나면 두 번 세 번 조심하게 된다. 그래서 중국은 늘 경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눈부신 경제발전과 전시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불신하게 되는 건 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결론적으로 나라마다 참 다른 인간들이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는 건데 대한민국은 독일이나 미국처럼 매뉴얼이 확실한 선진국에 비하면 한참 후진국이고 중국이나 인도에 비하면 조금 나은 정도다. 딱히 내세울 만한 건 빠름 밖에 없다는 거.. 각자가 각자의 속도로 일하지만 각자가 모이면 국민성이 되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한두 번 경험으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놀랍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런 편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 나라를 기억할 수밖에 없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도 있겠구나, 과연 그 사람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도 yes/no가 확실한 차가운 업무중심의 여자 정도가 아니었을까? 다른 나라 근로자의 업무 스타일만 관찰하고 정작 내 모습은 보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고 반성을 하게 된다.
‘ 그러고보니 나도 매뉴얼 없는 빨리빨리 형 대한민국 노동자 맞네...이젠 인터내셔널 노가다 안 나간지도 삼년이 넘었다..대한민국 전시산업에 끼이기 싫어 해외전시만 했으니 지금 전시산업 현실에 나도 한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겠구만...부디 다음 세대에는 달라지길 바래본다 이생은 틀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