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장비병자의 변명
커리어 전환을 하던 해, 생활의 변화를 예감하기라도 한 듯 그전까지는 잘 읽지 않던 장르에 손을 댔다. 『1인 가구 돈 관리』도 그중 하나였다. 이 장르를 멀리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대 대부분을 감당이 안 되는 결핍에 시달리며 더 싼 월세, 더 싼 생활비, 그래도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찾아 이 집 저 집을 전전했는데 이런 책을 보면 마치 내가 돈 관리를 잘 못 해서 그렇다고 은근히 타박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기실 타박을 해서든 협박을 해서든 독자에게 절약의 미덕을 깨우치고 당장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이런 책의 존재 의의니 이견은 없다. 다만 장기간 허리띠를 졸라맬 끈기가 내게 부족한 것뿐이다. ‘하여도 부족한 끈기처럼 천성적인 것 말고, 내가 고쳐 볼 수 있는 후천적 습관이 있지 않을까’—그 책을 살 때 내가 기대한 바였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아는 절약 팁 말고, 새어 나가는 돈 구멍을 원천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절약의 철학.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건 없었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도움 될 내용도 있었으므로 책 자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4인 가구 돈 관리’ 같은 책은 없는데 왜 1인 가구를 주제로는 이렇게 돈을 모아라, 아껴라, 아니다 투자를 해라, 건강도 관리해라 같은 책이 나오나. 이 나라의 세대 구성이 전통적 핵가족—내가 어릴 땐 전통적이라고 하면 대가족을 뜻했지만—에서 1인으로 옮겨 가는 추세가 단기간에,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어서인가. 내 주변만 둘러봐도 1인 가구는 자가주택, 전셋집, 월셋집, 양친 지원 받음, 양친을 지원함, 홀로 자유로움 등등 각양각색이라 저마다 수입과 지출의 경로도 다르다. 그에 따라 자연히 돈 관리하는 법도 다를 것이다. 이 사정에 일일이 맞출 수 없으니 책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 돈 나가는 모든 구멍을 샅샅이 점검하고 틀어막는다’라는, 획기적 철학도 뭣도 아닌 고전적 방법을 추천한다. 틀린 방법이 아니니 이견은 없다. 2장에서부터 내가 볼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돈이 모이지 않는 습관을 지적하는 장이었다.
돈이 안 모이는 습관에는 ‘새로운 일[취미]을 시작할 때 장비부터 사들이는 것’이 있다. 차(茶)에 관심이 생기면 다구 일습을 마련하고, 라틴 댄스에 관심이 생기면 발표회에 입을 드레스부터 맞춰서야 과연 돈이 모일 리 없다. 돈은 돈대로 잃고, 실패한 취미의 흔적이 집안 곳곳에 수치스레 전시되는 꼴을 면하려면 초기에 ‘장비병’의 발동을 막아야 한다. 어떤 취미가 진짜 내 길이다 싶어지기 전에는 섣불리 고가 장비를 마련하지 마라—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다음에 팁이랍시고 하는 말이 별로였다. 읽은 지 좀 되어서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정 뭔가를 하고 싶다면 주변의 장비병자들에게 빌리면 된다.’ 같은 말이었다.
남들은 헤픈 장비병자여서 돈을 쓰고, 나는 알뜰살뜰 야무져 그런 데 돈을 안 쓰겠다 하면 독자적인 삶의 방식이려니 한다. 그래도 좋은 장비는 쓰고 싶으니까 남의 것을 빌리고 뒤에 가선 저런 건 장비병이라고, 돈 한 푼 안 쓴 나만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기특해하는 게 별로인 것이다. 그냥 별로도 아니고 개별로다. 장비가 필요한 취미를 넘보는 대신 넷플릭스나 보라고 해라. 더구나 인간 관계에는 기브 앤 테이크라는 게 있다. 좀 아는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DSLR이니 골프채니 하는 고가 장비를 장비병자가 남한테 막 빌려줄 성싶은가.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지 않으면 관계가 오래 못 간다. 때로 어떤 취미의 세계가 좁고 깊어서, 또는 그 취미 소유자들이 하필 인류애가 흘러넘쳐서 입문자에게 정보나 도구를 과분하게 제공하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그 호의를 이용해놓고 ‘저런 것에 돈 쓰는 장비병자와 사뭇 다른 나’를 하면 더욱 질이 나쁘다. 절약이 과해 궁상을 넘어선 민폐 수준이다. 내가 돈을 모으려면 이런 책부터 안 사는 것이 나았다.
역량이나 통찰과 마찬가지로, 취향도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통해 형성된다. 간혹 끼니를 거를지언정 몰취향 무취미 인간은 못 되겠어서, 20대부터 나는 숱한 취미와 취향의 여울에 발을 적셨다 건지는 생활을 해 왔다. 그중 특히 가성비가 훌륭하다 할 수 있는 독서는 지금까지도 가까이 하며, 카메라, 미니벨로, 커피, 디저트, 메이크업, 네일케어, 패션, 구체관절인형, 볼룸 댄스,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창작 등을 꾸준히 집적거리며 쓴 돈도 시간도 어지간하다. 여기다 고가 장비를 빌려줄 지인도 없다 보니 내가 돈을 못 모은 모양이지만, 아무튼 취향만은 확고한 인간이 됐다.
어떤 것에 돈도 시간도 쓰지 않는데 그게 취향이 될 수가 있나. 나는 아니라는 쪽이다. 그렇다고 몰취향 무취미가 뭐 대단한 잘못도 아니고, 취향 하나로 사람 전체를 판단한다는 발상 쪽이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취향이 없으면 친구로서는 아무래도 좀 따분하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있어야 이쪽에서 기쁘게 해주든 조심하든 할 수 있기도 하고, (내가) 자아 탐색과 성찰이 부족한 사람과 잘 지내 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스스로 품을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서 갑자기 친한 척 이것 좀 추천해줘, 알려줘, 나도 끼워줘 하고 들러붙기 시작하면 귀찮다. 그래놓고 뒤에 가선 나를 허영덩어리라고 장비병자라고 욕할지 또 누가 아는가. 알고리즘이 큐레이션을 해주는 시대에 자기 취향 정도는 알아서 정하면 좋겠다.
알고리즘 말고도 활용할 것이 많은 시대라 나는 곳곳에 포진한 새 취향의 문턱을 지금도 기웃거린다. 최근에는 일본 빈티지 워드로브와 픽셀아트에 마음이 끌린다. 한때는 핸드메이드에 꽂혀서 원데이클래스에서 양초며 비누 같은 것도 만들어 봤는데, 손재주는 평범한 편이나 센스가 괜찮아서 칭찬을 실컷 듣고 내가 원한 건 손재주가 아니라 남의 찬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돈은 안 모였지만 엄밀하게는 돈을 썼다고 할 것도 아니다. 이렇게 취미를 간 볼 자잘한 돈은 두 번은 안 읽을 책들을 중고 서점에 팔아서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