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쿠타 미쓰요 또는 사노 요코의 에세이
가쿠타 미쓰요의 『행복의 가격』이었나, 아니면 사노 요코의 에세이였나. 두 작가 분과 또 그분들의 팬들에게는 대단히 송구하나 당최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모처럼 큰맘 먹고 고심해서 계획을 세운 온천 료칸 여행에 노모를 모시고 깄는데, 하룻밤 십만 엔짜리 고급 료칸은 아니다 보니 잠자리가 어떻다, 물이 어떻다, 음식이 어떻다 하고 노모가 그렇게 불만을 토로하셨단다. 하필 바로 근처에 으리으리한 프리미엄 급 료칸이 있어서 더욱 비교를 하셨다는 것도 같다.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날 수가 있나.) 해서 마음이 상해 있는데, 이튿날인가 료칸 직원이 슬며시 와서는 귀띔하기를 “어머님께서 따님이 이렇게 온천에 데려와주셔서 ‘딸 덕분에 호사를 누린다’라고 자랑을 하시던걸요”라고 하여 마음이 좀 풀렸더랬나 그런 이야기였다.
기억도 글도 훗날에는 보정되는 법이니 료칸 직원의 말을 들은 가쿠타 미쓰요, 혹은 사노 요코 상의 기분이 그 순간 정말로 어떠했을지는 모르겠다. 또 어떤 독자는 ‘연세 많으신 분들은 좋은 것도, 고마운 것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서투른 편이시니까’ 하고 선의의 해석을 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나의 감상은 사뭇 다른데, 그 노모는 아무래도 딸이 예약한 그 온천과 여행의 면면이 못마땅하고 결과적으로 비참한 기분이 들었으나, (본인이 보기에) 하잘것없는 료칸 직원에게까지 이를 들키고 싶지는 않아 그저 허세를 부렸던 것이 아닌가—현재의 처지는 수용 못 하겠고 자존감은 채워야겠으니 어떻게든 타인의 인정을 사려는 사람이 흔히 그러듯— 했다. 그렇다면 노모의 초라한 자아만큼이나 그를 모시고 여행을 다녔을 저자—가쿠타 미쓰요, 사노 요코 중 어느 분인지는 모르겠으나—가 안됐다.
내 가장 소중한 여행 기억 중 하나는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간 오타루 온천 여행이다. 계획은 모조리 내가 짰고 동행인은 감탄만 하면 되는 역할이었다. 그렇다 해도 둘 다 자기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하는 바람에 3박 4일간 모든 순간이 즐겁기 이를 데 없었다. 동행은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보더라도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더욱 공들여 계획을 세우기도 했겠으나 그 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조차도 너무 좋았다. 지금도 깊은 밤 가만히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또 그렇게 즐겁지 않을 거면 뭐하러 굳이 남과 여행을 가는가도 싶다. 내 생각과 달리 굳이 남과 여행을 가서 불행해지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가쿠타 미쓰요, 혹은 사노 요코 상이 겪은 것 같은 일이 국내에서도 드물지 않은 것으로 안다. 나이들수록 말을 곱게 하고 마음도 곱게 써야 주위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지만, 한국에서 노부모는 어떤 밉살맞고 가시돋친 말을 해도 자녀에게만은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또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암암리에 형성되어 있다. 아마 인생의 상당 부분을 자녀에게 헌신한 대가로, 노후에 아무 말과 행동을 해도 되는 특권 같은 게 생기나 보다. 나는 비혼이라 막 대해도 받아줄 사람 같은 건 없다 보니 말본새도 몸가짐도 바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치 않게 인격을 수양할 기회의 명분이 생겨서 득을 봤다.
남에게 사랑을 받고자 예쁜 말만 골라 하는 할머니로 늙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이들수록 존경받는 사람들의 공통점” 같은 콘텐츠의 유행도 썩 달갑지만은 않다. (자기 긍정의 기준을 언제까지 타인의 인정과 애정에 둘 셈인가.) 다만 좋은 것은 좋다고,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제때에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따름이다. 아울러 내 처지의 불리함을 자기 기만과 허세로 메우지 않고, 이를 정면 돌파하는 기개와 분별을 평생에 걸쳐 기르고 싶다. 또 아는가, 그러면 누가 나를 어여삐 여겨 고급 온천 료칸에 데려가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