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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risee Feb 09. 2024

그가 본 세상은 멋진 신세계였을까? : 올더스 헉슬리

히피들의 경전이자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에 영감을 준 작품인 <지각의 문>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을 지상 최대 과제로 삼는 세계국에서 인간다움과 자유를 이야기하는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은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도발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중 <멋진 신세계>는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마 많은 독자들이 그가 그려낸 '신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장을 펼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학창 시절 처음 <멋진 신세계>를 접했을 때의 나 또한 그러했으니 말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책장을 넘긴 뒤 그 궁금증만큼 크게 다가왔을 독자들의 충격 또한 의도한 것이었을까?


가슴 벅찬 희망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헉슬리표 <멋진 신세계>


작중 등장하는 인간 복제, 전기충격, 약물 복용 등의 자극적인 요소들은 암울함을 더하는데, <멋진 신세계>가 조지 오웰의 <1984>,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들>과 함께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히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 이리라.


그는 무슨 이유에서 이러한 디스토피아의 이야기를, 그것도 상당히 모순적인 <멋진 신세계>라는 이름을 붙여 만들어냈을까?


그는 왜 '유토피아'라 쓰고 '디스토피아'라고 읽히는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그가 바라본 세상은 과연 진정한 <멋진 신세계>였을지, 그의 삶을 통해 알아보자.





1. 시각 장애가 이끈 작가의 길


다윈 진화설을 옹호했던 생물학자 할아버지 토머스 헉슬리.

유네스코 초대 회장이었던 형 줄리언 헉슬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동생 앤드루 헉슬리.


대대로 전해온 과학에 대한 관심과 DNA는 올더스 헉슬리에게도 예외 없이 발현되었는데.


DNA의 본능에 충실하여(?) 의학도를 꿈꾸던 청년 올더스 헉슬리는 삶의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에게 찾아온 점상 망막염이라는 질환으로 인해 3년간 앞을 보지 못했고, 그 때문에 의학도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헉슬리는 영문학을 전공한 뒤 이튼칼리지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이후 본업 소설가로 활동하게 된다.


생각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가 쌓아왔던 생물학적 지식과 삶의 경험은 소설가라는 또 다른 길을 발견하고, 재능을 꽃피우는 데에 튼튼한 기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어떤 실패와 좌절은 상처를 준다. 그것도 아무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패와 좌절이 또 다른 기회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


올더스 헉슬리는 스스로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실패 또한 길게 보면 성공의 첫 단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좌절과 절망을 기꺼이 딛고 일어선 한 작가의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위안이 되고, 용기를 주는 듯하다.




2. 부적응의 시간, 아쉬움의 공존


이튼 칼리지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교직생활을 한 헉슬리는 교사로서의 자질은 뛰어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수의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교단을 떠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쉬움을 남긴 교직 생활이지만 그에게 한 가지를 남겼는데, 바로 <1984>로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을 가르친 것이다.


헉슬리가 교사로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면, 오웰은 학생으로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교사로서, 학생으로서는 뛰어난 성적표를 받지 못했으나 결국 훌륭한 작가로 이름을 남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야!'라는 누군가의 외침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교직 생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소설을 통해 명망을 얻은 올더스 헉슬리는 1938년부터 1964년까지 노벨 문학상 후보로 9번이나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때로는 절망과 아쉬움이, 때로는 성취와 기쁨이 공존했던 헉슬리의 삶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3. 오! 포드님 이시어 : 헉슬리가 바라본 산업사회


헉슬리가 살았던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폭발적 발전과 산업화의 고도화가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기술의 발전은 특히 산업혁명의 출발지였던 영국의 모습을 180도 변화시켰고, 교직생활 이후 최첨단 화학 공장에서 근무하던 헉슬리는 산업화와 기술발전의 어두운 민낯에 직면했을 터.


이때의 경험은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각종 화학 요법의 묘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멋진 신세계> 집필에 결정적인 영감을 준 계기가 있었으니.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의 선구자인 헨리 포드의 공장에서의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늘어서있는 컨베이어벨트와 그 위를 지나가는 똑같은 부품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부품처럼 느껴지는 수많은 노동자들.


산업사회의 정점이자 기계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컨베이어벨트를 마주하며 헉슬리는 아마도 이 세상이 진정한 '멋진 신세계'는 아니라는 것을,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실은 산업화라는 커다란 구호 아래 신음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


'오! 포드님 이시어'라고 외치는 세계국 구성원들의 모습과 획일화된 사회에 대한 묘사를 통해 헉슬리는 인간의 자유와 인간성이 억압된 사회의 처참함, 그리고 그를 깨닫지 못할 때 찾아올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를 했던 것이리라.


찰리 채플린이 그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마침내 기계 부품으로 전락하는 수많은 '인간' 들의 모습을 그렸듯이 말이다.




4. 작품도 삶도 : 아이러니


결코 '멋진 신세계'라고 할 수 없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멋진 신세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올더스 헉슬리.


작품이 주는 아이러니함만큼 그의 마지막 또한 아이러니했음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삶의 마지막을 앞둔 그의 마지막 유언은 "LSD 100 마이크로그램, 근육 내 주사"라는 요청이었다고 한다.


<멋진 신세계> 속 세계국 시민들은 고통을 잊고 쾌락을 즐기기 위해 '소마'라는 일종의 마약을 복용한다.


그 장면을 인간성 상실의 상징으로 풍자했던 헉슬리는 역설적이게도 약물로서 삶을 마무리한 것이다.






비록 그의 삶은 다소 역설적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수많은 이들이 사유하고, 세상을 돌아보는 힘을 길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그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바람직한 삶과 세상에 향한 고민이 녹아있다.


과연 그가 꿈꾸었던 진정한 '멋진 신세계'는 어떠한 곳이었을까?


그는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조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다만 그 힌트를 그가 남긴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에 대해 무지한 것은,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인간은 차라리 환상의 쾌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라고.


환상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

진정한 인간됨을 향한 길이 그가 생각한 '유토피아'를 향한 길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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