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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risee Feb 02. 2024

[달과 6펜스] 달, 그리고 6펜스. 당신의 선택은?

<달과 6펜스>


말 그대로 하늘의 달, 그리고 지갑 속 동전을 의미하는 두 단어이다.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어 보이는 이 두 단어는 어떠한 사연으로 소설이 제목에서 만나게 되었을까?


서머싯 몸의 작품 <달과 6펜스>는 개연성 없어 보이는 두 단어를 통해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뇌, 그리고 달을 쫓은 한 사람의 삶으로 대표되는 '꿈을 향한 여정의 고단함과 처절함'을 보여준다.


쉽게 닿을 수 없는 '달'과 먹고살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6펜스'의 조합은 어쩌면 꿈을 향한 여정의 고통과 현실의 처절함을 상징하는 가장 적절한 조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증권사 중개인으로 일하다 전업 화가가 된 폴 고갱이 모티브가 된 작품이었던 만큼, 이 작품에는 폴 고갱이 겪어야 했던 삶의 고뇌와 예술을 향한 열정 또한 담겨있을 것이다.


<달과 6펜스>를 통해 서머싯 몸은 무엇보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내면, 그리고 고통을 무릅쓰고 꿈을 향해 다가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달과 6펜스>의 이야기는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전반을 차지하는 것은 스트릭랜드가 보여주는 어쩌면 기이할 정도의 예술혼, 그림을 향한 열정이다.


'나' (작중 글쓴이)는 스트릭랜드의 아내가 주최한 모임을 통해 증권 중개인인 찰스 스트릭랜드를 알게 되고, 얼마 후 스트릭랜드가 아내를 버리고 떠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사라진 남편.


아내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 에게 남편이 돌아오도록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스트릭랜드를 찾기 위해 파리까지 간 '나'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한다.


바로 스트릭랜드가 예술이라는 자신의 꿈을 위해 아내와 아이, 직업을 모두 버렸다는 것.


그의 그림을 알아준 것은 네덜란드 출신의 더크 스트로브라는 친구이다.


아픈 스트릭랜드를 집에 들였다가 아내도, 자신의 작업실도 잃고 비탄에 잠기게 되지만 더크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응원한다.


예술에만 몰두한 탓인지,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스트릭랜드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 오히려 그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르며 - 남태평양의 한 섬, 타히티로 떠난다.


그곳에서 스트릭랜드는 원시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타히티의 풍경, 자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그려낸다.


그에게 더 이상 그림에 대한 평가나 그림이 팔리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리는 것' 만이 삶의 전부를 차지했을 뿐.


나병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벽에 그림을 그리던 스트릭랜드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달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당신에게는 '달'이 있나요?


이야기 속 스트릭랜드의 행적은 이기적이고, 어쩌면 기묘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이다.


가족을 버리고, 남의 아내를 탐하고.


외딴섬으로 가 그림만을 그리는 이 모든 선택.


이야기 속에서 스트릭랜드는 이 모든 것을 참으로 쉽게 결정한다.


모든 것이 '예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어찌 이 모든 것이 그리 쉽단 말인가.


참으로 이기적일 수 있는 선택.


수많은 이들에게 비난받을 수 있는 선택조차도 이토록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이라는 꿈이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질문을 던진다면 스트릭랜드는 단연코 '예술'이라 답했으리라.


물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법과 도의적인 테두리를 고려해야 할 인간으로서의 의무는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짓밟고, 상처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꿈만을 좇았던 스트릭랜드의 모습에 무조건적인 경탄만을 보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그 외의 많은 것들에 얽매였던 수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의 '달'에서 멀어지지 않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마음속 깊은 곳, 지구와 달만큼이나 먼 거리에 존재하던 나만의 '달'을 한 번쯤 바라보는 시간이 살면서 한 번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저자는 스트릭랜드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듯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나만의 '달'을 품고 살 수 있다면.


그토록 명확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그저 그렇게 보내는 시간만은 아니게 되지 않을까.


때때로 찾아오는 번뇌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나만의 '달'이 있다면, 그것을 품고 가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지 않으면 못 배길 당신만의 달이 존재하는가?




2) 달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스트릭랜드가 갈망했던 '달'은 예술이었다.


무언가를 그려내고 창조하는 삶이야 말로 그의 모든 것이자 삶의 목적이었다 할 수 있으리라.


'예술'이라는 꿈.  참으로 원대하고 있어 보이는 꿈이 아닐 수 없다.


달로 치면 참으로 밝고 큰 보름달 같은 꿈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누군가는 그의 꿈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꿈에 비하면 나의 꿈은 너무나 소박하고 볼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는 또 하나의 '달을 쫓은 사람'을 등장시키면서 달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전도유망한 외과의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알렉산드리아 보건국 관리의 길을 선택한 아브라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좀 괴팍스러운 데가 있었던 것 같아.

그 가엾은 친구, 이제 완전히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지.

알렉산드리아에서 보건국 관리인가 뭔가 하는 하찮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네.

들리는 말로는 지지리도 못나고 늙은 그리스 여자하고 살면서 병치레하는 애들을 대여섯이나 거느라고 있다더군."


보건국 관리로 아내와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는 삶.


스트릭랜드가 쫓았던 달이 보름달이라면, 아브라함의 달은 초승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의 달이 초승달이라며, 보름달 같은 꿈을 좇지 않았다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보름달은 휘영청 밝은 멋이 있고, 초승달은 은은하지만 단아한 매력이 있다.


내 마음속을 밝히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면 그 꿈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나의 초승달을 앞에 둔 채 다른 이의 보름달을 부러워하는 우를 범하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나 짧지 않은가.




3)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 : 삶의 덕목


작중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그의 그림을 알아보지 못한 '나'의 후회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대중들에게 호감을 사는 화풍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때 내가 당장 그것들의 아름다움과 위대한 독창성을 알아보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질 못했다.

이제 그것들의 대부분은 후에 다시 보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복제화로 익숙하게 되었지만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몹시 실망스러웠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하면 놀랍다.

...

스트릭랜드의 그림이 내게 주었던 인상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느 그림 하나 사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항상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 셈이다."


스트릭랜드를 거쳐간 수많은 인물들이 훗날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도 삶의 많은 시간을 지나간 기회, 잡지 못한 인연과 같은 것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매도하니 오르는 주식, 헤어지고 나니 후회되는 연인과의 관계..


이렇게 우리는 어떠한 것의 가치를, 누군가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이때 더욱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바로 더크 스트로브이다.


일찍이 스트릭랜드의 예술성을 알아보고, 그의 예술활동을 지원하고자 했던 스트로브의 안목은 어쩌면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면모가 아니었을까.


"내 명예를 걸고 하는 말이지만, 요즘 그림 그리는 사람들 가운데 이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없어요.

내 말을 믿으세요.

당신은 지금 아주 좋은 벌이를 놓치고 있는 거예요.

언젠가는 그 사람 그림 몇 장이 지금 이 가게에 있는 그림 값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나갈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이 안목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투자를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종목, 좋아질 입지, 가치를 인정받을 작가의 작품을 알아보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인지..


애써 좋은 안목을 발휘하더라도 확신과 인내심이 부족하여 아쉬움을 남긴 적은 또 얼마나 많던가.


스트릭랜드의 예술성에 대한 선구안을 가지고, 더불어 변하지 않는 확신을 보여주었던 스트로브처럼.


안목을 기르고, 이를 통한 확신을 가지는 삶을 만들어보자.  


그 삶은 보다 명료하고 아름다우리라.




<달과 6펜스>는 꿈을 향한 열정, 그리고 삶을 대하는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


자신의 꿈을 향해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모습.


그 사람의 곁에서 상처받는 이들의 모습.


현실을 위해 꿈을 접어둔 이들부터,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가는 이들의 모습까지.


그의 작품에는 '꿈'과 '삶'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100년 전의 과거에도, 100년 후의 현재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고, 누군가는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내던지기도 한다.


고전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시간의 흐름에도 변치 않는 인간의 모습과 가치를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100년 후에도 누군가는 스트릭랜드를 보며 달을 쫓는 용기에 찬탄을, 누군가는 그 무모함에 혀를 차기도 할 것이다.


변치 않을 고전의 이야기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삶의 의미를 위해 당신의 마음 한편을 내어줄 달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대단해야만 꿈이 아니고, 무모해야만 꿈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모든 것을 바쳤던 스트릭랜드의 삶은 위대했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삶을 꾸려나간 아브라함의 삶 또한 위대하지 않은가.


때로는 현실에 부딪혀 6펜스를 쫓아야 할 순간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순간에도 마음속에 크고 작은 각자의 달을 품고 있는 한 우리는 빛날 것이다.


'가자, 달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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