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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risee May 24. 2024

[에밀졸라, 돈] 당신에게 '돈'이란?

당신에게 '돈'이 보여주는 얼굴은?

우리가 매일 벌고, 쓰고, 모으는 돈. 

그 돈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돈에 대해 당신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아주 오랜 시간 전 부터 돈은 우리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존재였음에 틀림없다.


돈이 인류의 삶에 등장하고, 돈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돈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어졌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돈과 함께 하는 수 많은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돈'에 대해 생각하며 또 다시 수 많은 날들을 보냈으리라.


그러한 시간이 우리가 읽는 문학작품에 녹아들어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학은 작가의 생각과 더불어 그 시대와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돈이 없어 쩔쩔매는 등장인물의 모습, 일확천금을 꿈꾸는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작품 속 인물들이다.

 

하물며 왕자와 결혼하여 부와 명예를 차지하려는 동화 속 신데렐라 새언니들의 이야기는 유구한 시간을 거쳐 21세기의 어린아이들에게도 전해져오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돈'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며,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소재일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문학과 예술작품의 소재로 '돈'이 사용되어온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그 중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하는데, 그 작품은 바로 에밀졸라의 <돈>이다.


재테크 관련 서적도 아닌 소설책의 제목 치고는 상당히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이 작품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듯 하다.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도 이 책의 제목에 끌렸던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에밀 졸라는 그의 소설 <돈>에서 왜 돈이 모든 오명을 뒤집어써야 하는가? 라고 물었다.' 라는 코멘트까지 남겼으니 말이다.


역대 최악의 시장 붕괴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1882년 프랑스 증시 대폭락' 사태를 배경으로 하는 에밀 졸라의 작품 <돈>.


작품의 줄거리는 수많은 역사를 통해 반복된 '비이성적 과열'과 '폭락의 고통' 을 드러낸다.


부동산 투자 실패로 무일푼이 된 주인공 '사카르'는 '만국 은행' 이라는 금융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투자자들의 자본을 끌어모은다. 만국박람회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시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아주 적합한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과장 광고, 비윤리적 매매를 통해 주가를 부풀리며 수 많은 이들이 투기의 열풍에 동참하게 한다.


증권 거래소는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 하나로 현실 감각을 잃었으며, 그 왜곡된 열풍은 유대계 금융 세력인 '군데르만' 의 자본력을 쏟아부은 공매도로 마침내 그 뜨거운 과열은 식어버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끊임없이 오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 주가가 폭락한 뒤 수 많은 이들의 고통과 울부짖음 또한 작품에서 여과없이 드러난다.


과연 에밀 졸라는 이 작품에서 돈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돈의 어떠한 면모를 만나볼 수 있을까?


에밀 졸라가 초대하는 뜨겁고도 혼란스러웠던 1880년대 프랑스 증권가로 함께 떠나보자. 






1800년대 후반, 파리에 등장한 '프랑스판 개츠비'들?


1800년대 후반 프랑스는 파리의 신도시화, 금융과 사업의 발달로 발달된 문명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향하는 명소인 '봉 마르쉐' 백화점을 필두로 한 수 많은 상업시설이 생겨나며 소비가 활성화된 것 또한 바로 이 시기이다.


1867년 만국박람회를 개최하여 선진화된 국가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1800년대 후반 파리는 발전과 소비의 열기로 뜨거웠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도시가 발전하고, 상업과 금융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돈' 이다.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인 이 곳에 부를 향한 열망과 자본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자산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욕망.


그리고 그 속에서 고개를 드는 비이성적인 광기.


파리를 지배했던 기대감과 욕망은 그렇게 끊임없이 커져갈 것 처럼 보였다.


1920년, '광란의 20년대'의 뉴욕에 위대한 개츠비가 있었듯, 1800년대 후반 파리에서는 이른바 '프랑스판 개츠비' 들이 부에 대한 열망으로 들떠있었던 것이다.



무한한 권력 속에서 덧없는 인간의 양심보다 더 높이 추앙받는 돈,
피와 눈물보다 더 높이 군림하는 돈,
돈이라는 제왕, 돈이라는 신!



작가는 작품에서 부를 향한 대중의 광기, 돈을 위해 이성과 양심마저 접어둔 이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돈 앞에서 양심은 덧없는 것이 되고, 돈은 제왕이자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지금이라고 다르겠는가.


우리는 타인의 부를 보며 초조해하고, 뒤쳐지지 않으려는 욕심에 무모한 선택을 하고, 때로는 옳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하는 수 많은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서, 또 타인에게서 발견한다.


돈 앞에서, 부를 향한 열망 앞에서 인간이 가지는 본성은 결국 '시대불변' 인 것일까.






1882년,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


역사상 모든 호황에 끝이 있었듯, 파리 증권가를 흥분시켰던 호황 또한 결국 끝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방아쇠는 1882년 프랑스의 거대 은행 위니옹 제네랄 (L'Union generale) 의 파산이었다.


이 여파로 증권거래소는 운영이 정지되었으며, 전체 증권사의 25%가 파산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가히 금융계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킨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끝 없이 뜨거울 것 같던 프랑스의 자본시장은 혼란과 공포로 차갑게 식으며 버블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프랑스 역대 최악의 증권 시장 붕괴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이 잔혹한 시간 속에서 부를 향한 욕망에 편승했던 수 많은 이들은 아마도 쓰라린 고통과 좌절을 맛보아야했으리라.


이 일대 혼란으로 고통을 겪은 이들 중 우리에게 지금까지도 잘 알려진 한 인물이 있는데, 그는 증권거래인으로 근무하였으나 증시 폭락 사태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실업의 아픔을 딛고 그는 품고 있던 예술에의 열망을 실현하며 전업 화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캐릭터의 모티브이기도 했던 예술가 '고갱' 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증시의 폭락과 그로 인한 고통이 우리에게 예술을 선사했다는 사실이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고갱은 이 시간을 기회로 삼아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며 나름의 행운을 경험했지만, 다른 이들은 어떠했을까?


1882년 호황 끝에 찾아온 차가운 자본주의의 칼날은 수 많은 이들의 삶을 헤집어놓고, 세상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을 것이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성을 잃고 달려든 프랑스판 개츠비들에게 1882년은 잔인한 시간으로 기억되었으리라.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1882년, 그 혼란의 시간에도 누군가는 부를 지키고, 또는 부를 늘려나갔으리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추락하는 증권가의 비명 속에서 오늘의 작품 <돈>의 등장인물인 '군데르만' 이 이른바 공매도로 승리를 거머쥐었듯 말이다.


더욱 불쌍하고 가슴 아픈 희생자는 수많은 미지의 사람들,
재앙 때문에 추위에 떨고 굶주림으로 몸부림치는 익명의 빈자들이었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이른바 '팔자'를 고쳐보기 위한 투기는 세상을 넓고 멀리 보지 못하게 하고 결국 잔인한 생채기를 남길 뿐이다.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사야하나 혹은 팔아야하나' 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투기의 심리는 우리의 이성과 눈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 냉철하게 시장을 판단하고, 그 흐름에 편승하는 누군가는 승리자가 되는 것이 어쩌면 그 당시 증권가를 바라보며 작가가 느낀 가장 솔직한 자본시장의 원리가 아니었을까.


작가가 작품에서 그려낸 자본시장의 모습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큰 것은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아마도 미래까지 '자본주의' 라는 시스템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82년 프랑스 증권가의 혼란은 에밀 졸라라는 작가에게 인간을 관찰하고,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무대였을 것이다.


그 무대를 바라보며 저자는 자본 앞에서 인간은 어느 때보다 투명하게 본성을 보이며, 어느때보다 교활해지기도, 어느때보다 솔직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실감했으리라.





 

자본주의는 냉정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작품에서는 부에 눈이 멀어 비이성적인 투기를 하는 이들의 모습.


때로는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부를 거머쥐기 위해 달려드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노동이 밥을 보장하지는 않아. 
빈자들과 바보만이 다른 사람들을 살찌우기 위해 일하고 있잖아.
투기, 오직 투기만이 하룻밤 사이 단숨에 행복, 사치, 여유로운 삶, 완전한 삶을 허락하는 거야.


운 좋게 불어난 주식 계좌를 보며.


순식간에 부자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위와 같은 생각을 해 본적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운만 따라준다면 굳이 힘들게 일을 할 필요가 없을텐데.' 


혹은 '나도 저 사람처럼 운이 좋아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고 말이다.


빠르게 부를 얻고자 하는 욕망,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을 부를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욕망은 자본주의와 금융시장이 존재하는 한 그 근간에서 계속해서 일확천금을 갈구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돈> 의 주인공인 사카르처럼 이들의 광기어린 탐욕을 이용하고, 탐욕의 돈이 향하는 목적지를 교묘하게 조종하기도 한다.


추천과 조언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광고는 처음에는 온건하고 합리적이었지만 이내 과도하고 뻔뻔스러운 것이 되었고, 순진한 구독자들에게 파산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는 또한 거대 정치, 문학 신문들과 일괄 청부 조건으로 교섭을 벌였고, 거기에 일련의 호의적인 단평, 찬사로 가득찬 기사를 싣게 했으며 새로운 주식을 발행할 때마다 주식을 선물함으로써 그들의 협력을 확보했다.



객관적인 이야기인듯한 신문의 은근한 종목 추천, 유명 주식 부자의 종목에 대한 전망들..


마치 지금 그것을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볼 듯한 기분에 누군가는 기꺼이 '투자'라는 이름으로 투기를 자행한다.


지금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 아닌가?


아니, 오히려 정보의 창구가 많아진 오늘날이야말로 누군가의 교묘한 흐름에 편승할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높지 않은가 말이다.


극단적 신뢰와 눈먼 열광에 뒤이어 공포의 반작용이 엄습했다. 

모두가 늦었을까 두려워하며 주식을 팔기 위해 몰려들었다. 

분별없이 내던지는 엄청난 양의 주식이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으니,
그것은 문자 그대로 대폭락이었다.

이러한 비이성과 광기, 투자가 아닌 투기의 끝은 결코 '해피 엔딩' 이 되지 못함을 작품에서는 너무도 신랄하고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서 그려낸 주식 시장을 가득 채우는 투기꾼들의 울부짖음, 절망의 탄식은 자본주의가 결코 누군가의 실수를 관대하게 끌어안거나 누군가의 욕심을 기꺼이 이해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도 누군가는 부에 대한 잘못된 욕망으로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누군가는 그 일그러진 욕망을 이용한다.


그 일련의 과정이 끝난 뒤 찾아오는 고통과 절망을 자본주의는 다독여주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투기로 인한 고통을 맛볼 것인지, 투자를 통한 결실을 거둘 것인지 또한 우리의 선택인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그리고 또 다시 비이성과 욕망의 파도가 출렁일 때, 그 뜨겁고도 위험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이 바라보는 '돈'은?


에밀 졸라의 <돈>에는 돈을 향한 수 많은 인간 군상들의 생각이 드러난다.


가장 많은 이들이 보여주는 돈에 대한 태도는 바로 '욕망' 이다.


재난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시세가 널뛰기하는 것을 보며 점차 열기에 사로잡혔고,
수십만 프랑을 버는 데 삼십 년을 보낸 그가 단 한 시간 만에 수백만 프랑을 벌 생각을 하며 투기의 단꿈에 젖었다.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


한 번의 성공적인 투기로 인생이 바뀌리라는 신기루와 같은 희망은 돈을 '욕망' 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


아마 많은 이들에게 돈은 동경의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누군가가 투기의 단꿈에 젖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기도 한다.



모제는 늘 재앙을 두려워하며 끝없이 탄식을 늘어놓았다. 

모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은근히 불길한 전망을 담아 투덜거렸다.

 "그래그래, 그러다가 팍 고꾸라질거요....그래그래, 아직도 올라가는 그 망할 놈의 주가는 더 높은 곳에서 고꾸라지고 말 거요.
 
아! 모든 게 끝장날 거야, 두고 봐요!"



일확천금에 대한 근거 없는 희망 만큼이나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또한 올바른 판단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가가 내려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주식을 너무 일찍 매도한 경험이 있지는 않은가?


낙관과 두려움 모두 근거가 없다면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는 것. 그것이 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정한 얼굴이다.


누군가는 돈을 혐오하기도 한다.


돈이 사회를 망치는 주범이며, 이 사회에서 돈이라는 존재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을 축적시키고, 풍요로운 순환의 길을 막아버리고, 파렴치한 금력을 금융시장과 사회적 생산의 지고한 주인으로 만드는 돈의 소유, 이거야말로 끔찍한 공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위기, 우리의 모든 혼란은 바로 거기서 비롯됩니다....
돈을 없애야 합니다, 반드시 돈을!"



돈은 파렴치함과 혼란의 중심인가?


과연 돈이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될까?


당신은 돈의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돈을 욕망의 존재로 바라보는가, 혹은 두려움의 존재나 없어져야 할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가.


당신이 바라보는 돈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 글에서 에밀 졸라가 돈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돈의 힘, 그리고 그 돈 앞에서 보여주는 수 많은 이들의 모습과 본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이야기한 '돈' 에 대한 이야기가 자본주의에서 돈의 역할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돈을 공격하지도 옹호하지도 않겠다. 
나는 돈을 오늘날까지 필요한 힘으로서, 문명과 진보의 동력으로서 보여주고자 한다.



돈은 누군가를 눈 먼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기도 하고, 뜻 모를 공포에 휩싸기에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돈에 대해 무조건적인 낙관을 표하고, 누군가는 돈을 없어져야 할 사회 악으로 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주 오랜 시간 '돈'을 통해 그 토대를 다져왔으며, 돈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성취하고 발전시켜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토대가 될 것이다.


그 토대 하에서 돈은 누군가에게는 악마의 얼굴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날개를 달아 줄 지원군의 얼굴을 보일 수도 있으며 그 얼굴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당신은 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돈은 당신에게 어떤 모습일 것인가.


그 어느때보다 돈에 대해 제대로 알고, 돈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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