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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소묘 Mar 12. 2023

눈이 멀어버린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_주제 사라마구

나는 어디에 눈이 멀어 있을까


만약 세상 모든 사람의 눈이 멀어버리고 단 한 명의 사람이 그들을 지켜보게 된다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_해냄’의 한 줄 요약이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전염병이 지구를 덮치고 사람들은 시력을 잃게 된다. 실명의 전염병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무작정 사람들을 격리 병동에 가둔다. 원인도 모르는 전염병이기에 대안도, 계획도 없이 병원에 방치된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본능의 관철을 위해 서로를 헤치기에 이른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극한 상황과 그 상황묘사를 통한 인간사회의 은유가 한 줄 한 줄 경구와 명언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그 말은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_주제 사라마구)  

모든 사람이 그것도 이유불명으로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되는 상황 속에서 초반부터 빠르게 전개되는 치밀한 이야기의 구조는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글은 쉼표와 마침표 외의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줄 바꿈이 거의 없어 어디에서 읽기를 멈춰야 할지 난감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디까지 읽었는지 몰라 헤매게 될 수도 있다.


장의 구분이 거의 없고 등장인물의 이름과 장소 등의 고유명사 또한 사용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이름이 없다.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 의사, 의사의 아내, 자동차 도둑,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사팔뜨기 소년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이 벌이는 끔찍하고 처참한 상황묘사들에 빽빽한 줄글까지 합세한다.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점점 고조된다면 그것은 저자 ‘주제 사라마구’의 덫에 걸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암울한 상황 묘사는 문단의 구조와 함께 읽는 이의 몰입감을 높인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놀라운 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행태가 눈이 보일 때와 다를 바 없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권력을 장악하려 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무기로 다른 이를 억압하려 한다. 눈이 보이는 사회와 보이지 않는 사회의 차이는 없어 보인다. 인간성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사라마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먼 자들의 도시_주제 사라마구)  


어김없이 토요일 오전 함께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였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이야기하며 까뮈의 ‘페스트’가 거론되었고, ‘코로나19’ 상황과 견주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 세계를 대혼란으로 빠트려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들을 겪으며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도 실명의 경험을 한 자들인 것이다. 가진 것을 잃고 난 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 했던 행위들, 그 불안한 마음에 대하여 그리고 무너진 마음의 질서에 대하여 빠르게 이야기가 오갔다.


우리는 실명의 경험 후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달려온 시간들의 허무함과 무용함, 진정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하여, 나의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보이지만 보려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보고도 못본채하는 것들에 대하여.


2008년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로 개봉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겠냐는 질문에 우리는 하나같이 보고 싶지 않고 대답했다. 모두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의 처지에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도시가 여전히 그곳에 있기를’.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스스로를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눈먼 자들의 도시_주제 사라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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