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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Dec 12. 2022

성폭력 2차 가해에 대한 항의, 매듭을 짓다.

공포와 개운함이 뒤섞인 처음 느껴보는 감정

2022년 3월 성추행을 고소하고,

2022년 6월 학회의 연구조직에서 쫓겨나는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이후 6개월 간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하고,

2022년 12월 초 학회의 운영위원회에 그 조직의 비민주적, 가해자 중심적 운영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결국 운영위원회에서 나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그 연구 조직을 정식 연구회로 승인하지 않았다.


친구가 말하더라.

"승리하셨네요!"


솔직히 마음이 개운하긴 하다. 나의 문제제기가 전체 운영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결과보다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 의를 둔 채 문제제기를 한 것이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개운하다.


한때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박살이 났지만, 내가 이미 입은 피해를 복구하거나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했기에 후회는 없다.


끝까지 문제제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남은 인생 동안 계속 후회하며 지냈을 것 같다. 어쩌면 관련자들에게 더 집착하면서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개운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나를 휘감고 있다.

개운함과 공포가 뒤섞인 듯한 서늘함.

마치 무언가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긴장하게 만드는 공포영화를 볼 때처럼 나는 긴장해 있다. 무언가 시원하기도 한데 명치끝이 시리면서 무섭기도 하다. 특히 문자나 이메일, 카톡이 울릴 때면 그 조마조마함은 배가 된다.


지금까지 약 9개월 동안 느꼈던 감정들이 억울함이나 분노, 원망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무엇인지 모르게 무섭다.

학회에 이의제기를 하기 전에도, 이의제기를 하고 나서도. 그리고 나를 내쫓은 조직이 결국 정식 연구회로 승인받지 못했다는 결과를 듣고 난 지금도 차가운 두려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나에게 "당했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그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겠지. 나보다 강한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 나의 앞길을 막아서고 나를 꺾고 도려내어 버릴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몹시 분노하고 있을 그 사람들.


그래도

난 나 자신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이 결과로 인해 더 힘든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건 또 그것대로... 마주하며 살아가야지.


잘... 했다, 나.



그 연구 조직은 아마도 학회의 다음 총회에서 정식 연구회로 승인될 것이다. 그게 내년 이맘때가 될지 아니면 더 이른 언젠가가 될지 잘은 모르겠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그렇지만 이젠 나와 무관한 일로 차갑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만큼 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 그들답게 그들의 인생을 살 것이고, 나는 나 답게 살면 된다.


아래는 내가 학회에 제출한 'OOOO특별위원회의 정식 연구회로서의 자격에 대한 이의제기' 중 일부이다.




"... 저는 학회와 연구회는 사법기관이 아니기에 ‘가해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렇다면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었습니다. 저는 ‘모 박사(가해자)와 특별위원회 안에서 공존하겠다, 모 박사의 일로 조직 운영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며 호소하여 왔지만 지금까지 묵살되고 있으며...


그간에 저에게 발생한 많은 일들은, 개인적인 악연이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의 저의 미숙함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OOOO특별위원회의 위와 같은 처신은 명백한 2차 가해라고 판단합니다.     

...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제가 이미 입은 피해를 복구하거나 현재 제가 처한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두렵습니다. 제게 조언을 해 주시는 교수님들께서, 이런 일은 문제 제기해 봤자 저에게 온전히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낙인이 찍혀 한국에서 취직을 하기 힘들 것이고 학계에서도 결국 제가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모한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는, 비록 성추행이라는 개인적 사건에서 시작된 문제이지만, 제가 겪은 2차 가해는 분명히 특별위원회의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운영에 의한 조직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내부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위력에 의해 학회 및 연구회를 등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저처럼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으며 제대로 호소할 곳조차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 ‘OOOO 특별위원회’의 정식 연구회 자격에 대한 저의 이의제기를 사사로운 분풀이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만 감정에 휘둘려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다만,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떠난다’는 공공연한 사실이 제가 잠시나마 애정을 가졌던 OO학회에서만큼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기를, 저의 미약하지만 위험을 무릅쓴 문제제기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성폭력 2차 가해에 대한 매듭이 이렇게 지어졌다.


...


매듭이 지어진... 것 맞겠지?


여전히... 오싹할 정도로 무섭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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