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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May 06. 2018

언젠가 시상식의 주인공이기를
<라라랜드>

혼영일년 2月 :혼자서 꿈꾸는 겨울 로맨스 3 

매년 2월 말이면 아카데미 시상식 생중계 준비로 바쁘다. 아카데미 수상 유력작을 예측하여 그에 맞게 편성 영화들을 준비한다. 생중계 당일에는 부조정실에서 온종일 대기하며 송출 사고가 나지 않게 운행 요소들을 체크하며 노심초사하곤 한다. 


이번 90회 아카데미는 영원한 안방주인 이동진 평론가와 올해 새롭게 섭외한 신아영 아나운서가 환상 호흡으로 깔끔하게 시상식 중계를 진행했다. 예상대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을 휩쓸자 그의 최신작 <크림슨 피크>를 뒤이어 편성하며 시상식 중계를 마무리했다. 

 

다소 무난했던 올해를 끝내니, 요란했던 작년이 떠올랐다. 아카데미에서 영원히 회자될 <문라이트>, <라라랜드> 작품상 번복 해프닝이다. 봉투가 잘못 전달되어 수상작이 뒤바뀐 것이다. 생방송 차질로 멘붕이 왔던 당시에 기억 남았던 건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표정이다. 작품상 수상 후 한껏 기뻐하던 데이미언 감독은 번복 후 무대 뒤로 밀려나서는 <문라이트> 감독이 수상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 순간 나는 데이미언 감독이 마치 <라라랜드> 마지막 장면마냥 꿈을 꾸는 것처럼 보였다.

  


<라라랜드>는 꿈꾸는 두 젊은 청춘의 사랑을 다룬 뮤지컬 영화이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자신만의 재즈바를 꿈꾼다. 미아(엠마 스톤)는 연기자 지망생이다. 둘은 서로의 꿈을 격려하며 사랑을 이뤄 나가지만, 높은 이상과 차디찬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다행스럽게도 둘은 각자 원하던 꿈을 이룬다. 다만 전과 달라진 한 가지, 미아 옆에는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세바스찬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상상한다. 바로 미아와 결혼해서 애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꿈이다. 꿈속 미아 옆에는 세바스찬이 있다. 하지만 깨어난 현실에는 미아 옆에 다른 남자가 있다. 마치 데이미언 감독이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자리에 <문라이트> 감독이 선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이별은 잘못 전달된 봉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리일 줄 알았는데, 사실 내 자리가 아니었다는 엄청난 해프닝 말이다. 연인은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사랑이란 시상식의 주인공이 된다. 둘은 각자 원하는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다음 해 시상식을 맞이한다.  

그런데 영원할 줄 알았던 내 자리에 올라가 발표를 기다리는데 다른 봉투가 전달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쩌면 그게 이별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잘못 전달된 봉투는 연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어긋난 타이밍으로 사랑의 결과가 이별이 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믿는다. 그저 당신 옆이 내 자리가 아니었을 뿐.  


수많은 이별이 드리웠던 어둠 속에서 자책했던 나 자신을 떠올려본다.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후회하고 눈물 흘리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때도 지금처럼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때는 시상식의 방청객이었을 뿐이다. 언젠가 시상식의 최종 주인공이 될 날을 기다리는 방청객 말이다.

  

<라라랜드> 마지막 장면에서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재즈바를 떠나는 미아를 웃으며 보내준다. 그리고 다시 연주를 이어간다.  


나는 <라라랜드>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자주 편성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이별을 겪고 혼자가 되었다고 자책하지 말 것! 또 다른 시상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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