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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Apr 28. 2018

팀 버튼의 겨울은 따뜻했네
<가위손>

혼영일년 2月 : 혼자서 꿈꾸는 겨울 로맨스 2 

초등학교 시절에 이티로 불렸다. 

당시 사시가 있던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또래의 눈들이 있었다. 원래 조무래기 꼬마들의 집요함이 더 무서운 법이다. 정상적인 그들 세계에서 나는 초능력 없는 외계인이었다. 의도치 않게 혼자였던 시간이 이어졌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오직 현실에서 도망칠 곳은 비디오테이프였다. 그리고 외톨이였던 나를 언제나 따뜻하게 받아줬던 사람이 있었다. 

팀 버튼이었다.  


팀 버튼 월드에서 외톨이는 환영받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외톨이들은 팀 버튼 세계에서 꿈꿀 수 있었다. 초기작 <비틀쥬스>에서 가족과 동떨어졌던 소녀, <에드 우드>에서 관객에게 외면받았던 B급 영화감독, <빅 피쉬>에서 아들에게 무시당하던 병든 노인은 팀 버튼 세계에서 누구보다 빛이 났다. 팀 버튼이 직조한 판타지 공간에서 그들은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말하지 못했던 꿈을 펼쳐 놓는다. 아예 세상과 등졌던 윌리 웡카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죽은 유령들이 더 인간적이었던 <유령신부>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작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도 이 세상 아웃사이더에 대한 팀 버튼의 사랑이 한결같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내게 팀 버튼의 영원한 넘버 원은 <가위손>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내 어린 시절을 지탱해주던 선물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 외딴 성에 홀로 살던 에드워드(조니 뎁)는 외판원의 도움으로 마을에 내려와 정착하게 된다. 에드워드의 창백한 외모는 비호감이었고, 가위손은 만지는 것마다 망가뜨리기 일쑤다. 다행히 조경과 미용에 탁월한 가위 능력을 발견한 덕분에 에드워드는 마을의 스타가 된다. 그리고 외판원의 딸 킴(위노라 라이더)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킴의 남자 친구가 에드워드를 이용하고 마을 사람들 또한 비정상적인 에드워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수 십 번은 돌려봤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밤, 에드워드가 정원에서 얼음 조각을 하며 세상에 눈을 뿌린다. 킴은 눈을 맞으며 행복해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저주 같았던 가위손으로 사랑하는 킴에게 마지막 크리스마스 판타지를 선사한다. 팀 버튼의 영상과 대니 엘프만의 음악이 빚은 황홀경의 절정이다.

<가위손>은 사랑을 만질 수 없었던 외톨이 에드워드가 끝내 킴에게 사랑받았던 순수한 겨울 판타지다. 


<가위손>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난 가위손처럼 혼자였다. 

눈 때문에 남들과 다르다는 조건은 혼자가 되는 훌륭한 이유가 되었다. 그때 팀 버튼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정상이지 않다고 비정상은 아니라고. 그저 또 다른 정상이 있을 뿐이라고. 팀 버튼이 이 세상 외톨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판타지에 취해 차가운 현실을 지울 수 있었다. 가위손처럼 세상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달콤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눈이 내리면 <가위손>이 생각난다. 

혼자면 어떻고 외톨이면 어떠랴. 혼자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지라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는 분명 있다. 다시 혼자가 된 에드워드가 아직도 이 세상에 눈을 내리는 까닭은 에드워드를 여전히 사랑하는 킴이 있어서가 아닐까. 

홀로 맞이하는 겨울마다 눈이 내리면 <가위손>을 편성하는 이유다. 



#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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