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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Apr 20. 2018

 혼자서 떠올리는 둘만의 추억
<이터널 선샤인>

혼영일년 2月 : 혼자서 꿈꾸는 겨울 로맨스 1

예전 여자친구는 꽤 활발했다. 강남, 신촌, 북촌, 신림 곳곳을 누볐다. 누린 공간과 시간만큼 추억이 쌓인 탓인지 헤어진 뒤에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녀의 인생영화가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영화 이야기로 그녀와 밤새 얘기했던 추억이 생각나 한밤중에 영화를 다시 봤던 기억이 있다. 


<이터널 선샤인>은 두 연인이 이별하기 위해 각자 기억을 지워버리는 내용이다. 조엘(짐 캐리)은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걸 알고, 똑같이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잠이 든 조엘의 꿈속에서 기억들이 서서히 지워진다. 그런데 소중했던 추억도 같이 지워지면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텅 비어 버린다.  


“괜찮아”  


조엘은 텅 빈자리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난다. 다시 클레멘타인이다. 바로 어제까지 그녀의 자리였으니 잘 맞을 수밖에 없다. 클레멘타인은 다시 만나자는 조엘에게 우리는 헤어졌던 이유로 똑같이 싸울 거라며 망설인다. 그러자 조엘은 괜찮다고 답한다. 다시 사랑이 시작된다.  



이 세상 오직 둘만이 기억하는 영원히 빛나는 추억. 이는 사랑하는 자의 특권이다. 조엘이 예견된 고통을 감수하고 사랑을 택한 이유다. 순간의 행복과 고통이 쌓여 소중한 기억이 된다. 그렇게 쌓인 기억은 사랑의 추억이 된다. 텅 빈 조엘은 다시금 추억들로 충만해질 것이다. 


이 세상 오직 둘만이 기억하는 영원히 빛나는 추억, 혼자가 된 자의 고통이다. 둘이서 함께 채웠던 바다는 어느새 파도가 되어 저 멀리 빠져나가고, 비로소 드러난 백사장에는 둘이서 함께 나눴던 추억의 파편들이 날카롭게 맨발을 파고든다. 추억마저 밀려가면 좋았을 것을 내 기억의 백사장에 영원히 남아 심장마저 아려오게 만든다. 

혼자 감당할 고통이 커져 조엘처럼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텅 빈 사람이 되느니 아픈 추억을 간직하겠다. 

좋았던 추억, 아팠던 추억들이 기억의 씨줄날줄로 엮여 나를 채워가는 것이리라 믿는다. 


재개봉 영화 특집으로 <이터널 선샤인>을 편성한 적이 있다. 2005년 개봉 당시 20만 명도 기록 못했던 영화가 10년 뒤인 2015년, 30만 명을 동원한다. 역대 재개봉 영화 관객수 1위다. 근무하면서 편성특집으로 방영되는 영화를 시청하며 그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눈 덮인 뉴욕 몬탁 해변, 얼어붙은 새하얀 호수. 짐 캐리의 텅 빈 눈빛, 그리고 엔딩곡 <Everybody’s Got To Learn>까지... 10년 전 영화를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오랜 세월만큼 켜켜이 쌓았던 사랑의 추억들이 깨어났다. 세월이 흐른 만큼 나도 사랑을 알게 된 것일까. 영화는 그대로인데 나는 변했다.

  

재개봉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끼는 명작들이다. 개봉 당시와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명작이고, 그래서 관객들이 재개봉을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열렬히 사랑하고 이별할 관객들은 과거에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헤어진 연인들은 그만큼 성숙해지고 새롭게 <이터널 선샤인>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나처럼... 

앞으로도 <이터널 선샤인>이 영원한 겨울 로맨스인 이유다.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 

"모두들 언젠가 배워요"  

- <이터널 선샤인> OST <Everybody’s Got To Learn> 中에서 - 



# 둘이서 만든 추억, 혼자 느끼는 아픔, 그만큼 성숙해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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