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30분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 돌아보면
올해는 여유가 없었다.
늘 어떻게 해야 장사(또는 일)를(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와중 일년이 지나간 것 같다.
신문이며 TV뉴스며 경기불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올해 크리스마스에 여실히 체감했다. 그렇다고 장사를 아주 망친 건 아닌데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물론 주말이 껴 버린 탓도 있다.
우리 가게는 대학가지만 주택가는 아니라서 시즌에 주말이 겹쳐 있으면 성과가 아주 좋지는 못하다.
학생들이 데이트할 때 꽃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대학가는 주말에는 번화가로 사람이 빠지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현저히 적어진다.
차치하고 점점 자영업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꽃 가격은 계속 상승한다. 앞으로 몇년 뒤에는 꽃이 완전한 사치품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그렇다면 중저가에 최상의 퀄리티를 제공하자는 지금의 모토를 계속 고수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다.
SNS를 보면 좋은 등급의 국산꽃과 특이한 수입꽃들을 섞어 예쁜 작품을 만드는 꽃집이 속속 보인다.
가격을 들으면 10만원은 우스운 수준인데, 3만원 짜리 10개 보다는 10만원 짜리 3개를 파는 게 궁극적 이득이 이닌가 하는 물음표도 생긴다.
꽃쟁이는 시즌이 지나가면 또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어버이날이 지나고는 바로 여름 비수기를 대비했고, 빼빼로데이, 크리스마스를 구상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자마자 졸업시즌 장사를 생각했고 3월부터는 5월 어버이날 시즌을 바쁘게 준비하겠지.
요 며칠 꽃 가격이 많이 올라 고민이다.
겨울에는 꽃 값이 오르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한데 (하우스 난방비 등등 모든 원가가 오르기 때문)
초등학교 중학교가 12월말, 1월초에 졸업식을 겹쳐서 하면서 전국적으로 꽃 수요가 상승했다고 한다.
그러나 저러나 아직은 동네 손님들이 생각하는 꽃다발 가격과
꽃 도매가 사이 괴리가 커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골이 아프다.
꽃 한단에 3만원이 넘는데, 손님들은 3만원 다발을 찾으니...
잘 만들어 내는 게 플로리스트의 역량이겠지 생각하면서도
손님에게 이런 저런 사정과 유의사항을 설명해야 하는 게 싫다.
올해 즐거운 일도 있었다.
회사에서 연말에 '더벨인_우수상'이라는 큰 상을 주셨다.
동료들의 축하를 받아 매우매우 기뻤는데,
집에 와서 다시 한 번 상패를 보니 싱숭생숭.
회사 일도 놓고 싶지 않았고, 꽃집도 신경쓰느라 쉬는날은 골골대기만 했는데
내년에도 이렇게 해야 '잘했다' 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거라면
조금은 잘 못해야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배부른 생각이 잠깐 들었다.
사실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이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배들,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아낌 없이 도와줬던 출입처 사람들 덕분이다.
늘 말하지만 나는 모자란 사람인데, 주위에서 모자람을 채워주셔서
사람구실을 하고 살 수 있는 것 같다.
신년에는 회사 인사이동도 있을 것이고,
조금 더 바빠질 것 같다. 그 와중 졸업 장사를 생각하니 머리가 다시 아프다.
위에서부터 글을 읽으니 징징대는 소리 밖에 없는 것 같네.
무튼, 올해도 챙겨주신 모든 분들 께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덜 징징대는 기자 겸 꽃팔이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