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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Mar 02. 2022

인슐린 나누는 타향에서

<모가디슈> 속 당뇨 치료제

류승완. 한국. 2020

1.
남한, 공 서기관. 당뇨 환자다. 넥타이 휘날리며 뛴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
— 나 당 떨어졌어, 당.
빨간 사탕을 깐다. 입에 넣는다. 한 대사는 묻는다.
— 맞아야 해? 인슐린?
공 서기관이 대답한다.
— 괜찮습니다.

2.
북한, 림 대사. 당뇨 환자다. 냉장고를 연다. 인슐린(Insulin aspart injection) 상자, 유리병, 주사기가 보인다. 림 대사는 병에 든 인슐린을 주사기로 뺀다.

3.
폭도는 북한 대사관을 턴다. 인슐린 든 냉장고를 빼앗는다. 북한 대사관 일행은 도망한다. 남한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다. 남북은 함께 식사한다. 명희는 깜짝 놀란다. 침침한 복도에서 사내아이를 발견한다. 림 대사 손자다.
— 설탕 있습니까?
— 설탕? 왜? 단 거 먹고 싶어? 아줌마가 과자 줄까?
— 제가 아니라...
— 그럼 누가?
— 할아버지 약으로...
— 약? 할아버지 당뇨 있으시니?



 창을 넘은 햇살이 한가롭다. 주말이다. 경은 거실 소파에 늘어진다. 데스크톱을 켠다. 즐겨 찾는 사이트에 들어간다. 검은 배경, 빨간 알파벳 하나. 영화를 고른다. 보는지, 듣는지, 조는지. 구분이 어렵다. 일단 튼다. 연이은 총소리가 들린다. 타타타타 타타타타. 뒤이은 고함, 폭발음, 비명. 슬며시 방문을 닫는다. 틈으로 소리가 샌다. 고른 숨이다. 익숙한 코골이다. 관찰 이십오 년째. 패턴은 일정하다. 드문 일이 생긴다. 경은 깬 채 한 편을 끝까지 본다. 추천한다.

 — 딸. <모가디슈> 재밌더라. 한번 봐.


 신파를 뺀 뒷맛이 깔끔하다. 여운은 뱉은 담배 한숨처럼 눈앞을 흐리고 흩어진다. 짤막한 머리끝에 탄내가 엷다. 총격 잔향이다. 더운 밤, 식지 못한 열기 사이로 쏘아댄 불꽃 상흔이다. 시뻘겋게 타들어, 새까맣게 떨어진 잿가루다. 내가 나를 찔러 흘린 핏물이다. 내상이다. 내전이다.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다.






남녘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UN 가입을 승인받지 못한 국가였다.
당시 가장 많은 투표권을 가진 아프리카 대륙은 한국 외교 총력전의 주요 대상으로 떠올랐다.
1987년, 한국 정부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외교관들을 파견한다.

 자막으로 서사를 연다. 한국 대사관은 소말리아 대통령 면담을 잡는다. 어렵사리 구한 기회다. 당일이다. 총탄이 날아든다. 습격당한다. 자동차가 퍼진다. 낭패다. 약속에 늦겠다. 한 대사와 공 서기관은 달린다. 숨을 몰아쉰다. 공 서기관은 급히 당을 찾는다.


 남한 공 서기관은 환자다. 당뇨. 당이 뇨에 검출되는 병이다. 피에 포도당이 너무 많아서, 오줌까지 새어 나온 상태다. 인슐린과 밀접하다. 인슐린은 호르몬이다. 췌장에서 분비된다. 세포에 신호를 준다. 세포는 혈액에 떠다니는 포도당을 붙잡는다. 세포 안에 집어넣는다. 에너지원으로 쓴다. 혈당이 낮아진다. 인슐린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세포가 포도당을 제대로 못 쓴다. 혈당이 높아진다. 당뇨가 생긴다. 크게 1형과 2형으로 나뉜다.



달콤한 출렁임


 1형 당뇨병. 췌장이 편찮다. 유전 또는 면역반응 탓이다. 인슐린 신호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슐린을 주사한다. 결핍을 해소한다. 치료한다. 2형 당뇨병. 세포가 말썽이다. 인슐린은 세포에 외친다. 피에 당 많아, 제발 집어넣어. 세포는 못 듣는다. 혼자 쫄쫄 굶는다. 피는 당으로 끈적하다. 여러 알약을 먹는다. 세포가 당을 쓰도록 돕는다. 췌장에서 인슐린을 더 뿜게 재촉한다. 시간이 흐른다. 췌장 기능은 떨어진다. 자연스러운 섭리다.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혈당을 끌어내린다. 합병증 진행을 막는다.


 혈당은 낮아도 문제다. 당뇨 환자는 약물치료 중 저혈당 부작용을 겪기 쉽다. 인슐린 용량이 과하거나, 식사를 거르는 경우다. 격렬한 운동도 마찬가지다. 바레 대통령 궁을 향한 공 서기관의 뜀박질같이. 운동으로 혈액 속 당을 빠르게 소모한다. 혈당이 뚝 떨어진다. 당 떨어졌다는 공 서기관. 시야가 흐리고, 손에 땀이 나고, 심박이 빨라지고, 감각이 둔해지고, 저리고, 허기지고, 머리가 아팠을 테다.


 포도당 15g을 섭취한다. 15분 후 혈당을 확인한다. 일정 수준까지 혈당이 오르지 않으면, 다시 포도당을 먹는다. 저혈당증을 치료한다. 15/15 rule이라 부른다. 포도당 15g은 얼핏 막연하다. 사탕 세 알, 과일 주스 반 컵, 설탕 한 큰술 정도다. 공 서기관은 사탕을 깐다. 허겁지겁 입에 넣는다. 금세 혈당이 오른다. 정상화된다. 한 대사는 공 서기관에게 묻는다. 인슐린 필요하냐고. 핀트에 어긋난 질문이다. 저혈당증 온 당뇨 환자에 인슐린을 주사한다? 낮은 혈당이 더 떨어진다. 혼수에 빠진다. 경련한다. 발작한다. 뇌에 손상을 입는다. 죽을지 모른다.



북녘


 환자가 또 나온다. 북한 림 대사다. 배에다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 종류는 다양하다. 작용 시간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 식사 인슐린(Bolus insulin)은 빠르고 짧게 작용한다. 밥 먹고 반짝 올라간 혈당을 잡는다. 식후 유독 혈당이 뛰는 환자에 유용하다. 림 대사가 쓴 인슐린 아스파트(Insulin aspart)가 해당한다. 기저 인슐린(Basal insulin)은 느리고 오래 작용한다. 평소 혈당 전반을 낮춘다. 공복에도 계속 혈당이 높은 환자에 필요하다.


 내전이 발발한다. 폭도 무리는 북한 대사관을 공격한다. 림 대사는 인슐린을 빼앗긴다. 대한민국 대사관은 통신이 끊긴다. 고립된다. 촛불로 지새운 정적이 깨진다. 낯선 기척이다. 북한 대사관 일행이다. 분단된 이념은 제삼국에서 조응한다. 생존용 탈출구로 발맞춰 달린다. 서먹한 이인삼각이다. 살을 설게 비빈다. 끼니 앞에 모인다. 젓가락이 달그락거린다. 무심히 상대 깻잎을 뗀다. 식사가 끝난다. 북한 소년은 설탕을 찾는다. 할아버지 약으로 쓴단다.



물보다 진한


 설탕은 당뇨에 약이 아니다. 독이다. 당뇨 환자가, 식후에, 설탕까지 먹는다? 혈당은 천장을 뚫는다. 물보다 진하다는 피. 한층 끈끈해진다. 온몸을 짙게 훑는다. 혈관은 망가진다. 속은 차츰 곪는다. 합병증을 부른다. 당뇨가 무서운 이유다.


 콩팥은 직격탄을 맞는다. 가느다란 모세혈관으로 가득하다. 얇은 길이 막힌다. 난감하다. 기능을 못 한다. 투석한다. 눈도 막막하다. 망막에 연결된 혈관이 막힌다. 시력을 잃는다. 말초는 난리 난다. 신경이 마비된다. 혈관이 들러붙는다. 저리다. 가렵다. 진동, 온도, 통증을 못 느낀다. 감각이 떨어진다. 감염에도 적절한 치료를 못 한다. 상처가 잘 안 낫는다. 손발에 궤양이 생긴다. 자른다.


 생활 습관 관리가 기본이다. 운동한다. 식이 조절한다. 간을 삼삼하게 맞춘다. 담백한 끼니를 제때 챙긴다. 탄수화물을 줄인다. 단 음식은 절제한다. 심한 당뇨는 과일 섭취도 막는다. 당뇨 환자가 설탕을 먹는 경우는 저혈당증일 때다. 공 서기관을 보았듯. 밥 먹고 약으로 설탕을 찾을 이유가 없다. 저혈당증을 염려한 손자의 기특함이었을까? 인슐린과 설탕을 혼동한 각본은 아니길 바란다.



이념과 정 사이


 세 아이가 세상에 던져졌다. 한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다른 아이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마지막 아이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아이는 고 삼이다. 대한민국에서 공부한다. 부모님은 모가디슈에서 일한다. 한 대사 자식이다. 북한 아이는 소년이다. 가족과 함께 모가디슈에서 생활한다. 형제 하나는 북한에 볼모로 남았다. 어른은 때때로 북한 아이 눈을 가린다. 림 대사 손자다. 소말리아 아이는 아이다. 아이에 불과하다. 말간 흰자다. 실핏줄이 불거진다. 솜털 난 피부다. 불씨에 번들거린다. 작은 손에 총을 쥔다. 쏘는 시늉 한다. 마구 웃는다. 누구도 가족을 모른다. 눈을 가려 줄 어른은 없다.


 이념은 비싼 가치다. 모두에게 의무인 사치다. 자유를 보장하는 척하나, 자유의지가 개입하기 어렵다. 원해서 대한민국에, 북한에, 소말리아에,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개인은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다. 주변은 이념이라는 중력장에서 운동한다. 사상은 관성에 빠진다. 탈출 값은 목숨에 버금간다. 개인은 이념에서 불어온 바람을 고스란히 맞는다. 부르튼 살갗을 오롯이 견딘다. 선택한 책임이 아니다. 탄생 결과다. 애석한 일이다.






 한국인으로 났다. 배부르게 먹는다. 등 따뜻하게 공부한다. 대학을 다닌다. 영화를 본다. 얄팍한 글을 쓴다. 북한인, 소말리아인은 다르다.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우리는 이미 요원하다. 한국과 북한 대사관 거리만큼. 다만 개인에 초점 맞출 때, 도약을 포착한다. 한 대사는 림 대사에게 말한다.

여기 우리 서기관이 당뇨라서 인슐린이 있었네요.
아, 다행이지.
한 대사는 공 서기관 인슐린을 림 대사에게 건넨다.


 타향이다. 겨누던 총칼을 내린다. 광장은 어디인가. 가스레인지 위는 아니다. 얼싸안지도, 눈물 흘리지도, 소리쳐 이름 부르지도 않는다. 냉장고 안도 아니다. 홀대하지도, 더운밥 한 숟갈을 아끼지도 않는다. 같은 병을 앓기에, 같은 약을 건넨다. 인슐린을 부드럽게 주사할 온도. 손바닥으로 몇 번, 시린지를 온화하게 굴릴 마찰. 체온 언저리 정(情)이다. 그늘진 이데올로기 아래 선 개인의 최선이자 최전선이다. 인슐린 오가던 밤은 모가디슈에서 보고픈 지평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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