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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Dec 21. 2022

미래의 일기

민규의 모습 #3

민규의 포트폴리오

  나긋한 목소리의 내레이션, 서정적인 오프닝과 자막, 소설과 다큐멘터리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스토리는 그 어떤 판타지 소설보다 창의적이고 그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 현실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영웅을 다루기 시작했다. 인간이 바라고 욕망하는 신세계, 유년 시절 접했던 다양한 애니메이션에는 찬란한 미래가 그려지고 절망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그려낸 세계에서 영웅은 삭제된다. 그리고 현실을 그려낸 작업에서는 영웅을 소환한다. 그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 서로 어긋난 그 이상적 풍경과 초상은 나의 기억과 정서 어딘가, 가깝고도 먼 그곳으로부터 일렁인다. ‘세카이’는 민규의 작업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단어이자 소재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세계’다. 잔잔한 애니메이션 한 편, 혹은 동시대 소설가가 집필한 서정적인 이야기와도 같은 그의 영상은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오늘의 초상을 보여 준다. 우리 세대가 습관처럼 경험한 미디어 문화의 다양한 아이콘을 수집하고 채집하여 지금 여기의 판타지를 써 내려 간다. 그의 작업은 미디어가 그려낸 머나먼 세계, 판타지, 미래는 어제와 오늘로부터 촉발된 사본의 세계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거대한 세계에서 완벽한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인류의 미약한 욕망은 내일을 동경하며 오늘에 봉인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민규의 작업들

  민규와 만날 때면 항상 끊이지 않는 대화가 오간다. 전시 협업으로 만날 때나 여타의 일로 만나더라도 중요한 이야기는 삼십 분 안에 마무리되고 이후 두세 시간 정도의 수다가 이어진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전화에서도 한 시간 이상은 기본인듯하다. 어떤 면에서는 나의 갈증과 호기심을 채워주는 인물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관심사가 얼추 비슷한 친구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듯하다. 시대와 사회의 흐름, 이미지 트랜드에 질문하는 그는 가장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인물이다. 

민규의 모습

  작가, 예술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지난 9월부터 작가들을 기록하면서 그 전형적인 이미지가 서서히 깨지고 있다. 그들의 면모와 환경이 전형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정해 왔던 그들의 모습과 이미지마저도 반전을 보이며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빛깔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색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유일한 스펙트럼을 뿜어낸다. 준형, 은주, 정빈, 민규에 이르기까지 나는 네 개의 빛깔을 기록한 샘이다. 그들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일이 이토록 즐거운 것은 무던히 흘러가는 오늘에 발견한 깊고 찬란한 이름들이 내일을 기대하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명의 모습과 마주할지 모르지만 만남과 기록이 이어질수록 조금씩 더 자연스러운 시간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기록하는 사람 _ 박소호


민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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